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시장 뒷골목에 가면 30년 전 나를 만난다. 나는 금속 공장 2교대 야간 근무를 마치고, 구청 앞 낡은 건물 4층에 있는 독서실로 갔다. 월 이용료를 끊고 그곳에서 씻고 자고 공부하고, 매일 점심때가 되면 독서실 계단을 내려와 서면시장 먹자골목으로 갔다. 그때 내 나이 스물둘이었다.
서면시장 뒷골목 칼국수 집에는 뜨내기손님보다 단골손님이 더 많다. 내 단골집 아줌마는 배신을 모르는 단골손님인 나에게 멸치를 우려낸 국물을 장국으로 칼국수에 말아주었고, 내가 먹을 면은 뜨내기손님의 면보다 훨씬 가늘게 썰어주었다. 그 칼국수 덕분에 내 젊은 날 소박한 점심 식사가 서글프지 않았다.
10년 후, 나는 교사 발령을 앞두고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좁은 골목도 긴 나무 의자도 큰누님 같은 단골가게 주인아줌마도 모두 그대로였고, 서로 낯선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저렴한 한 끼 식사를 하는 모습도 여전했다. 나는 칼국수 한 그릇을 받아들고 감회에 젖었다.
그래서 아줌마에게 ‘혹시 십 년 전 한동안 매일 점심때마다 칼국수를 먹으러 오던 총각을 기억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아줌마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때 멸치장국 칼국수 덕에 내 젊은 날 점심 식사가 행복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아주 가끔 과거의 나를 만나고 돌아왔다.
20여 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부산에 가면 언제나 서면시장 뒷골목에서 혼자 칼국수를 먹는 청년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추억은 차츰 흐리고 우울하게 다가왔다. 어느 날, 나는 마지막으로 서면시장 칼국수골목을 찾기로 했다. 시장은 어수선했고 행인도 뜸했다. 칼국수 가게는 장사가 잘 안되는지 전에 없던 주류와 안주거리도 내놓고 함께 팔았다. 큰누님같이 곱던 주인아줌마는 초로의 노인이 되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분도 중늙은이가 되어버린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잠시 후, 내 몫의 칼국수와 깍두기가 나왔다. 하지만 아직도 스물두 살 내 청춘이 서면시장 골목 어딘가에 홀로 있는 듯 마음이 쓸쓸했다. 주인아줌마가 혼자 바쁘게 반죽을 밀고 썰고 채로 건져내고, 그러면서도 지나가는 행인을 억척스레 호객했다. 나도 용기를 냈다. 그래서 남은 칼국수를 단숨에 후루룩 마셔 넘겼다. 이제 다시는 연민으로 내 젊은 세월 언저리를 서성거리지 않으리라.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시장 골목을 걸어 나왔다.
50살이 넘어서야 알았다. 내가 시장골목 칼국수 가게를 찾았던 것은 그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젊은 날 혹독한 외로움이 내 가슴 깊이 멍울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산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먹먹했고, 낯선 사람 속에 혼자 칼국수를 먹었던 나를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큰길로 나왔다. 길가 가로수에서 가지를 잡고 앙버티던 나뭇잎 하나가, 가을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