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극복한 김영애씨

김영애 37세. 보건교사

‘마음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그리고 과거, 나를 아는 사람들 모두를 다 지우고 싶다.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 너무 자만해서일까. 괜찮다고. 좋아질 거라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더 기도한다. 하지만 한순간 물밀듯이 차고 올라오는 슬픔과 분노들이 나를 참 많이 힘들게 한다. 내 마음인데도 왜 내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지. 사람이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건 아닐 텐데,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

2005년 초, 내가 쓴 일기의 내용이다. 당시 나는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성대까지 잘라내는 큰 수술을 한 상태였다. 매일매일 우울하고 땅속 깊숙이 꺼져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주변에서 걱정을 해주며 챙겨주는 모습조차 다 가식적으로 보였다. 내 자존심에, 힘든 내 마음을 들키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는 밝은 척했다. “뭐 어때, 더 큰 병도 있는데…. 괜찮아 나는 아무렇지 않아….” 하지만 이렇게 내 자신을 속이는 동안 마음은 점점 시커멓게 변해갔다.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학교생활을 했지만, 나는 결국 병가를 냈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바로 이게 지옥이구나, 내 마음이 지옥을 만들고 있구나, 뼈저리게 느꼈다. 정말 이 마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마음을 비울 수 있다더라”며 마음수련을 이야기해주었다. 마음을 비울 수 있다고? 이곳에 가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바로 수련을 시작했다.

나는 언니와 남동생,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서 참 평범하게 살았다. 운도 잘 따라줘서, 1998년 IMF라 모두 취업하기 어려울 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보건교사 발령을 받았다. 항상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졌고, 그러면서 나름으로는 잘났다는 마음이 많았다. 그런데 서른 살이 될 무렵 몸이 점점 피곤해지고 목이 붓더니, 갑상선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수술 후, 점차 목소리가 돌아오고 회복될 거라 했지만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작고 낮은 허스키한 목소리, 그리고 갑상선 기능 저하가 오면서 몸은 계속 피곤하고 부어 있었고, 70kg이 넘게 살이 쪘다. 이대로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대로 계속 살이 찐다면, 불안하고 또 불안하고, 모든 것이 억울하고 분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냥 가만히 있다가 행복을 도둑당한 기분이었다.

수련을 하며 나는 처음으로 내 모습과 솔직하게 대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빙산 덩어리 같은 열등감이 내 내면을 붙잡고 있었다는 것을. 그 열등감을 들키지 않기 위해 행복하게 보여야 했고, 성격 좋은 척했고, 다른 사람이 나를 부러워하길 바랐다.

열등감의 원인이 된 사진들이 떠올랐다. 제일 먼저 열등감을 느끼게 한 건 언니였다. 언니는 예쁘고 똑똑한 데다, 집안의 첫아이라 되게 많이 사랑을 받았다. 둘째로는 아들을 원했는데, 그게 나였다고 한다. 나를 낳고 바로 아빠가 술 마시러 갔다는 이야기를 할머니께 들으며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작은 교실에 앉아, 공부를 진짜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장면도 뚜렷이 떠올랐다. 그래야 부모님께 사랑받을 수 있고, 주변에 인정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매 순간이 그랬다. 사실은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해하고, 내 자신, 내 부모, 내 학벌. 모든 것에 열등감을 갖고 살았으면서도, 항상 나를 포장하며 살고 있었다.

카멜레온처럼 언제나 달라졌던 내 모습, 싫어도 좋은 척, 안 부러운 척, 긍정적인 척… 척….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양파 껍질 같은 탈을 쓰고 모든 사람을 대하고 있었다. 내 자신에게조차 솔직한 적이 없었고, 그저 어떡하면 나를 드러낼까만을 생각했던 삶, 이렇게 온갖 욕심과 집착의 마음을 쌓아놓고 살았는데,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었다.

참 많이 울었다. 내 몸에 잘못했고, 가족에게 잘못했고, 내 주변 모든 사람들한테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다. 열등감, 자존심, 자만심, 체면, 두려움… 세포 구석구석에 나를 지배하는 묵은 때가 끼어 있다고 생각하니 그 마음을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마음이 보이지 않는 감옥이었고, 이 마음들을 버리지 않는 한 나는 이 마음들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버리고 또 버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목 안 깊숙이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항상 가슴을 누르고 있던 돌덩어리 같은 것이 꿈틀거리며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온몸을 막고 있던 기혈이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낮은 ‘솔’ 음 이상 나오지 않던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아아아… 소리도 질러보고, 이게 내 목소리인가 몇 번을 확인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들리지 않던 목소리였는데. 이제 드디어 목소리를 찾았구나~!

살도 점차 빠지고, 몸도 정상으로 회복이 되어갔다. 몸도 쓰면 쓸수록 소모되는 소모품이라 생각하니까, 병은 신체의 일부고 몸이 아픈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몸에 대한 집착도 많이 놓여졌다. 고장 나면 고쳐 쓰면 되는 것이다. 의사는 앞으로 노래 부르기는 힘들 거라고 했지만, 난 지금 동호회의 합창단에서 노래하고 있다. 체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예전에는 밤 10시를 넘기지 못하고 쓰러졌다면, 지금은 새벽 한두 시에 자도 7시면 거뜬히 일어난다.

2006년, 나는 다시 학교로 복직했다. 주변에 갑상선 질환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 갑상선은 특히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수술을 해서 제거하면 겉으로 보이는 건 없어지지만 ‘있다’라는 마음에 묶여 있는 이상은 그 병에 끌려다니면서 살 수밖에 없다. 그 마음을 버려야지만 그 병에서 진짜 벗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 모두 공감을 한다.

마음수련으로 건강도 찾았지만, 정말로 감사한 것은 진짜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너무 힘들 땐, 사람은 왜 태어나 이렇게 고통 짐을 받고 살아야 하나, 원망했었다. 그런데 고통과 짐은 내가 만든 내 중심적인 마음들로 인해 생긴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만 버리면, 나만 버리면, 영원불변 살아 있는 진짜 존재가 드러나고, 그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꼬마였을 때부터 “너 꿈이 뭐야” 물으면 항상 “잘 살고 싶어요” 대답했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요!” 당돌하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마음수련을 하면서 나는 그 꿈을 이루었다. 어찌 보면 갑상선암이라는 그 병이 나를 진짜 삶으로 안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