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기관사 하태영씨의 마음 빼기 이야기

“뭐가 그렇게 항상 즐거워요?” 분당선 지하철 기관사 하태영(45)씨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터널을 밝히는 지하철 불빛처럼 만면에 환한 웃음을 잃지 않는 만년 소년 같은 사람. 하지만 그 역시 30대 중반까지는 해결되지 않는 삶의 근원적인 문제로 인한 공허함, 그리고 지하철 사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늘 긴장했고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한다. 정작 지하보다 더 어두운 건 자기 마음이었던 것. 그 지하 터널에서 벗어나 이제 환한 행복을 찾았다는 하태영씨의 마음 빼기 이야기.

왕십리행 분당선 첫차는 새벽 5시에 운행을 시작해요.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해.” 핸들을 쓰다듬으며 차에게 인사를 하고 운행에 들어가지요. 일용 노동직 근로자, 경비원 아저씨, 청소 아주머니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첫차를 기다리고 계세요. 우리 사회의 아침을 여는 분들과 이렇게 같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죠. 죽전역을 시작으로 오리역, 미금역, 강남까지 가는 신분당선역으로 갈아탈 수 있는 정자역을 거쳐 종점인 왕십리역까지 가는 동안 수많은 분들이 타고 내리고를 반복해요. 오늘도 고객분들을 제 시간에 무사히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렸구나 생각할 때면 기관사로서의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20대 후반부터 열차 기관차 승무 생활을 시작했어요. 8년 정도 여객열차와 화물열차 승무 생활을 하다, 2005년 3월부터 분당선 지하철을 운행하기 시작했죠. 탁 트인 자연 경관을 벗 삼아서 일하다가, 지하로 들어오니 처음엔 무척 답답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비록 몸은 지하에 있지만, 사람들의 표정이나 옷차림을 보면서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죠. 날씨에 따라, 또 경기가 어떠냐에 따라 사람들의 표정이나 옷차림에도 차이가 있어요. 경기가 어려울수록 표정도, 옷차림도 어두운데 안타까운 건 요즘 많은 분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거예요. 사실 저도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 있던 사람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경북 풍기에서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 3남 1녀 중에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조숙한 편이어서 중학생 때부터 고민이 “마음이 주인인데 왜 늘 몸에 끄달려 살까”였어요. 점점 커가면서는 나는 누구지? 나는 왜 살지? 그런 고민까지 따라왔고요. 이왕 태어난 거 내 자신에 대해서 1%라도 알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를 알기 위해, 내 몸을 이기기 위해 산도 타고, 극한 운동도 하고, 여기저기 많이 찾으러 다녀봤지만 해결이 되지 않았죠.

지하철을 몰면서는 늘 사상 사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많았어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기는 하지만 문득문득 밀려오는 공허함, 답답함과 불안함…. 지하보다 더 어두운 내 마음속의 터널에서 벗어나고 싶었죠. 그러다 2006년에 객실에 놓인 마음수련 안내 책자를 보게 되었어요. ‘마음수련’ 네 글자를 보는 순간, 아 여기에 내가 궁금해하는 답이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바로 수련을 해서, 제가 살아오며 쌓아놨던 마음들을 하나하나 버리기 시작했어요.

한번은 운행 중에 차량 고장이 난 적이 있었어요.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차가 지연되니까 승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기관실 문을 두드리는데, 빨리 고쳐지지는 않고, 식은땀이 막 흐르면서 많이 두려웠었죠. 큰 사고를 겪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일들이 제 마음에 큰 불안으로 자리하고 있었더라고요. 선로에 누군가가 뛰어들어 자살을 했다는 뉴스, 끔찍한 지하철 사고, 주변 동료들한테 들었던 크고 작은 사고 이야기들…. 제가 실제로 겪지 않았다 해도 제 마음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런 마음들로 인해 혼자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긴장하고 있었구나. 그런 걱정, 불안들을 열심히 빼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버리고 버리는데 어느 순간 딱 깨침이 오더라고요. 아, 나는 원래 없었구나, 나는 원래 우주에서 왔구나, 이 우주가 나였구나, 그냥 이 우주의 마음이 되어 살면 되는 거로구나…. 그동안의 답답함들이 한꺼번에 폭발해서 사라진 느낌이랄까. 그렇게 찾아 헤맸던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도 얻었지요. 그 후련함과 희열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행복했죠. 그러면서 참회도 되었어요.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공기가 있어서 내가 숨 쉬며 살 수 있고, 이 차가 있어서 내가 열차를 운행할 수 있고, 지하철을 타주는 고객들이 있어서 나와 내 가족이 먹고살 수 있는데 나는 내 안에만 갇혀 감사함을 모르고 살았구나.’ 얼마나 죄송하던지. 그런 참회의 시간을 갖고 나니, 마음 자세도 달라지더라고요. 더 크게 세상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 뒤로는 고객 한 분 한 분이 더욱 감사하고 소중해졌습니다.

승강장에서 위험한 장난을 치는 손님, 문이 닫히려는 순간 손발이나 가방을 넣어 억지로 문을 열려는 손님, 술에 취해 시비 거는 손님…. 지하철을 운행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분들을 만나요. 예전엔 그런 모습 보면 짜증이 나고,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지금은 얼마나 바쁘면 그럴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럴까…. 그분들 입장에서 생각하며 밝은 웃음으로 태워갈 여유가 생겼어요. 휠체어 타시는 분들이나, 시각장애인분들을 보면 좀 더 여유 있게 출발한다거나, 그분들이 내리실 때면 안내 직원을 불러준다거나, 예전보다 훨씬 섬세하게 고객을 챙기게 되었지요.

그 뒤로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즐거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어요. 온갖 마음의 사진들이 있을 때는, 하루에도 죽 끓듯이 마음이 변하고 잡념도 많았는데, 그런 사진을 다 버리고 보니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고 최선을 다할 수가 있더라고요. 이게 바로 몸 마음이 하나 되어 사는 것이구나 매일매일 깨닫습니다. 우주의 마음은 서로가 도와주고 서로를 살리는 마음이더라고요. 무엇보다 가장 감사하고 행복한 건 늘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잠자리에 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사고를 경험한 기관사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지하 터널 속, 늘 좁은 기관실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폐소공포증이나 공황장애로 고생하는 분들도 있고요. 공황장애로 기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제 꿈이 기관사들을 위한 마음수련 동호회를 만들어서, 많은 기관사분들이 마음 빼기를 하며 일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거예요. 어두운 마음의 터널에서 벗어나면 정말 환하고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 행복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함께 누렸으면 합니다.

정리 최창원 & 사진 김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