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도 ‘사랑의 집’ 장영진 원장

취재 문진정 사진 제공 아창

중국 청도에서 버스로 세 시간을 달리면 지머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 나옵니다. 이곳에 부모를 잃은 고아와 장애아들이 살아가는 ‘사랑의 집’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엄마’ 혹은 ‘할머니’로 불리며 10년째 사랑의 집을 지켜온 사람은 미국계 한국인 장영진(64) 원장입니다.

1978년 미국으로 이민 간 후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했던 장영진씨는, 2003년 중국의 한 어린이공원 안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 봉사를 하기 위해 들렀습니다. 변변한 난방시설도 없이 추위에 떠는 아이들을 보며 돌아서는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는 그녀는 그 길로 중국 고아들의 엄마로 살겠노라 결심을 합니다.

“어릴 때 고아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았어요. 그때 이다음에 꼭 고아원을 하자고 형제들과 약속했었죠. 바쁘게 살다 보니 잊고 있다가, 뒤늦게라도 그 약속을 지키게 되었으니 감사하지요.”

사업도, 가족도 다 내려놓고 무작정 청도로 온 그녀는 지머마을에 ‘사랑의 집’을 지었습니다. 일년 내내 꽃이 피도록 꽃밭을 만들고, 비단잉어가 노는 연못도 만들었습니다.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이 예쁜 자연을 보며 치유되었으면 하는 뜻에서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소개로 아이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되자 장영진씨는 빨래, 청소 등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친자식처럼 사랑으로 대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지요. 아이들은 처음 받아보는 관심에 너무 좋아했지만 점점 남에게 의지하려고만 하는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모질게 마음을 바꾸어 먹고 모든 생활을 스스로 하도록 했습니다. 낙각 공예실과 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도 지어 미래에 자립할 수 있는 기반도 만들고 “지에찐 츄엔리~(최선을 다하자)” 등 일년에 한 가지씩 인사를 정해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외치며 자신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그녀가 며칠 자리를 비워도 될 정도로 아이들은 자립심이 생겼습니다.

아이들만큼이나 장영진씨의 삶도 달라졌습니다. ‘원래 애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그녀가 이제는 아이들의 손짓만 봐도 피로가 싹 풀리고 아이들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난생처음 채소밭을 일구고, 고추장, 된장을 담그며 고운 손은 거칠어지고 주름은 깊어졌지만 어느 때보다 기쁘고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40명의 아이들 못지않게 소중한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함께 사랑의 집을 지키고 있는 손나(29)씨입니다. 유학차 지머마을에 왔다가 9년째 함께하고 있는 이 중국인 아가씨는 먼 훗날 장영진씨의 뒤를 이어 아이들을 보살필 ‘예비 엄마’이기도 하지요. 친딸처럼 든든한 그녀 덕분에 장영진씨는 한 가지 소망이 또 생겼습니다. 중국 어느 지역이든 제2의 ‘사랑의 집’을 만들어 더 많은 아이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중국에는 아직도 고아나 장애 아이들이 많이 있어요. 아주 어려운 곳 한 군데만 더 만들 수 있다면, 그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지켜볼 수 있다면, 그게 저에게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사랑의 집’ 안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오늘도 아이들이 언제 어디에서든 꿈을 잃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장영진님은 10년 전부터 청도 지머마을에 ‘사랑의 집’을 만들어 중국의 고아와 장애 아이들을 보살펴오고 있습니다. 자신이 해준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지금의 삶이 너무나 감사하다는 그녀는 여생을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