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에 갔습니다. 천지의 축소판인 소천지에 이르자 수피가 하얀 나무들이 파란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자작나무 사촌 격인 사스레나무였습니다. 사스레나무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만 자라는 낙엽활엽수입니다. 거친 바람에 밀려 한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던 사스레나무. 흰 껍질은 거칠게 벗겨져 있고 굽은 가지는 아무렇게나 뻗어 있을지언정, 백두산만은 내가 지키겠노라는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저 낭구레 연인 낭구라요.” 조선족 사진작가 맹철(길림성 안도현) 선생의 설명입니다. “바위에 뿌리를 박아 먼저 크고서니, 죽으면서 솔씨를 키워준다 말이오.” 그러고 보니 사스레나무들이 거친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위태롭게 서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몇몇 사스레나무 주위에는 소나무 종류인 이깔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었습니다. 척박한 땅에 먼저 뿌리를 내리고, 자신은 죽어가도 솔씨를 키워내는 사스레나무. 저 두 나무를 왜 연인 나무라 부르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큰 것은 늘 작은 것을 끌어안는 법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배울 뿐입니다.
사진, 글 김선규
백두산 정상에서 사스레나무를 생각했습니다. 거센 바람과 모진 추위를 이겨내면서 자라는 나무, 그 강인함으로 바위를 뚫고 자라면서 새로운 생명 또한 품어주는 나무, 이 사스레나무 앞에서 무슨 소원이, 어떤 다짐이 소용 있을까요. 그저 사스레나무처럼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