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문성준, 아내 전영희
울산시 북구 호계동
전영희씨
이야기
그런데 막상 남편의 합격 소식을 듣고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예전보다 훨씬 허무했다. 이 순간만 기다리며 참고 노력했는데 뭐가 문제일까? 마음이 너무 괴로워 친한 동료가 권했던 마음수련을 시작했다.
내 인생은 한마디로 ‘착한 척’의 일색이었다. 겉으로는 네, 네, 그러면서 마음엔 불만을 쌓아뒀다가 한번 삐치면 오래가는 스타일이었다. 내가 희생한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남편이 아무리 잘해줘도 내 기대에 못 미치면 원망이 생겼다.
늘 마음 한구석으로 남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남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많이 희생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상대를 괴롭히는 일이었다.
원망, 기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 해줬으면 하는 마음들을 빼냈다. 육아 스트레스와 완벽주의도 뺐다. 이젠 남편에게 내 생각을 시원시원하게 얘기하고 작은 것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남편이 함께 마음수련을 하며 가장으로서의 부담을 벗고 살아가게 된 것도 너무나 기쁘고 고맙다.
묵묵하게 지켜주는 늘 푸른 소나무 같은 사람. 더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었음을,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참 감사하다.
문성준씨
이야기
아내와는 대학 선후배로 알게 되었는데 착하고 순종적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사귄 지 2년 만에 ‘영원히 내 편이 되어 달라’며 프러포즈했고, 결혼에 성공했다. 보디빌딩 트레이너였던 나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되고 아이도 생기니 교사인 아내처럼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었다. 출퇴근 시간도 같고 방학도 함께 보내면 공감대도 커질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내 인생에서 너무나 끔찍한 시간이 시작됐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시험공부만 했는데도 결과는 잘 나오지 않았다. 한 해, 두 해 시험에선 계속 떨어지고 돈은 점점 까먹고 자존심은 무너졌다.
임용 시험 3수 끝에 드디어 중학교 체육 선생님으로 발령이 났다. 교직 생활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나는 이제 모든 게 순조롭게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늘 피곤에 찌들었고 아내와의 소통도 점점 힘들어졌다.
그런 어느 날 깨달았다. 우리는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이지만 한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구나. 함께 살면서 매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갑갑했다. 뭐든 아내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가 먼저 하고 있던 마음수련도 시작했다.
사실 나를 만나고부터 아내는 자기 인생이 없었다. 결혼을 서두르느라 유학도 취소, 늘 육아에 시달리고 돈에 쪼들렸다. 큰 짐을 홀로 지면서도 아내가 원했던 건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이면 충분했는데 그걸 몰랐다. 그런 아내에게 ‘남편은 돈 벌고 아내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제 할 일’이라 고집했으니 난 정말 이기적인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련을 하며 그런 나를 다 버렸다. 앞으로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버렸다. 그러자 마음이 참 가벼워졌다.
그렇게 여유가 생겨서일까. 아내를 오히려 더 챙겨주고 진심으로 공감해줄 수 있게 되었다. 어디에 있든 늘 같은 세상에 사는 사이가 된 것이다.
“여보, ‘장님이 코끼리 만진다’는 말이 바로 우리 얘기였어. 함께 살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했었지. 당신 덕분에 각자 틀을 벗고 한마음이 된 것 같아 감격스러워. 늘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