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났다, 까미!

아내는 설거지 중이었다. 어머니가 과일을 깎으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며칠 전, 어머니 집 고양이 까미가 달걀만 한 생쥐를 물어왔다. 까미는 생포한 전리품을 단박에 처치하지 않고 현관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는 앞발로 툭툭 치면서 장난감 굴리듯 가지고 놀았다. 달걀만 한 생쥐는 죽기 살기로 탈출하려 하고 까미는 잽싸게 제자리에 물어다 놓기를 되풀이하였다. 나중에는 생쥐도 지쳤는지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또 좀 더 있으니까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라’는 듯 땅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꼼지락꼼지락 제 할 짓을 하고 다녔다.

애가 닳은 쪽은 부삽을 들고 지켜보던 어머니였다. 까미가 얼른 생쥐를 처치해주어야 부삽으로 떠서 울 넘어 풀밭 사이에 훽 던져버릴 텐데, 까미란 놈은 세월아 네월아 재작질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꼬물꼬물 포획자의 행동 반경을 넘나들던 달걀만 한 생쥐가, 순식간에 장독간 매실 단지 사이로 숨어버렸다. 멍청한 고양이 까미는 뒤늦게 엉뚱한 곳을 기웃거리고, 보다 못한 할매가 다급하게 장독 사이로 한쪽 발을 밀어넣어 쥐 꼬리를 밟으려 했다. 하지만 생쥐는 생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시골 고양이는 결코 주인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날 사냥의 맛을 알게 된 까미는 세상의 쥐란 쥐는 모두 잡아버릴 듯 쥐를 잡아 날랐단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자신의 전리품을 보란 듯이 현관 앞에 갖다 두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게 고양이 마음인지, 까미가 갑자기 사냥을 뚝 끊었다. 만날 밥만 축내고 빈둥대는 그 꼴을 보다 못해 어머니가 말했다.

“까미야, 요새 왜 쥐 안 잡아오노? 내일은 쥐 한 마리 잡아서 이 할미한테 좀 보여줘라잉.”

다음 날 아침, 세상에 이럴 수가. 까미가 진짜로 쥐 한 마리를 물어다 놓았다. 똑똑한 고양이 까미가 마침내 한국어를 깨친 것이다. 어머니는 하도 기특해서 까미를 쓰다듬어  주고 부삽을 들고 전리품을 치우러 다가갔다. 그런데 뭐가 좀 이상했다. 예전에 제 녀석이 사냥해서 텃밭 고랑에 버려둔 거의 박제가 된 상태의 쥐였다.

“아이구, 요놈 고양이까지 할매한테 사기를 치네!”

눈 가리고 아옹이란 말이 달리 나온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까미는 모처럼 할머니의 간절한 부탁을 접수했지만, 사냥할 마음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밭고랑 사이에 굴러다니는 마른 쥐를 대신 갖다 놓았다는 이야기다.

“까미가 말을 할 줄 알면 참 재미있겠네요.”

설거지를 마친 아내가 한마디 했다. 그것도 아내가 뭘 모르는 소리다. 이미 한국어를 깨친 고양이 까미가 만약에 한국말까지 구사한다면 진짜 성가실 것이다. 할매 발부리에 걸려 부딪칠 정도로 졸졸 따라다면서 종알종알 궁시렁궁시렁 참견하는 꼴이라니. 아마 견디다 못한 우리 어머니가 괴나리봇짐을 싸고 가출을 시도하지 싶다.

최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