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여자, 나쁜 여자

‘영화 속 천사 같은 여주인공, 그 옆에 더 끌리는 나쁜 여자~’ 가수 이효리가 부른 ‘Bad Girls’의 가사입니다. 가요계뿐 아니라 드라마 속에서도, 온라인게임에서도 스스로의 욕망에 솔직하고 당당한 나쁜 여자 캐릭터가 인기라지요. 기존의 여성상을 깨는 ‘나쁜 여자’라는 개념이 나온 지는 오래전이지만 이제는 일탈이 아닌 일상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착한 여자로 살아봤자 남는 거 없다, 나쁘게 살자~!며 독려하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나쁜 여자, 착한 여자라는 관념도 넘어, 멋진 사람으로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행복 찾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편집자 주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자라는 것이다.
– 시몬 드 보부아르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 칼 융

일시적으로 저지르는 엉뚱한 짓들이 삶의 묘미를 더해준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착한 남자’와 ‘착한 여자’로만 사는 건 너무 지루해요.
– 파울로 코엘료 <마법의 순간>에서

나는 이미 그 자체로 멋진 여자다. 당당한 여자는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고 만든다. 좋은 여자로 남지 말고 인생의 주인이 되자.
– 데비 포드 <좋은 여자 콤플렉스>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노골적으로 말하거나, 공격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스스로 내면화하는 경향이 있다. 본인을 과소평가해 주춤하며 물러서지(lean back) 말고, 편견과 차별의 유리 천장을 끊임없이 두드려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아야(lean in) 한다.

– 셰릴 샌드버그(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린 인(Lean In)>에서

좋은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인생이 달라진다.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 듀크 로빈슨


착한 딸들이여, 나쁜 여자가 돼라

‘착한 딸’이란 어릴 적부터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자신의 욕구보다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결혼을 하여서도 남편과 자녀 또는 주위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을 말한다. 하지만 타인을 위해 살아가느라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착한 딸’은 어느 순간 정체성에 대한 위기감에 빠져 ‘못된 여자’로 변해버릴 수 있다. ‘착한 딸’에서 벗어나 당당하고 아름다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상대방의 호의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고맙습니다. 친절하시군요!” 이 말은 상대방이 도움의 손길을 뻗거나 혹은 누군가가 함께 돕고자 할 경우 지금까지 여러분이 했던 대답 대신 적합하다. 그동안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저 혼자 하겠습니다”라고만 하지 않았는가. 여러분의 집을 찾은 손님이 식사 테이블을 차리거나 설거지를 도와주면 왜 안 되는가. 이웃집 아주머니가 여러분이 들고 가는 무거운 장바구니 들어주는 것을 거부할 필요가 있을까? 상대방이 베푸는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도 인간관계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즐거워할 수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라. 어린 시절 ‘착한 딸’들은 ‘노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했다. 이미 노는 것보다 주변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을 해야 했으므로.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일에 시간을 보내보라.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 비해 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라. 누구든지 자신이 타고난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 능력을 타고났겠는가? 자신의 관심사를 개발하면 자존감은 배양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애정을 얻고자 고군분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보다 분명하게 표현하게 될 것이고, 전형적인 착한 딸의 특성이 점차 희미해질 것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갈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이제 자신을 당당하게 내보이는 여러분과 소통하고자 할 것이다. 함께 있는 것이 그냥 좋기 때문이다.

– <나쁜 여자로 사는 법>(만프레드 셰르만, 베아테 셰르만 저 I 파프리카) 중에서


‘착한 여자’들이여, 이제 자신을 표현하라

좋은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지 않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거나, 마찰이 두려워 참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을 표현해야 비로소 원활한 인간관계를 기대할 수 있다. 이제는 마음을 표현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면 부정적이거나 간접적인 말이 아닌 긍정적이고 분명한 말을 써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진솔하게 느끼고 그 요구를 들어주고 싶어 할 것이다. 가령 애인에게 꽃을 받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말들의 예는 다음과 같다. ‘꽃 좀 자주 사줬으면 좋겠어’(의도를 분명하게 밝힌 말) ‘꽃 사오는 거 잊지 마’(부정적인 말) ‘왜 꽃을 사주다 만 거야?’(부정적인 데다 간접적인 말) ‘꽃은 자주 사줘야 해’(엄격하게 선을 긋는 말) ‘좋은 남자는 여자 친구한테 꽃 사주는 걸 잊지 않던데 말이야’(부정적인 데다 간접적이며 교묘히 유도하는 말)

– <좋은 사람 콤플렉스>(듀크 로빈슨 저 I 소울메이트) 중에서


정말 ‘나쁜 여자’의 참회록

‘난 여왕벌 난 주인공 / 당장 어디로 튈지 몰라 럭비공~ ’ 씨엘(CL)이 부른 ‘나쁜 기집애’의 가사이다. 이 가사 속 나쁜 여자, 딱 나의 20대 때의 모습이었다. 어릴 때 몸이 약했던 나는 항상 보호를 받으면서 자랐다. 가정형편도 부유했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거의 다 할 수 있었고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싹텄다.

직장 생활할 때도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눈치도 보지 않았다. 언제나 최신 신상으로 나를 꾸미고 다녔다. 내가 그렇게 할수록 남자들은 더 어쩔 줄 몰라 하며 나에게 대시를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삶이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나를 처절하게 돌아본 순간이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나밖에 모르는 왕공주병 정말 ‘나쁜’ 여자였다. 언제나 내 감정에 치우쳐 남의 감정이 어떤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착한 여자들처럼 ‘나쁜 여자’였던 나 역시 남의 시선에 갇혀 있었다. “나만 바라봐줘” 하는 마음에 끊임없이 나를 치장하며 과시했던 것이다. 재밌게 사네, 멋지다, 부럽다는 소리를 즐기며,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화가 나서 씩씩대며….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참 많은 상처를 주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너무나 죄송했다.

진정 매력적인 여자는 남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는 여자, 스스로의 삶을 진실되게 만들어갈 줄 아는 여자,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들도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여자인 것 같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 송경옥 / 직장인.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착한 여자’라는 틀을 깨버리고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당당한 여자. TV 속에서 나오는 소위 ‘나쁜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후련하고 늘 부러웠다. 나는 항상 친절하다,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속칭 ‘착한 여자’의 대표 주자였다. 여자는 착실해야 해, 다소곳해야 해, 남들 앞에서는 양보해야 해…. 어린 시절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께 받은 교육은 그랬다. 엄마도 무조건 참으라고 가르쳤고, 나는 그런 엄마의 삶이 싫으면서도 닮아가고 있었다. 한 번도 사람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 감정을 솔직히 표출해본 적이 없다.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 화가 나더라도 꾸욱 참고 있다가, 우회적으로 빗대어서 말하면서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늘 사람 대하는 게 공포스러웠고 깊은 관계는 맺을 수가 없었다. 늘 부지런히 살았지만 우울증 같은 것도 오고 삶이 답답했다. 이런 마음들을 다 버리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마음수련을 하면서 내가 그동안 쌓아온 마음을 정말로 버릴 수가 있었다. 항상 잘해야 한다,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삶을 다 빼고 나니 너무 시원했다. 날아갈 거 같았다. 그냥 우주가 나였고, 모두가 다 하나였다. 누구나 완전한 존재였다. 자유로웠다. 온 세상이 내 것이었다. 진짜 행복했다.

그렇게 나를 버려본 후에 나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부당한 상황에서 화가 나면 화도 낸다.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하게 되었고, 솔직하게 부탁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상대가 싫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렇게 솔직하게 다가가니 사람들하고도 더 친밀해졌다.

한번은 남편하고 말다툼할 일이 있었다. 애들 성적이 떨어진 게 내가 신경을 쓰지 않아서라는 남편의 말에 솔직히 이야기를 했다. “당신한테 그 말 들으니까 되게 속상하다.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데, 왜 내 탓을 하냐…” 남편도 아차 싶었는지 미안하다고 했다. 애들에게도 할 이야기가 있으면 바로 표현하고, 빙빙 돌려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표현하니 오히려 아이들도 편안해했고, 나도 편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배려를 하고 나눈다. 삶이 행복해졌다.

혹시 나처럼 ‘착한 여자’라는 틀에 갇혀 힘들어하는 분이 있다면, 어린 시절의 성장 환경을 돌아보고 버려보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예전에는 나쁜 여자를 부러워했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좋다. 언젠가부터 착한 여자의 이미지는 무능하고 버려야 하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착하고 남을 배려하며 나눌 줄 아는 게 뭐가 나쁜가? 이제는 ‘착한 여자’라는 틀도 넘어 진정한 ‘착한’ 여자로 살아가고 싶다.

– 장수진 / 자영업. 서울시 강서구 내발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