글, 사진 김민수 50세. 들꽃교회 목사
그 어디에도 ‘달려가자!’라는 구호만 있지 ‘쉼’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가던 길 멈추고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을 봅시다.” 혹은 “봄이 오면 꽃님들과 눈맞춤합시다.” 이런 이야기는 없고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니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뛰어갑시다” 하는 유의 이야기들만 넘쳐납니다. 그런 이야기에 벌써 숨이 찹니다.
우리는 ‘쉼’의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그렇게 인식되어 쉼의 시간조차도 남들이 먼저 자기를 앞질러 갈까 봐 불안해하면서 온전한 쉼을 누리지 못합니다.
쉬지 않고 날아가는 새가 없고, 쉼 없이 날아다니는 나비가 없습니다. 쉼의 시간을 통해서 다시 기력을 회복하고, 또 다른 하늘을 날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햇볕 따가운 여름날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맥문동, 그들도 오랜 쉼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 어느 해의 여름날처럼 보랏빛 꽃밭을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기들이 곤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부쩍 자라듯이, 자연은 겨울이라는 쉼의 계절이 있어 더욱 풍성해집니다.
직장인들이 ‘강박증’처럼 자기 계발을 하고 있어도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쉴 때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쉼의 시간에도 오로지 일 생각뿐인 사람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닙니다. 쉼을 통해서 떠밀려 살아가는 삶에서 나 스스로 걸어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 안에서 혁명전야와도 같은 꿈틀거림이 용솟음치는 것입니다.
‘쉼’이란 부담이 없어야 합니다. 천천히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이라면 더 좋고, 먼 길을 가더라도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나서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그 쉼의 장소가 때로는 재래시장일 수도 있고, 도심 한복판일 수도 있습니다.
‘쉼’은 자연인인 자신과 하나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할 것’을 강요받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잃어버린 지금 여기에서의 삶, 쉼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쉬는 날만 되면 흙을 만지러 시골로 갑니다. 가끔은 그야말로 뼈 빠지게 일을 하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일주일 내내 사무실에 앉아 머리로만 살아갔으니 몸을 움직여주는 것이 쉬는 것입니다. 육체노동을 통해서 흘린 땀방울 속에 나를 위협하는 독소들이 하나 둘 땀방울과 함께 빠져나감을 느낍니다.
남들이 보기에 편안한 쉼보다는 자신이 가장 편안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쉼입니다.
삶이란 여행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배편을 이용하는 것이 볼거리가 많고, 차편을 이용할 때보다는 도보로 여행할 때 더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천천히 도보로 여행하려고 작정을 하면 많은 짐을 가지고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여행길이 가벼워진다는 것이지요. 삶이라는 여행길에서도 이러한 법칙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느릿느릿 가면 다 빼앗길 것만 같고, 낙오될 것 같지만, 빨리빨리 가는 이들이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제 휴가 계획이 아닌 쉼의 계획을 세워 보십시오. 하루에 한 번쯤은 자신을 위해 쉬는 시간을 계획표에 넣어 보십시오. 그러면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쉼의 시간, 그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