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에게 배우다

글 & 사진 제공 김병진

개미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곤충입니다. 항상 무언가를 부지런히 나르고,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개미들. 그래서 개미 하면 ‘개미와 베짱이’ 우화에서 들은 대로 매우 부지런한 미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를 빗대듯이 구약성경 잠원 6장에는 ‘이 게으른 자들아! 개미에게 가서 그들의 지혜를 배우라’고 쓰여 있습니다. 오직 개미 연구에만 30년 넘게 매달려온 분이 있습니다. ‘개미박사’라 불리는 원광대학교 생명과학부 김병진(67) 명예교수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곤충학회(ICE)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개미박사 김병진 교수가 전해주는 개미에게 배워야 할 지혜입니다. – 편집자 주

전 세계적으로 개미는 만여 종이 넘습니다. 그중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개미는 145종임을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내 고향 강원도 횡성은 두메산골입니다. 그곳은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비늘까지 보일 정도로 청정 지역일 뿐만 아니라 인구 밀도가 낮아서 자연이 잘 보존되고 곤충도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반딧불이를 여러 마리 잡아 호박꽃 속에 넣어 등불을 만들어서 책을 읽은 적도 있습니다. 여름철 집 앞에 있는 맑은 냇물에서 수영할 때 물 위로 암수 물잠자리가 교미하며 날아가는 모습은 마치 헬리콥터 같았습니다.

내가 살던 초가집 마루 밑에는 댓돌이 하나가 있었는데 비가 오려고 하면 댓돌 밑으로 엄청난 수의 개미들이 땅속에서 나와서 부지런히 움직이곤 했습니다. 볼거리도 없고 장난감도 없는 두메산골에서 살던 나는 너무나 흥미진진한 개미들의 행동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대학에 가서 본격적으로 개미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대학원 지도 교수님이신 김창환 교수님(당시 대학원장)이 개미를 연구 과제로 주신 것입니다. 개미를 채집하기 위해 우리나라 거의 모든 유명 산과 섬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군사 지역인 백령도로 개미 채집을 나갔다가 간첩으로 오인받아 고생하기도 했고, 알프스 산에서 채집하다가 미끄러져 난간에서 떨어질 뻔도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뿔개미를 채집하다 물려 손이 퉁퉁 부어 한 달 동안 고생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뭐라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개미는 2억 년 전에 지구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간이 4백만 년 전에 지구에 출현했으니 개미가 인간의 대선배인 셈입니다. 개미는 열대지방에서 극지방까지 정복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동안 지구 환경이 수없이 변해왔지만 그들은 멸종하지 않고 1만 종이 넘게 다양성을 보이며 진화해 지구를 덮고 있습니다.

지구 상에서 개미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로 땅속에 굴을 파고 사는 개미는 땅을 파서 위로 올리고 위의 흙을 밑으로 보내기 때문에 땅을 비옥하게 하고 통기성을 좋게 하여 식물을 잘 살게 해줍니다. 또한 목수개미는 죽은 나무를 파고 들어가 굴을 만들어 집을 짓기 때문에 나무를 빠르게 부식시켜 토양을 비옥하게 합니다. 수확개미는 풀씨나 작은 나무 열매를 물고 집으로 가져오는 중 여기저기 떨어뜨려 식물의 씨앗을 전파시켜 널리 퍼져 번식하도록 도와줍니다. 매우 빠르고 힘이 센 불개미는 농작물과 삼림을 가해하는 해충의 애벌레를 잡아먹어 농작물이나 산림을 보호합니다.

더욱 놀라운 건 개미는 이미 2억 년 전부터 농사를 지어왔다는 사실입니다. 개미는 섬유소를 소화시키는 셀룰라아제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나뭇잎을 직접 먹을 수 없어, 나뭇잎을 잘라 땅속에서 곰팡이를 길러 먹고 사는 종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진딧물의 알을 물어다 땅속에 파묻어 놓았다가 그 이듬해 봄에 잎이 피면 알을 물어다 놓아기르고 그 진딧물의 엉덩이에서 나오는 단물을 빨아 먹으면서 사는 종도 있습니다. 가축을 길러 먹는 목축업을 해온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이기적 유전자라고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유전자들은 자기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개미 집단은 군서를 형성합니다. 한집에서 살고 있는 모든 개체들은 하나의 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왕개미는 하늘에 올라가 수개미와 신혼비행을 하여 교미 후 땅에 내려와서 집을 짓고 알을 낳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여왕개미는 새나 다른 곤충에 의해 잡아먹히고 극히 소수의 여왕개미만이 땅에 내려와 안착합니다. 여왕개미가 낳은 소수의 알들이 부화돼 일개미가 되면 집을 짓고 먹이를 물어옵니다. 일개미는 온갖 정성을 다해 여왕개미를 보필하며 동생들을 키웁니다. 여왕개미는 계속 알을 낳고 가족은 점점 많아져서 완전한 개미집이 됩니다.

무엇보다 개미에게서 감동적인 것은 동료애, 우정입니다. 개미를 유심히 살펴보면 개미들이 더듬이로 의사소통을 한 뒤 앞다리로 서로 붙잡고 일어서서 입을 마주대고 뽀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다수 종류의 개미들은 먹이를 발견하면 자신이 먹어치우지 않고 집에 있는 동료 개미들을 위하여 모이주머니에 일시적으로 저장하였다가 집에 가서 토해 동료에게 먹여줍니다. 개미에게는 자신의 먹이를 위한 위와 동료를 먹이기 위한 위가 있으며, 먹이를 먹을 때마다 자신을 위하여 먹을 것인가, 동료를 위하여 먹을 것인가 생각하면서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자신의 위로 보내지 않고, 어떻게 남을 위해 임시 저장소(사회성 위)에 저장시킬 수 있을까? 눈물겨운 이타적 행동입니다.

인간이 지구에 출현한 것은 4백만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구가 생성된 지 46억년이 흘렀고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사람보다 늦게 나타난 존재는 거의 없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윌슨(Wilson)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10년이 지나도 지구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개미가 없어진다면 생태계에 큰 교란이 일어나 장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고유한 역할과 기능이 있습니다. 개미 역시 이미 2억 년 전 지구에 나타난 이후 지금까지 묵묵히 농경문화를 정착시켰고 목축업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자기가 먹은 먹이를 동료에게 토해주는 우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인간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개미의 지혜를 배울 때라고 생각합니다.

개미박사 김병진님은 1947년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나, 고려대 생물학과와 동대학원을 거쳐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원광대 생명과학부 교수, 영국 CEH에서 교환교수(1987~1988년)로 재직하며 개미 생태를 연구했으며, 2008년 대구에 세계곤충학회(ICE)를 성공적으로 유치, 개최한 바 있습니다. 2004년 한국 최초로 세계곤충학회(ICE) 운영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현재 원광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