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노는 아저씨의 친절한 고민 상담소

결혼 적령기에 든 30대 초반 직장 여성입니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면 결혼까지 해야 한다 생각하니 점점 눈만 높아져요. 누군가 만나게 되도 이것저것 재고 있으니, 제대로 만나지지 못하고요.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배우자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게 뭔지 좀 알려주세요! 너무 비현실적인 거 말구요.

제가 어릴 적 일요일 아침 8시만 되면 누나들이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눈을 비비고 누나들 틈 사이로 빼꼼히 들여다보면 TV 화면에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운다며 여자아이 하나가 들판을 처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늘 위로 뭉게뭉게 샤방샤방한 꽃미남 오빠들이 나타납니다. 키 큰 놈, 머리 긴 놈, 곱슬머리인 놈…. 얼굴의 반이 눈인 저 여자아이는 전생에 대륙별로 나라를 하나씩 구했는지 참 복도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녀님은 결혼 적령기에 접어드셨군요. 이제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막상 결혼을 염두에 두고 이성을 만나려니 많이 부담되고 생각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본인 스스로가 너무 눈이 높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시는데, 얼굴의 반이 눈인 저 여자아이도 큰놈, 긴놈, 뽀글이를 놓고 간을 봅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사과 하나를 고를 때도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고르려고 노력하는데 하물며 인생의 반려자를 고르는 데 눈도 높아야 되고 이것저것 재서 만나셔야 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배우자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게 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셨는데,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겠습니다. 성실한 사람 찾으세요. 어디서건 결과적으로 인정받는 건 성실성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재력 그리고 약간의 인물 그리고 약간의 센스…. 현실적으로 좋은 거라면 조금이라도 없는 거보단 있는 게 훨씬 좋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즐겁게 얘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겠죠.

참고로 캔디는 계단에서 뒤따라 뛰어내려와 백허그를 하며 처울던 머리 긴 놈하고는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포니동산에서 ‘꼬마 아가씨는 웃는 모습이 더 예쁘다’며 동산 아래를 같이 바라보던 알버트 아저씨와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ㅋ

동네 노는 아저씨 백일성. 올해 나이 41세,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초딩 남매 그리고 1930년대생 부모님과 함께 한집에서 박 터지게 살고 있음. 3년 전 우연히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박 터지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남기게 됨. 2년 전에는 <나야나 가족 만만세>라는 수필집도 발간했음. 좌우명이라고 할 거는 없지만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자주 들었던 말, “지랄도 많이 하면 는다~”를 한 가지 일에 꾸준히 하라는 말로 새기고 살아오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