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병어 각시

옛날 옛적 바닷속 마을에, 입이 아주 큰 노총각 대구가 살고 있었다. 대구란 물고기가 원래 몸뚱이에 비해 입이 우스꽝스럽게 크긴 하지만, 노총각 대구는 정도가 더 심했다. 웃으면 입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중매쟁이 문어 할매가 대구네 집에 찾아와 물었다.

“대구야, 병어 각시 얻어주까?” 병어? 대구는 눈을 끔뻑이며 병어 아가씨를 그려보았다. 바다 마을 물고기 중에서 입이 제일 작은 병어. 그 귀엽고 섹시한 입술을 상상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대구가 커다란 입을 활짝 벌려 웃으면서 대답했다. “으흐흐흐흥.”

병어 같은 아내와 함께 산 지 스무 해를 넘긴 어느 날, 밥상머리였다. 아내는 사과를 깎고 있었고 나는 탈모 방지용 검은콩 가루 한 숟가락을 물에 타서 휘휘 젓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어! 사과 한 조각이 없네?” 나는 접시에 놓인 사과 조각들과, 아내가 깎고 있는 사과 조각을 재빨리 눈으로 조립해보았다. 그랬더니 온전한 사과 한 알이 되었다.

“딱 맞네, 뭐.” 아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과 조각들을 열심히 헤아렸다. 그러더니 또 실눈을 뜨고 말했다.

“아닌데… 한 조각이 없는데… 당신이 먹은 것 아니야?” 멈칫했다. 밥숟가락 놓고 난 후의 상황이 헷갈렸다. 아내가 단호하게 치고 나왔다.

“아까 당신이 먹었잖아?”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한 조각을 먹어 치운 게 아닐까. 내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입을 꼭 다문 채, 살그머니 혀를 굴려 입속에서 사과 흔적을 찾아보았다. 깔끔했다. 그때 아내가 갑자기 ‘어머, 어머’ 하더니 저 혼자 입을 가리고 깔깔 웃었다. 갑자기 자기가 먹은 기억이 나서 웃음으로 실토한 것이다.

하지만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었다. 며칠 전 아내는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아프다고 하였다. 밤중에 화장실에 가다가 식탁 다리에 부딪힌 후, 통증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른 병원에 가라고 닦달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병원에 가서 발 깁스를 하고 왔다. 그리고 이상한 신발도 한 짝 얻어 신고 왔다. 발가락 골절 보호용 플라스틱 신발이었다.

아침에 아내는 오른쪽 발에 단화를, 왼쪽 발에 파란색 플라스틱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출근길에 나섰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니 철부지 병어 아가씨 같았다. 하지만 또 어찌 보면,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얼른 나아야겠다는 일념만 가득한 억척 아줌마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이제 착각과 건망증은 짓궂은 손님처럼 우리 부부를 찾아올 터이다. 두부 자르듯 명쾌했던 살림살이도, 콩나물 다듬듯 조심스러울 것이다. 이제 담담한 관용과 유쾌한 농담이 필요한 때다.

최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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