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말이 가진 신뢰는 얼마나 될까. 아마도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이유는? 너무나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기 때문이다. 인터넷만 열면 우리는 단박에 엄청나게 많은 말들의 홍수를 목도할 수 있다. 그 수많은 주장들이 던지는 호기심에 이끌려 클릭을 하다 보면 때론 ‘아 속았다!’고 느꼈던 이른바 ‘낚시질에 걸린’ 경험들은 이제 누구나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러니 말의 공신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때문에 <무한도전>의 ‘말하는 대로’ 특집은 새삼 말의 신뢰를 떠올리게 하는 미션이었다.
사실 <무한도전>의 ‘말하는 대로’ 특집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참 게임에 몰두하면서 벌칙으로 무리수에 가까운 공약을 내걸고는 결과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벌칙을 수행하던 ‘지못미’ 특집도 알맹이를 보면 이 특집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박명수와 정준하가 다크나이트 조커와 쿵푸팬더로 분장한 채 길거리를 활보하던 그 벌칙 수행은 ‘말하는 대로’ 이뤄지는 <무한도전>의 세상을 이미 보여준 바 있다.
알래스카에서 김상덕씨 찾기 미션 또한 마찬가지였다. <식객> 편에서 농담 식으로 던진 ‘알래스카 김상덕씨’ 얘기가 일이 커지면서 실제 미션이 되어버린 사례다. 그들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알래스카까지 날아가 혹한에서 바늘 찾듯 김상덕씨를 수소문했고 결국 찾아내기도 했다. 작은 말 한마디가 거대한 사건으로 연결된다는 것, 그 자체가 주는 흥미진진함은 <무한도전>만이 가진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공약으로 내건 것은 반드시 이뤄진다.
<무한도전> ‘말하는 대로’ 특집은 이러한 공약형 미션(?)의 업그레이드판이다. 이미 말하면 수행하는 것이 하나의 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특집은 가능해진다. 각자 이름이 걸린 자신의 버스가 있고, 멤버들은 자기 버스 혹은 상대 버스에 육하원칙 미션을 집어넣을 수 있다. 육하원칙이 완성되면 해당 버스의 멤버는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데, 노홍철은 마지막 조커를 사용, 자기 버스의 미션을 다른 멤버들에게 ‘반사’ 해버린다. 이렇듯 빈 공간이 채워질 때마다 미션 내용이 뒤집어지는 반전은 ‘말하는 대로’ 특집의 묘미였다.
미션 중 박명수는 조커 활용을 잘못 이해해 미션을 적지 않고 그저 조커라고 써서 붙여놓음으로써 큰 웃음을 주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박명수에게는 하나의 공약 수행으로 처리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무한도전>을 재개하면서 그가 내건 “목 놓아 웃겨 드리겠다”는 공약을 자기가 스스로 망가짐으로써 수행하게 되었으니까.
이처럼 <무한도전>의 세계는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세우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이제 버스에 적힌 대로 정준하는 독도로 달려가 애봉이 가발을 쓰고 비키니를 입은 채 열무국수와 콩국수를 먹을 것이다.
말의 힘이 사라지면서 생겨난 신뢰 없는 세상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요즘처럼 수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 홍수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도대체 무슨 말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 ‘말하는 대로’ 특집은 재미는 물론이고 큰 의미까지 거둔 전형적인 <무한도전>식의 미션이었다고 여겨진다. 그저 웃고 즐겨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곰곰 씹어보면 더 감칠맛 나는 생각거리가 담겨져 있는 그런 미션. 과연 <무한도전>이 보여주는 것처럼 말하는 대로 이뤄지는 세상은 가능할까. 말이 제힘을 찾고 그로 인해 불신보다는 신뢰가 넘치는 세상. 이제 이것도 노력 없이는 힘든 일이 되었다. 무한히 도전해야 할 수 있는 어떤 것. 그러니 도전할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