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일깨우는 천상의 소리, 종

우웅~ 종소리가 울린다. 세상만물을 향해 깊게, 넓게, 크게 울린다. 불교에서 말하는 범종(梵鐘)의 범(梵)자는 우주 만물, 진리란 뜻을 지닌다 한다. 또한 고대 인도 신화의 브라흐마Brahma신을 뜻하는 대범천(大梵天)의 범으로 하늘이라는 의미가 있다. 결국 범종이란 ‘하늘의 종’으로서 ‘진리의 소리’로 세상을 일깨운다는 뜻이다. 하기에, 우리는 33번의 엄숙한 타종과 함께 새해를 맞는다.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무엇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 고요히 마음 저편을 울리며 세상과 나를 일깨우던 종소리…. 2012년 임진년(壬辰年) 새해를 맞으며 그 의미를 되새긴다.

사진 홍성훈 글 김혜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통일신라 725년. 국보36호)의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
이 종은 현재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상원사에 있으며, 2006년 주철장 원광식 선생이 재현해내어 진천 종박물관에 전시한 것을 촬영하였다.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 왼쪽은 커다란 공후를 끌어안고 연주하고 있으며 오른쪽은 생황을 불고 있는데 하늘로부터 하강하는
부드러운 동세가 느껴진다. 상반신에는 영락瓔珞을 드리웠고 팔과 허리 아래로는 얇은 천의天衣를 걸친 모습이 매우 섬세하고 우아하다.

하늘과 땅을 울리고 지하 세계까지 울려 삼계의 모든 유정 무정을 깨달음의 세계로 실어 나른다는 범종 소리.

우리나라에서 범종은 삼국 시대 불교의 전래 이후 제작, 사용되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통일신라 8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범종이다. 대개 한국의 종은 신라 종으로 통하며, 오늘날 한국 종이 코리안 벨(Korean bell)이라는 세계적인 학명을 얻게 된 것도 신라의 독창적이고도 아름다운 조형성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종에는 그만의 특별한 소리의 비밀이 담겨 있다. 즉, 종 표면의 당좌(撞座)를 치면 잡음이 종 내부에 뚫린 음통으로 빠져나가고 좋은 소리는 땅 밑 움통에 반사돼 다시 새로운 진동을 만들며 그 여운을 길게 이어가는 것이다.

그 종의 소리가 파동 치듯 길게 이어지며 ‘우우웅~ 우우웅~’ 하는 맥놀이 현상이 나타난다. 맥놀이 현상이란 맥박이 뛰는 것 같은 리듬을 탄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진 것으로, 진동수가 다른 두 개의 소리가 서로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며 울리는 현상을 말한다. 맥놀이의 주요 원인은 종 두께의 불균형. 서양 종은 내부를 고르게 깎아 소리가 일정한 데 비해 우리 종소리는 두께가 고르지 않고, 표면에 장식되는 각종 문양들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웅장한 타격 음, 그리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여음의 파고는 세상 어떤 종도 낼 수 없는 천상의 소리인 것이다.

우리 종의 생김새, 각종 문양의 뜻과 의미, 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등을 살펴보다 보면, 천상의 소리를 내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과 지혜에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당좌(撞座)

종을 치는 자리. 당목과 직접 닿는 부분인 당좌는 종신의 하대에 별도로 마련되어 도드라지게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종 하부를 타종할 때 종소리가 가장 크고, 상부로 올라갈수록 소리가 작아진다. 당좌가 종구의 밑에서 가장 불룩한 부분에 위치하도록 했으며, 이 부분을 칠 때 가장 좋은 소리가 난다.


용뉴(龍紐)

용을 종에 장식한 까닭은 좋은 소리를 얻기 위한 것으로 「문선(文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바닷속에는 큰 물고기가 있는데 고래라 하고, 해변에는 용의 자식이 있으니 포뢰라 한다. 본디 포뢰는 고래를 두려워하여 고래가 나타나면 큰 소리를 내어 운다. 무릇 종은 소리가 커야 하므로 그 위에 포뢰를 만들고 고래 형상을 깎아 당봉(撞棒)으로 하였다.”



연곽과 연뢰(蓮廓 蓮雷)
연꽃 봉오리 형태로 돌출된 장식을 연뢰라 하고, 그 장식을 감싸고 있는 방형곽을 연곽이라고 한다.

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와 소리를 울리는 몸체(종신:鍾身)로 구분된다. 종의 고리는 종뉴(鍾紐)라고 하는데 용의 형상을 하고 있어 용뉴(龍紐)라고도 부른다.

용뉴(龍紐)는 용머리와 휘어진 목으로 구성된 종을 매다는 고리이다. 일본과 중국 범종은 하나의 몸체로 이어진 쌍용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범종은 한 마리의 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용머리가 ∩형태여서 마치 범종 전체를 물어 올리는 듯하다.

종의 몸체를 살펴보면, 종 윗부분을 둘러싼 것을 상대(上帶)라 하고, 맨 아랫부분을 둘러싼 띠를 하대(下帶)라고 한다. 상대와 하대에는 불교에서 이르길 극락정토에서만 피어난다는 가상의 꽃 당초 무늬를 새기는 게 보통이었다.

종신에 새겨진 비천상(飛天像)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인으로 불교 미술품에서 천상 세계를 표현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하고 있으면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이라 부른다.

통일신라 시대 범종에는 주로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천인상이, 고려 시대 범종에는 비천상, 불, 보살좌상이, 조선 시대 범종에는 보살입상 등을 장식했는데 그 섬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범종은 지상에 낮게 띄워 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종 아래쪽 땅이 움푹 패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움통이라 하여 종에서 빠져나온 공명이 메아리 현상으로 다시 종신 안에 반사되며 여운이 길어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움통 또는 명동(鳴洞)
종 아래쪽 땅이 움푹 패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우리 종만의 특징이다.

상대와 하대(上帶, 下帶)
불교에서 이르길 극락정토에서만 피어난다는 가상의 꽃인 당초 무늬를 새기는 게 보통이었다.

불교에선 부처님 말씀은 경(經)에만 있지 않고, 소리를 통해서도 진리의 말씀이 전해진다고 보았다. 이를 무성설법(無聲說法)이라 하여 법고, 목어, 운판, 범종을 통해 세상에 전했다. 법고(法鼓:큰북)는 땅에 사는 중생을, 목어(木魚)는 물속에 사는 중생을, 운판(雲版)은 하늘에 사는 중생을, 범종(梵鐘)은 지옥에서 신음하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극락인가, 지옥인가. 그곳이 어디이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한 듯하다.

종이 소리로서 세상만물을 일깨워주듯이, 우리도 서로의 종이 되어 서로를 깨워주는 것.

겸허함으로 상대 앞에 무릎 꿇고, 오직 사랑으로 인내하며…. 서로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다면 어떠한가.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고려 동종(보물 277호)
전북 부안 내소사 소재
이 종이 내소사로 오게 된 경위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설화가 전한다. 종을 원하는 곳으로 보내기 위하여 종에게 개암사,실상사,부안 월명사 등을 차례로 물으며 종을 쳤으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소사로 가겠느냐고 묻고 타종을 한 후에야 비로소 소리가 울려 이 절로 옮겨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