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같던 우리 형 ‘애교남’되다

곽민수 26세. 대학생. 부산시 해운대구 우2동

나랑 세 살 터울인 형은 어렸을 때부터 누가 봐도 바르고 바른 에프엠 자체, 원리원칙주의자의 전형이었다. 군 입대도 하기 전에 이미 철두철미한 ‘군인 스타일’로,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고 낭비라고는 전혀 없으며 공부만 열심히 하는 듬직한 장남이었다.

형이 대학에 갈 때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형의 곧고 바른 성격은 더 철저해졌다.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스스로 학사장교의 길을 택했고, 4년간 학교에 다니면서도 조금이라도 엇나간다거나 해이해진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모태군인’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나갔다.

그에 반해 유순하고 자유스러웠던 나는 형의 그런 행동과 말이 답답하기만 했다. 형은 농담도 안 받아주고 애교도 없고, ‘짜면 물 붓고 싱거우면 소금 치는’ 곧이곧대로의 성격에다가, 꼭 필요하지 않은 곳에는 돈을 하나도 안 쓰니 재미도 없고 마트에서 과자 하나 사 먹는 데도 눈치를 봐야 했다.

형은 나의 조그만 잘못에도 “왜 그렇게밖에 생각 못 하냐” “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냐” “네가 그렇게 하니까 안 되는 거다”라며 가차 없이 질책했고 형의 차가운 말투 때문에 내 속은 뒤집어지고 기는 팍팍 꺾였다. 하나뿐인 사춘기 동생이 실수도 할 수 있고 좀 놀 수도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융통성이 없는지, 20년을 같이 산 형제이지만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대학 선배의 권유로 마음수련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군대에 가게 됐다.

전역 후 형을 봤을 때 솔직히 좀 놀랐다. ‘헐~ 군인의 카리스마는 어디로 간 거지?’ 그 까칠했던 표정 대신 웃음이 많아지고 관대해지고 밝아 보였다. 착해야 한다, 아껴야 한다 등등 나에게 훈계도 하지 않았다. 남한테 절대 피해 안 끼치고 손해도 안 보았었는데 사람들한테 너스레를 떨며 부탁도 곧잘 하고 식사도 대접하고 특히 부모님께는 없던 애교도 마구 부렸다. 오리지널 부산 사나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편하고 자유로운 형의 모습에 나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군대에 있는 2년 동안 이제는 착한 동생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형의 권유대로 마음수련 대학생 캠프에 참가해 보기로 했다. 수련을 하는 내내 형만 떠올랐다. 형이 나한테 잘 못해줬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순전히 내 기분 때문에 형의 진심을 모르고 있었다. 형은 항상 내 옆에서 쓴소리, 좋은 소리를 하며 내가 잘되도록 도와준 것밖에 없었다. 집안 장남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며 가족을 위해, 주기만 하는 형이었는데 너무나 미안했다.

형은 그 후에도 학업과 마음수련에 열중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뒷바라지를 다 해주었다.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며 나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형한테 받은 거 어떻게 다 갚느냐고 물었을 때도 “나한테 갚을 생각 하지 말고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해주면 돼”라고 해 나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취직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것보다 무엇이든 내가 잘할 수 있는 거, 좋아하는 걸 해보라며 적극적으로 응원해준다.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형, 나도 형처럼 되고 싶다.

“형, 덕분에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생겼어. 형이 나한테 해준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살고 싶다. 누구보다도 나한텐 형밖에 없는 거 알지?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