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웃들과 53년, 독일인 하 안토니오 몬시뇰 신부

취재 문진정 사진 홍성훈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산동네에는 50년이 넘게 그곳을 지키고 있는 동항성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당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도록 이곳의 역사를 함께 일구어온 한 독일인이 계시지요. 파티마의 세계사도직 한국본부장을 맡고 있는 하 안토니오(90) 몬시뇰 신부입니다. 여전히 크고 강인해 보이는 체격, 호호백발의 하신부는 그곳에 오는 누구든지 손을 맞잡으며 온화한 미소로 반겨줍니다.

하신부가 한국에 온 것은 1958년. 당시 부산은 한국전쟁 이후 모여든 피난민들이 구호물자로 어렵사리 끼니를 이어나가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신부는 젊은 시절,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4년간 포로 생활을 겪었기에 굶주림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요.

그는 신부가 되자마자 낯선 한국에서 사랑과 평화의 사도로서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그는 곧장 먹을거리를 들고 집집마다 방문했습니다. 신자와 비신자를 구분하지 않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밀가루를, 헐벗은 사람에게는 자신의 옷을 내주었습니다. 어느 날 중풍 환자 한 사람이 돼지우리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단숨에 달려가 직접 목욕을 시키고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힌 후 돼지우리를 말끔히 치우고 다다미를 깔아주었습니다.

또한 고아, 앞을 못 보는 아이 등 7명의 아이들을 사제관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파티마의 세계사도직 사무국장 배경준(62)씨입니다. 14살 때 하신부를 만난 배경준씨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했고, 퇴임 후 이곳에 돌아와 하신부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정이 그리웠던 때에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8년 간 7명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시면서 학교 공부, 생일은 물론이고 물질적인 부분으로 채워질 수 없는 공허함까지 친아버지처럼 채워주셨습니다. 신부님 덕분에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요.”

이밖에도 하신부가 가난한 이웃을 위해 해온 일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급식소를 지었고, 기술학원을 설립했으며 교회 조산원을 지어 무료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했습니다.

사람 간의 장벽을 없애고 세계 평화를 실천하는 데 오래전부터 뜻이 있었던 하신부는 1964년, 파티마의 세계사도직 한국본부를 창단합니다. 그리고 1974년부터 지금까지 평화 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열고, 전국을 돌며 강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신부는 말합니다.

“천주교 신자와 회교도 신자가 우물을 팝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물이 나옵니다. 그 물은 천주교 물입니까, 회교도 물입니까? 그것은 그냥 사람을 위한 물입니다. 이처럼 진리는 하나인데, 종교나 인종, 물질문명 때문에 사람 간의 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하 안토니오 신부의 바람은 한 가지, 온 세상 사람들이 한 가족으로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을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곳 한국에서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며 살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이들의 축복을 빌어주는 간절한 기도를 멈추지 않을 거라 합니다.

하 안토니오 몬시뇰 신부는 1922년 독일에서 태어나 1958년 사제 서품을 받은 직후 한국으로 왔습니다. 1959년부터 20년간 부산 동항성당 주임신부로 재직했으며 현재 파티마의 세계사도직 한국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부산광역시는 올해 그의 공로를 인정해 부산명예시민증을 수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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