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이 술 먹으면서 무슨 얘기해?

백일성

퇴근하는 길 동네 후배에게서 술 한잔하자는 연락을 받고 약속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늦게 동네 선배에게도 퇴근하는 대로 전화 달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내와도 통화하고 저녁 8시 정도에 후배와 마주 앉아 소주 한 잔을 입에 넣었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고 12시 정도쯤 집에 도착한 거 같습니다. 아내가 자리에 금방 누웠는지 인기척에 바로 일어나 눈살을 찌푸리면서 묻습니다. “동네에서 간단하게 먹고 들어온다며? 몇 시야? 도대체 남자 셋이 무슨 얘기가 그렇게 재밌어서 이 시간까지 술을 먹어? 무슨 얘기해?” 여자 셋이 모이면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30대 초반, 40대 초반, 40대 중반 이런 동네 선후배 남자 셋이 모이면 이런 얘기합니다.

소주 한 병. “요즘 직장 어때요?” “뭐 그렇지~ 넌?” “저도 죽을 맛이죠 뭐.” “술맛 떨어진다! 직장 얘기 그만~” “안주 나오기 전에 한 잔 하시죠.”

소주 두 병. 선배 형님이 늦게 도착했습니다. “늦었네요. 요즘 회사 바빠요?” 선배 형이 소주 한 잔을 비우며 말합니다. “야 술맛 떨어진다 말도 꺼내지 마라.” “안주 드세요.”

소주 세 병. “저 양반 나오면 될까?” “단일화가 문제지.” “누가 되던 그놈이 그놈이지.” “야, 술맛 떨어진다! 정치 얘기 그만~” “안주 하나 더 시키죠.”

소주 네 병. “요즘 씨스타가 대세죠?” “이 형이 카라, 미스터 이후 첨으로 인기가요를 보잖냐. 걔들 때문에.” “저도요, ㅎ” “형님들 뮤직비디오 전송해 드릴까요?” “야, 술맛 난다.” “아줌마 안주 시킨 지가 언젠데~”

소주 다섯 병. 여기서부터는 가물가물 언뜻 생각나는 단어들만 나열합니다. [박지성… .Q뭐?… QPM… 그건 투피엠이고 QPR.… 아… 박주영… 고등학교 때 패싸움이… 첫사랑… 너 몇 사단?… 훈련병 때… 와… 뭐… 야… 거… 내가 진짜… 우아…]

소주 여섯 병. “형이 로또만 되면 말이다….”

붉어진 얼굴로 술집을 나와 걸어가는데 길거리 한복판에 인형 좌판이 벌어졌습니다. 당나귀 인형 대여섯 마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길거리를 누비고 있습니다. 선배가 후배 녀석에게 아이 갖다 주라며 한 마리 골라 보라고 합니다. 길거리 좌판 앞에 술 취한 아저씨 셋이 앉았습니다. 30대 초반의 갓 돌 지난 아이의 아빠는 요즘 전셋값 때문에 걱정입니다. 한없이 올라간 전셋값에 가을에 이사를 결정했나 봅니다. 한마디 합니다. “아저씨 당나귀 말고 기린으로 주세요.” 40대 초반의 중학생 남매를 키우고 있는 아저씨는 서랍에 사표가 넣어져 있습니다. 10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려고 합니다. 하지만 일년째 서랍 안에 있습니다. 한마디 합니다. “야, 당나귀가 더 이뻐~~” 40대 중반의 고3 딸 아빠는 얼마 전 아버님이 폐암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오늘도 그의 지갑에는 로또가 있습니다. 한마디 합니다. “아저씨~ 건전지 서비스로 한 개만 더 줘요.”

아내가 재차 묻습니다. “남자 셋이 뭔 얘기를 하냐니까?” 이불 안에서 웅얼거리듯 대답했습니다. “씨….” “뭐?”  아내가 재차 묻습니다. “씨… 스… 타.” 이불 밖으로 내밀렸습니다. 이런~~~

 

올해 마흔두 살의 백일성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학생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