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체 예능의 산실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단연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콘’은 어느새 예능의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수많은 개그맨들을 배출해냈다. 물론 여전히 예능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명실 공히 최고의 프로그램이다. 가장 어렵고 조악한 현실에 놓여 있는 개그맨들을 넉넉히 품어주고 키워주는 이 거목은 1999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10여 년이 넘게 장수하고 있으면서도, 늘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예능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의 내적인 진화보다 더 중요한 건, ‘개콘’이 개그맨들의 사관학교가 됨으로써 전체 예능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이다. ‘1박2일’의 중추가 된 이수근, ‘정글의 법칙’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김병만, ‘무한도전’의 미친 존재감이 된 정형돈처럼 이미 ‘개콘’ 바깥에서 확고한 자신의 위치를 구축한 개그맨들뿐만이 아니다. 현재 ‘개콘’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는 김준호를 비롯해, 각 코너에서 주목받고 있는 최효종, 김원효, 정범균, 허경환은 ‘해피투게더 시즌3’에 출연해 정체된 분위기를 일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개콘’ 출신 개그맨들이 ‘개콘’ 안팎으로 활약할 수 있게 된 배경은 결국 ‘생존’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개그맨들의 무대가 있었지만 내홍을 겪으며 전부 사라지는 와중에도 ‘개콘’은 굳건히 살아남았다. 그저 살아남은 게 아니라 예능을 대표하며 현재의 예능에 새 피를 수혈해주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개콘’의 이런 경쟁력은 그 독특한 시스템에서 나온다. 마치 샐러리맨처럼 출퇴근제를 하고 있는 ‘개콘’은 매일 개그맨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짜고 연습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과정에서 선후배 간의 독특한 위계질서가 생겨난다. 무조건 선배가 주인공을 하는 그런 식이 아니라 아이디어에 걸맞은 최적의 인물을 찾아서 서로 꽂아주고(?) 세워주는 협업시스템이 ‘개콘’의 진정한 힘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개콘’ 출신 개그맨들의 서로를 생각해주는 마음이다. 이수근은 ‘개콘’에서 봉숭아학당을 할 때만 해도 이미 그만두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수민 PD의 “후배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는 말 한마디에 아무 조건 없이 6개월을 버텨주었다고 한다.
‘개콘’ 출신 개그맨들의 우정과 선후배 관계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각자의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도 늘 각별한 우정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져 있는 이수근과 김병만, 김대희나 김준호처럼 이제 ‘개콘’의 왕고참이 된 개그맨들의 유별난 후배 사랑이 그렇다. 김준호는 최근 코코엔터테인먼트라는 기획사를 차려 후배 개그맨들의 뒷바라지를 자처하고 나섰다.
‘개콘’은 이제 하나의 개그 프로그램을 넘어 전체 예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콘’을 발판 삼아 성장한 개그맨들의 성공담은, 현재 ‘개콘’에서 묵묵히 조연 역할을 하고 있는 젊은 개그맨들에게는 하나의 꿈이자 희망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은 전체 예능을 꿈꾸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때문에 ‘개콘’을 보면 ‘웃음’ 그 이상의 바람이 생기나 보다. ‘개그콘서트’가 재능 있는 개그맨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늘 열려 있기를, 선후배가 함께하는 노력, 따듯한 마음까지도 늘 전해지기를.
글 정덕현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