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죽어도 모르는 여자들 이야기

퇴근길에 동네 형님을 만나 간단하게 술 한 잔을 하게 됐습니다. 집에 있던 형수도 부르고 오늘 일찍 퇴근해서 미장원에 들른다던 아내에게 전화했는데 받지를 않았습니다. 형수님이 도착하고, 나오는 길에 아내와 통화를 했다며 이제 미장원에서 출발한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오후 3시에 퇴근해서 미장원에 들른다는 아내가 7시가 다 되어서 끝이 났나 봅니다. 저에게는 분명 앞머리만 살짝 다듬는다고 했는데 마음이 변해서 큰 공사를 한 모양입니다.

안주가 나올 때쯤 아내가 왔습니다. 미스코리아 사자머리까지는 생각 안 했지만 그래도 뭔가 크게 달라진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습니다. 그냥 아침에 출근했던 그대로였습니다. 아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동네 친구 사이인 형수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어머야~~ 나 엉치뼈 아파 죽는 줄 알았다. 4시간 앉아 있는데 배도 고프고….” 형수가 두부김치 한 쌈을 싸서 아내의 입에 넣어주며 맞장구를 쳐줍니다. “고생했다 가시나야. 어머, 옆머리 많이 잘랐구나. 훨씬 낫다 얘~~~ 그 정도 라인에서 끊어주니까 내 말대로 컬이 살잖아. 어머, 너무 예쁘다 얘~~”

두부김치 한입을 입에 물고 아내가 신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괜찮니? 어머, 난 너무 올린 거 아닌가 하고 걱정했지. 요기 밑에 라인까지만 하려다가, 너 말 생각나서 요기까지 올렸잖니, 요기까지 한 번 더 올리려고도 생각했는데, 그럼 이쪽 웨이브가 어중간하다고 담에 끝 부분을 한 번 더 말아주라고 하더라고.”

형수가 아내의 소주잔에 술 한 잔을 채워줍니다. “어머야~ 잘했어~~ 맞아, 지금 길이가 딱 좋아. 어! 윗머리도 폈구나?” 아내가 소주잔을 들었다 다시 놓으며 정수리를 테이블 쪽으로 들이밉니다. “머리가 너무 뜨는 거야. 그래서 머리 뿌리 부분만 스트레이트 했어. 이게 시간이 너무 걸린 거야. 사람도 많고 나 숱 너무 많잖아.” “어머야! 그러니까 밑에가 산다 얘~~ 밑에 볼륨이 사니까 훨씬 어려 보인다. 얘~~”

형수가 아내의 머리끝을 살짝 만져 보는가 싶더니, “영양도 했구나!” 아내가 머릿결을 한번 쓰다듬고, “요즈음 머리가 너무 푸석한 거야.” 이후 전혀 옮겨 적지도 못할 전문적인 언어가 둘 사이를 오고 가나 싶더니, 아내가 얘기하다 말고 문득 형수의 옆머리를 들어 올리나 싶더니, “어머, 지지배 귀걸이 너무 예쁘다. 저번에 귀걸이 아니네. 샀어? 너무 예쁘다.”

형수가 웃으며 옆머리를 귀 뒤로 쓸어 올리고 나서야, 귀에 붙은 코딱지만 한 귀걸이를 전 봤습니다. 앞에 형님과 둘이 소주 한 병씩을 다 비울 때까지 두 아줌마는 연신 서로 예쁘다는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청룡영화제 대기실에서 만난 전지현과 김태희도 서로 저렇게 예쁘다고 칭찬을 주고받진 않았을 겁니다.

 

간단한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자주 먹이를 주던 길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아내가 늘 가방에 준비하고 다니는 먹이를 하나 꺼내 들고 고양이와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 지켜봤습니다.

그때야 아내의 머리 모양이 눈에 조금 들어왔습니다. 저의 시선을 느꼈는지, 아내가 뒤를 돌아보며 소주 한잔에 빨갛게 된 건지 쌀쌀한 날씨에 빨갛게 된 건지 모를 볼에 두 손을 살짝 올리며 한마디 합니다. “예뻐서 그러는구나? 이제 둘만 있으니까 예쁘다고 얘기해도 돼.” 질문만 하고, 대답도 안 듣고 아내가 집을 향해 걸어갑니다.

울타리 밑에서 아내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당당이가 울음소리를 냅니다. 아내가 지어준 길고양이 이름입니다. 얼굴에 큰 점이 있고 참 못생겼는데 온 동네를 당당하게 걸어 다닌다고 해서 아내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당당이에게 눈인사를 하며 저도 아내 뒤를 따르다 당당이에게 나지막이 한마디 했습니다. “너도 당당이지만………… 쟤도 44살 먹은 당당이야. 너만 알아….”

백일성(44)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고딩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 <땡큐, 패밀리>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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