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와 나

우리는 평생 TV를 보며 살아갑니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너무나 가까이에 있는 TV라는 매체는 새로운 정보와 뉴스를 전달하고, 때론 인생의 교훈과 감동,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족 간의 대화는 점점 멀어지고 아이의 두뇌 발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바보상자’라 불리기도 하지요. 하루 평균 3시간 넘게 TV를 시청하는 우리에게 과연 TV란 무엇일까요?
‘TV와 나’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 편집자 주

아이들에겐 밤에 보는 TV가 더 나쁘다

프로그램 내용과 상관없이 오후 7시 이후에 TV를 보면 어린이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시애틀 어린이 연구소의 미셸 개리슨 연구원은 아직 학교에 가지 않은 어린이의 TV 시청 시간대와 잠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 낮보다 밤에 TV를 본 아이들이 잠을 설칠 확률이 높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3~5세 아동 617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TV 시청 습관과 수면 패턴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7시 이후 늦은 시간대에 TV를 본 아이들이 악몽으로 밤에 잠을 설치거나 다음 날 피곤해할 확률은 낮에 TV를 본 아이들보다 훨씬 높았다. 폭력성이 없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본다 해도 잠을 방해받기는 마찬가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장난으로 때리고 넘어지는 ‘유치한 장면’도 5세가 안 된 어린이들은 현실과 TV 내용을 구분할 능력이 부족해서 심각한 장면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거실의 TV를 없앤 후 찾아온 가족의 행복

나는 아파트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세 자녀와 함께 대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 좋은 점도 있지만 생활 방식 차이에서 오는 고부간의 갈등도 있었다. 그중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게 TV 소음이었다. 그동안 거실은 낮에는 아이들의 EBS가 점령하고, 밤에는 할아버지의 바둑 채널이 점령하던 곳이었다. 마치 낮과 밤의 주인이 바뀌는 ‘백마고지’ 같은 분쟁 지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집안 봄단장을 하면서 과감히 TV를 없앤 후 우리 가족에겐 평화가 찾아왔다. 거대한 42인치 LCD TV가 그동안 얼마나 지배력이 컸었는지 없애보면 알 수 있다. TV 자리엔 PC를 놓으니 음악도 편하게 들을 수 있고 모니터의 스크린세이버 기능으로 그동안 찍기만 하고 잘 보지 않던 디카 사진들을 마치 디지털 액자처럼 볼 수 있어 좋다. 차 한 잔만 들고 나오면 아늑한 카페처럼 독서도 가능하게 되었다. 점점 예민해지던 아내가 누구보다 좋아했다. 거실이 조용한 매개 공간이 되면서 세대 간 갈등이 상당히 완충되었다. 처음에는 조용한 거실이 낯설어 불편해하시던 아버지도 거실로 나오셔서 PC로 바둑도 두시고 신문도 보신다.

나는 건축 설계를 평생 직업으로 해왔다. 하지만 파티션의 변경 없이도 전혀 다른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 삶의 방식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또한 TV란 가구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동안 삼대가 한집에 같이 산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다. 진작에 좋은 환경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 가족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최희호 43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긍정적인 TV프로그램이 건강 증진시켜

TV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장면들은 혈압을 높이고 아드레날린을 활성화시켜 심박동 수를 높이는 한편 뇌의 공포 중추도 자극한다. 이럴 경우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코르티솔은 많이 분비될 경우 혈액세포와 뇌세포에 피해를 주며, 특히 복부에 살이 붙게 한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마다 우리는 기분을 좋게 하는 무언가를 더 찾게 된다. 고당도, 고단백 음식 혹은 담배나 술에도 손을 대기도 한다. 반면 용기와 연민을 주제로 다룬 감동적인 내용의 TV프로그램과 비디오는 혈압과 심박동 수를 낮추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하버드대학의 한 연구는 긍정적인 프로그램이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것을 확인했다. 테레사 수녀가 인도 콜커타의 가난한 자들을 돕는 내용의 비디오를 일부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더니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면역 체계가 상당히 강화된 것이다. 즉 거칠고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은 우리의 감정과 사고방식에 부정적으로 작동하며, 시청 횟수가 늘어날수록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콤플렉스 드러내기’ 예능에서 배우다

정신과 의사의 눈으로 보면 볼수록 예능이란 허투루 볼 것이 아니었다. 나름 예능을 통해 배운 게 많았고, 마음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네 가지’는 우리 사회의 콤플렉스 네 가지를 다룬다. 촌스러움, 작은 키, 인기 없음, 과체중. 이를 우스꽝스럽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자신들은 사실 괜찮게 살고 있다고 주장하며 웃음을 유발한다. 콤플렉스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이 당당함이 코너가 주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예능인들이 약점이나 콤플렉스를 자신의 개성으로 드러내 이를 캐릭터로 만들고, 먼저 주도적으로 당당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주의 깊게 보자.

우리는 누구나 변화를 두려워한다. 특히 콤플렉스는 건드리기도 무섭고 보기도 무서운, 마음 안의 어두운 뒷골목 같은 동네다. 그렇지만 동시에 언젠가는 불을 밝히고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곳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에 먼저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이 콤플렉스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비록 사람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고, 왜 내가 이런 캐릭터로 비치는지 속이 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습 역시 내 모습이다.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김제동은 자기 눈이 작은 것을, 강호동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을, 하물며 김국진은 이혼 상처라는 콤플렉스를 캐릭터의 일환으로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캐릭터가 내 인생의 짐이 아니라 힘이 되게 하는 것은 내 인식에 달려 있다.
하지현 <예능력>(민음사)의 저자

 

TV,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되어주다

어느 날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 부부 대화 주제의 90% 이상이 아이들에 대한 것이라는 거다. 맞벌이를 하며 아이 둘을 키우면서, 부부보다는 부모로서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아이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이에게도 좋은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부부가 공유하는 관심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각자의 취향과 가치관, 관심사가 서로 다르다 보니 어느 순간 작심한다고 공감대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나누며 즐길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아이들에 관한 것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고 아내에게 제안해봤지만, 서로 흥미를 느끼는 분야 자체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본질적인 문제라든가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곧잘 꺼내지만, 아내는 이런 이야기를 지루해했고 대신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결국 내가 아내의 관심 분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내의 평범한 일상으로 말이다. 직장과 육아 일로 바쁜 아내가 그나마 짬짬이 즐기는 것은 TV였다. 특히 어느 나른한 휴일 오후, 드라마 재방송을 챙겨보던 아내의 얼굴에 비친 화사한 미소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나도 함께 공유하고 싶어 TV를 보기 시작했다.

가끔 스포츠 중계나 뉴스를 보던 내가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겨 보게 되면서 변화를 실감하게 됐다. 서먹서먹했던 장모님과도 할 이야기가 생겼고, 회사의 여직원들과도 수다를 떨게 되었다. 세상의 절반(?)과의 소통이 한결 원활해진 기분이다.

또한 드라마를 보면서 오랫동안 익숙하지 않았던 감정인 ‘설렘’을 느끼게 됐다. 그런 설렘은, 계절의 변화에도 둔감했던 내게 감수성을 선물해 줬다. 아파트 뒷산 오솔길의 풍광에 달달했던 드라마의 주제곡을 환청처럼 떠올리며 대자연의 손짓을 만끽하는 충만함은 드라마에 빠져들기 전엔 느낄 수 없었던 행복이다. 혹자는 ‘아저씨가 주책’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부분은 오히려 남성들이 한번 되짚어야 할 문제일 수 있다. 사실 내 또래의 남자들과 대화를 해보면 대화 주제가 너무 한정적으로 치우쳐 있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생업과 관련된 것만 집중할 뿐, 다른 분야엔 그다지 관심이 없고 그럴만한 여유도 없어 보인다. 바쁜 것도 이유지만, 평소 더불어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에도 서툴다. 그러니 가끔 작정하고 아이나 아내와 대화를 시도해 봐도 막상 할 이야기가 없기 십상이다. 특히 아이들하고는 관심사가 다르고 심지어 상식과 가치관에서도 심각한 괴리가 발생하곤 한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해 왔지만, 막상 가족과 더불어 누릴 게 없는 중년의 비극이다.

주변과 소통한다는 것, 그 시작은 관심의 공유가 아닐까 싶다. 난 그것을 TV에서 찾아냈다. TV는 바보상자이기도 하지만, 이 시대 문화의 총화이기도 하다. 우리가 입고 먹고 즐기고 관심 갖는 것들이 TV 속에 잔뜩 펼쳐져 있다.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저런 바지 하나 사 입으면 어때?” “이번 주말엔 저런 데 가볼까?” TV를 보기 전이나 TV를 보기 시작한 이후에나 세상은 여전히 똑같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주변과 더불어서 말이다. 곽영준 39세.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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