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월간마음수련"

– Enlightenment – The Level Where One Can Love His Enemies

In the world there are falseness and Truth. Man’s mind that lives copying what belongs to the world is false, and the world is true. Man is not one with the mind of the world; instead he lives in an overlapping copy of it. In any case, it is a certain fact that he lives in his own mind world. He comes to know Truth to the extent that the mind of the world enters his, and this is enlightenment.

Man’s mind is made up of illusionary pictures. Consequently, when he throws away these pictures Truth will enter into his mind, and he will know Truth to the extent of what he has discarded. This is enlightenment. Only when one repents, can one gain enlightenment and go to the place of Truth. It is the same principle as washing dirty clothes – the more you clean the dirt away, the more it goes back to its original state. A piece of paper, which has been scribbled on, gets cleaner the more the scribbling is erased. Enlightenment is the same as knowing the true state of the paper once it is clean.

It is not possible for man to love his enemies unless he is born in the complete land of God.

When doing Maum Meditation, Truth enters one’s mind to the extent that he has discarded his false mind, and his enlightenment is equivalent to how much Truth has entered his mind. Enlightenment is knowing Truth. The more he becomes Truth by cleansing his sins, the closer he gets to Truth. When none of his preconceptions and habits remain, and the entity that is his self completely dies and disappears he can get to a level where his consciousness is complete. The level of completion is when one’s consciousness becomes the consciousness of the origin and Truth itself. He who is born in this land is Truth and does not die; thus he is a complete person.

One cannot love his enemies just because he has been told to do so. He is able to love his enemies when his consciousness becomes the land of God and when he exists in this land. At such a time, the enemies in his mind will disappear and he will be able to love them. In man’s mind world, he is bound to have enemies. Only he who is born in the land of Truth and heaven while he is living is able to love his enemies.

Woo Myung is the founder of Maum Meditation, an author, and a poet. He has been teaching the Way to the Truth through world tour lecture every year. He is the author of many books about Truth. The English edition of his most recent book, Stop Living In This Land Go To The Everlasting World Of Happiness Live There Forever, hit #1 Overall Weekly Bestseller in Amazon and won 4 international book awards such as IBA, NIEA, IPPY, and eLit in the categories of Self-Help, Philosophy, Spirituality, and Meditation.

열린 고민 상담소

저는 어린 아이들을 둔 가장입니다. 제가 원래 위가 안 좋았는데, 한번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나서 위염과 식도염이 생겼습니다. 병원에서는 약 먹으면 낫는 병이라지만 계속 걱정과 불안이 끊이지 않습니다. 애들은 어린데, 혹시 쟤들이 크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더 악화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들이 점점 더 몸을 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걱정이 많아서 그런지 먹어도 살로도 안 가고, 자꾸 살이 빠지는 것도 신경 쓰입니다. 막연한 불안을 없애는 방법, 마음을 좀 더 대범하게 바꾸고 몸도 마음도 평안하게 할 방법이 있을까요?

님이 겪는 걱정과 불안은 이 땅의 가장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민일 겁니다. 아이들, 노부모, 노후 걱정 등등…. 우선 힘내시라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네요. 저도 40대 초반 갑자기 늘어난 업무로 인해 크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큰 병이 찾아왔지요. 시시때때로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공황장애였어요. 늘 심장이 쿵쿵 뛰곤 했지요. 40대에 가장 많다는 ‘돌연사’. 내가 그렇게 되겠구나 싶을 정도로 불안했어요. 님처럼 마음과 몸을 다스릴 방법을 찾던 저는, 마음을 비우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동시에 생활 속에서도 저를 바꾸는 프로젝트에 돌입했어요. 저를 보니까 몸을 가만히 두는 순간 망상의 집을 짓더라고요. 그래서 불안이나 걱정, 부정적인 생각이 끼어들지 않게 무조건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죠. 아침에 조깅 양을 늘리고, 점심시간에는 무조건 한 바퀴 돌고, 집에 와서는 설거지, 청소를 했어요. 그러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누우면 바로 곯아떨어졌죠. 그러면서 서서히 병을 극복하게 되었죠. 님께도 불안이나 걱정이 올라올 때 몸을 움직여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활력도 생기면서 걱정들이 끼어들 틈이 없지요. 자연히 더 건강해지고요. 그리고 살아보니 아이들은 알아서 크게 되어 있더라고요. 걱정할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보세요. 아빠와의 행복한 시간이 아이들의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고권호 직장인

저도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위궤양이라는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소화가 안 되고 자주 체하고 점점 체력이 달리면서 몸이 계속 다운되어 병원에 갔더니 그런 진단이 나왔지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 일도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는 나날을 몇 달을 보냈어요. 아직 젊은데, 이대로 계속 누워 있게 되면 어떡하지,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죠.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싶었던 저는 제 생활 습관부터 돌아보기 시작했어요. 언제나 몸은 뒷전이고 쉴 새 없이 일만 해왔지요. 공복에 진한 커피, 라면이나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고, 야근에 야식에 몸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죠. 정말 몸을 함부로 대해왔구나, 제 몸에게 미안하고 위궤양이라는 건 당연한 결과였구나 싶더라고요. 그 이후 되도록 인스턴트를 삼가고, 유기농 식품 등 건강한 음식을 찾아 먹기 시작했죠. 그리고 되도록 많이 걸으려고 했어요. 그러면서 몸이 점점 맑아지는 게 느껴졌고, 마음도 더 건강해졌던 거 같아요. 몸에 매이는 것이 아닌, 나의 몸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 한번 근본적으로 자신의 생활 습관을 돌아보시면 좋을 거 같네요. 윤원 직장인

저도 위가 안 좋아서 많이 고생을 했습니다. 위염에다가 갑자기 찾아오는 위경련까지…. 위가 아프면 너무 고통스럽다 보니 멀리 여행을 가는 것도 불안했고, 음식 먹는 데도 제약이 많았어요. 한순간 찾아오는 무지무지한 고통,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지침도 배우고, 위에 좋은 음식도 복용하면서 위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죠. 근데 어느 순간 스트레스를 한번 받았다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마음부터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거구나. 특히 한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생각이 많으면 위가 아프다’는 말씀을 듣고, 정말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 저는 우연히 마음수련을 하게 됐는데, 신기하게도 진짜 위가 좋아졌습니다. 수련을 하며 마음을 돌아보다 보니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불안, 걱정 이런 것들이 다 제가 쌓아놓은 마음의 사진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그렇게 저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있는 감정들을 버리다 보니 생각도 비워지면서, 요즘은 정말 한 번도 위 통증을 겪지 않을 정도로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예민했던 성격도 이제 안녕~이지요. 몸이 아프다는 건 마음이 알려주는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내 마음을 한번 진단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편안한 생활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한혜진 직장인

첫아이 출산을 2개월 앞둔 산모입니다. 8월 중순이라 더위 때문에 다들 걱정이신데요. 여름에 산후 조리를 잘하는 방법이 궁금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를 두 명 이상은 낳고 싶은데 요즘 ‘아이=돈’으로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양육할 때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좋은 정보, 조언들 부탁드려요.

아들과 함께하고 싶은 101가지 -낚시 편

백일성

얼마 전 같은 동네에 사는 아랫동서와 소주 한잔을 나누다 술기운에 아들 녀석들 데리고 낚시 한번 가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고1 아들 녀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랫동서는 중1, 초등 4학년 아들 둘이 있습니다. 비록 저는 낚시는 좋아하지 않지만 늘 꿈꿔왔던 새벽안개 속에서 아들 녀석과의 밤낚시를 상상했습니다.

남자 다섯 명이 낚시를 갑니다. 차 안 풍경이 새벽 저수지 같습니다. 고요합니다. 아니 적막합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저수지로 가는 30여 분 동안 큰놈은 자고 중간놈은 과자 먹고 작은놈은 창밖만 보고 있습니다.

텐트 치기 무섭게 중간놈이 삼겹살 먹자고 합니다. 별명이 푸드파이터입니다. 전투적으로 음식을 흡입합니다. 한 시간 꼬박 삼겹살을 구워줬습니다. 큰놈은 텐트 안에서 춥다며 안 나옵니다. 작은놈은 아까부터 안 보입니다. 삼겹살 기름이 종이컵으로 세 컵째 나올 즈음 중간놈이 젓가락을 놓습니다. 그리고… 사발면 물 올려 달랍니다. 삼겹살 기름 번들번들한 입술로 저에게 묻습니다.

“이모부도 드실래요?”

두 시간째 이 시끼 밥 시중들고 있습니다. 두 시간 동안 큰녀석은 텐트 안에서 자고 있습니다. 두 시간째 작은놈은 안 보입니다.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고 저수지에 고요한 밤이 찾아왔습니다. 옆에 앉아서 멍하니 찌를 바라보고 있는 아랫동서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신서방… 정말 의자 안 가져왔나?” “아네… 챙긴다고 챙겼는데, 아… 그게 왜 빠졌지…….”

한 시간째 돌 위에 앉아 있는데 더 이상은 엉덩이가 배겨서 못 앉아 있겠습니다. 텐트로 돌아오니 중간놈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이모부 고기는?” “아직 못 잡았어, 너희 아버지가 곧 잡을 거야.” “아니 그 고기 말고 삼겹살 더 없어요?”

이런…. 못 들은 척 작은놈의 행방을 물었더니 조금 전에 들어왔다 다시 나갔답니다. 누가 보면 작은놈은 이곳에 몇 년 살던 놈인 줄 알겠습니다. 큰놈은 여전히 자고 있습니다. 다시 물가로 갔습니다.

아랫동서도 엉덩이가 배기는지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그 옆에 저도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한참 동안 서로 말이 없었습니다.

“차 시트라도 뜯어올까…….” “어! 형님 차 의자 분리돼요?” “안 되지…….” “아… 그러죠…….”

그렇게 또 한참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고기는 언제 잡히나?” “아… 새벽에… 좀 올라온다네요.” “아… 새벽에… 새벽이라… 우리 새벽까지 있다 가기로 했지…….” “아… 네… 새벽요… 새벽… 까지…….” 그리고 또 침묵이 흘렀습니다. “차 의자 한번 떼볼까?”

“…….” 다시 저수지에 정막이 흐릅니다. 그때 등 뒤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던 큰녀석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빠~~ 집에 가자~~ 생각해 보니까 나 수행평가 할 것도 많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낚싯대가 접히기 시작했습니다.


“수행평가가 중요하죠, 형님?” “뭐… 그렇지… 아… 수행평가가 워낙 중요… 아쉽지만, 그래그래.”

둘은 쥐난 다리를 쩔뚝이며 밤이슬 맞은 텐트를 아무렇게 걷었습니다. 그렇게 40대 두 아저씨는 야반도주를 하듯 저수지에서 나와 차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큰녀석은 여전히 비몽사몽간 정신줄을 붙잡고 차에 올랐고 중간놈은 생라면 봉지를 붙잡고 올랐고 작은놈은 중간에 동네 개랑 놀고 있는 거 붙잡아 태웠습니다.

40대 아저씨 둘은 소원인 아들과 밤낚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하지 않아야 할 101가지 중에 두 가지를 올렸습니다.

‘의자 없이 낚시 안 하기… 그리고 많이 처자는 시끼하고 많이 처먹는 시끼하고 많이 처돌아다니는 시끼하고 낚시 안 가기…….’

올해 마흔세 살의 백일성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고딩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즐거운 카풀 ‘티클tikle’

취재 문진정

현대인들에게 교통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자가운전자들은 교통 체증과 주차 걱정,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한숨이 늘어가고, 매일 한두 번씩 대중교통을 갈아타야 하는 직장인들 또한 출퇴근 ‘지옥철’이 스트레스다.

이들 모두의 시름을 덜어주고 환경도 생각하는 착한 서비스가 있다. 청년 벤처 기업 ‘소셜나눔’에서 지난 5월 새롭게 시작한 카풀 중개 서비스 ‘티클’이다.

“모르는 사람인데 위험하지 않나요?” 카풀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질문은 안전에 관한 것. 티클에서는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을 통해 이런 문제를 보완했다.

현재 국내 페이스북 사용자는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천만 명으로 추정된다. 티클 사이트에서는 카풀 이용자들의 페이스북 계정을 연동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친밀감을 높였다. 페이스북은 직업과 관심사, 출신 학교와 지역, 한 단계 건너 아는 친구가 누구인지도 공유하고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간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인 셈이다. 게다가 이용자들이 서로를 평가하게 되어 있어,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카풀 이용자의 신뢰도를 선별할 수 있다.

지금,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면, 출발지와 목적지를 티클에서 공유해보자. 출퇴근길의 지루함도, 추석 귀경길의 기름값 부담도 날려버리고, 마음 맞는 친구와 즐거운 여행을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즐거운 카풀 시작하는 법

1 티클 사이트(www.tikle.co.kr)에 접속한다.

2 회원 가입 또는 페이스북 아이디로 로그인 후 [등록하기] 버튼을 클릭!

3 자신의 차를 이용할 때는 ‘타세요’, 다른 사람의 차를 이용할 때는 ‘태워주세요’를 선택하고 출발지와 목적지, 출발 시간을 입력한 후 연락을 기다린다.

4 서로 예약이 확인되었다면 차를 타고 함께 출발~!

꽉 막히는 도로를 보면 나홀로 차량이 80% 이상입니다. 사람도, 차도 많은데 공간은 부족한 대도시에서는 더 답답하게 느껴지죠. 그래서 이런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공유 문화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흉흉한 범죄들이 매스컴에 계속 보도되다 보니 택시에 대한 두려움도 크고, 모르는 사람들 간에는 의심부터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대안을 생각한 것이 소셜네트워크와의 연결입니다.

온라인상에서 친밀감을 차근차근 쌓다 보면 그 인맥이 거꾸로 오프라인에까지 이어지는 일이 많아요. 예전에는 ‘컴퓨터 앞에만 있지 말고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거꾸로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사람을 사귀고, 얼굴을 대면하게 되는 시대가 온 거죠.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생각보다 세상에는 따듯하고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구나’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몇 년 전 시골에서만 해도 이웃이랑 김장도 같이하고 길에서 히치하이킹도 스스럼없이 했었잖아요. 그런 것들을 서울에서도 실현하고 싶어요. 공항이나 공연장을 갈 때, 한국에 관광 온 외국인들에게도 편리함과 친밀함을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카풀 형태를 고민 중입니다. 이웃과 사람에 대한 따듯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 그 길에 ‘티클’이 함께했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저를 키웠습니다

학창 시절 참 가난했다. 학비는 엄마가 마련해 주셨지만 용돈이나 참고서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생 아르바이트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대중목욕탕 청소, 남의 집 빨래 등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해 용돈을 모았다. 하지만 참고서를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 시절 내게 큰 힘이 되어준 분이 바로 심현택 선생님이다.

고2 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심선생님은 어느 날, 나를 불러 선생님의 과목인 영어뿐 아니라 다른 과목의 ‘교사용 지도서’까지 조용히 건네주셨다. 무척 감사했고, 나는 다른 친구들이 볼까 봐 참고서를 달력으로 싸가지고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다. 고3 때도 담임이 되신 선생님은 또 교사용 지도서를 구해다주시며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주셨다. 하지만 나는 희망하던 전기 대학에 떨어졌고, 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떨어졌다는 상실감, 더 이상 해도 할 수 없을 거 같은 좌절감, 도와준 선생님을 실망시켜드렸다는 자책감과 죄송함, 그리고 다시 대학에 가겠다고 차마 말하기 어려운 가정 형편….

여러 가지 마음에 학교도 결석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꼭 학교에 오라는 말씀이셨다. 며칠 만에 학교에 가 쭈뼛쭈뼛 죄송하다고 하는 나를 선생님은 환하게 맞아주셨다. “괜찮다. 이것이 인생의 끝은 아니다.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는 대학은 얼마든지 많으니 대학 진학을 해야 한다.”

그렇게 설득하시던 선생님은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아이다. 나는 믿는다. 대학에 진학해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

선생님의 그 한마디는 너무나 큰 격려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아이다”를 여러 번 되뇌며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선생님의 추천으로 장학금을 받고 기숙사가 있는 지방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25년이 흐른 지금, 나는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에 근무하고 있다. 출소자들의 자립을 도와 건전한 사회 복귀와 재범을 방지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지금은 올해 2월에 발족한 취업전담센터에서 출소자들의 취업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하여 새롭게 직업학 공부도 시작해서, 올해 석사를 졸업하고 이제 박사 과정에 입학한다. 아이 둘 키우면서 직장에 다니며, 학교 공부까지 병행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에너자이저라고 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지혜가 넓어지면 그들에게 나눠줄 게 있겠다 하는 마음이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뿐이다. 사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나부터 경험했기에, 더욱 믿음을 갖고 일하고 있다.

포기하려고 했을 때 잡아주신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선생님은 잊으셨는지 몰라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아이다.” 선생님의 이 한마디가 나를 이만큼 키웠다.

이제 모교의 교감 선생님이 되신 심현택 선생님께는 매년 꾸준히 안부를 전한다.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선생님 저 결혼해요.” “선생님 저 엄마가 됐어요.” “선생님 저 승진했어요.” 그렇게 소식을 전할 때마다 선생님은 참 기뻐하셨다.

언제부터인가 선생님이 나를 ‘자네’라고 부르셨다. 아마 둘째 아이를 낳고 전화를 드렸을 때였던 것 같다. “자네도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고, 한 가정의 주부인데 아무리 선생이라도 제자 이름 함부로 부르면 안 되지” 하시면서. 그 이후 선생님에게 듣는 ‘자네’라는 호칭이 더 정겹게 들렸다. 옛날에 그 어려웠던 사제지간이 아니라 요즘은 같이 늙어가는 인생 선후배 같은 느낌이다.

“사람은 평생 배우며 살아야 하는데, 제자한테도 배울 것이 있으면 스승이지, 자네에게 많이 배운다” 하시던 심현택 선생님. 선생님 말씀 늘 마음에 새기며 삶이 힘겨운 출소자들에게도 희망과 자신감을 나누어주는 일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한순옥 45세.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취업전담센터 차장

서산여고 심현택 교감 선생님께는

‘영원한 나의 선생님께’라는 한순옥님의 마음을 담은

문구와 함께 예쁜 난 화분을 보내드렸습니다.

감동을 준 사람, 고마운 그 사람의 사연을 소개해주세요.

그분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편지 형식의 글도 좋습니다.(edit@maum.org)

소개된 분께는 간단한 문구와 함께 꽃바구니 혹은 난 화분을 보내드립니다.

협찬 예삐꽃방 www.yeppi.com

다시마쌈밥과 김치쌈밥

바다의 향이 듬뿍 담긴 다시마와 엄마의 정성 가득한 김치가 만났어요. 무기질이 풍부한 다시마, 유산균이 풍부한 김치로 만든 쌈밥은 소화가 잘되는 것은 물론 위에 부담이 없어서 가족 모두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건강 도시락입니다.

재료(4인분)

쌈다시마(100g), 김치(12줄기), 현미찰밥(4공기), 우렁 강장 – 우렁이(50g), 두부(1/4모), 된장(2큰술), 다진 양파(2큰술), 다진 청양고추(1작은술), 대파 흰 부분(10cm), 쌀뜨물 1/2컵

만들기

1 쌈다시마는 찬물에 30분 이상 담가 짠맛을 제거한 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찬물에 헹궈 물기를 닦아줍니다.

2 김치는 양념을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꼭 짭니다.

3 냄비에 우렁이와 으깬 두부, 된장, 다진 양파, 청양고추, 송송 썬 대파를 넣고 쌀뜨물을 부어 걸쭉한 상태가 될 때까지 저어가며 중간 불로 끓여 준비합니다.

4 쌈다시마와 김치 잎을 넓게 펼쳐 밥을 편편하게 놓고 우렁 강장을 올려 돌돌 만 뒤 먹기 좋은 길이로 썰어 다시마쌈밥과 김치쌈밥을 만듭니다.

5 낼 때는 우렁 강장을 곁들여줍니다.

이보은 요리연구가 & 자료 제공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요리연구가 겸 푸드스타일리스트 이보은님은 20여 년간 건강 요리를 알리는 데 힘써왔습니다. 현재 쿡피아쿠킹스튜디오 대표이며 저서로 <행복한 아침밥상>(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외 다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싼 플라스틱 병 전구

● 이름은?

1리터의 빛(A Liter Of Light). 1리터의 플라스틱 병으로 전기 에너지 없이 빛을 밝히는 태양 병 전구이다.

●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개발도상국이나 경제 피라미드의 하위 계층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린 에너지 기술을 들여오기에는 재정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에너지 빈곤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필리핀에는 3백만 명의 사람들이 전기 없이 살고 있다. 필리핀의 많은 주택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창문이 없다. 즉 낮에도 집 안이 아주 어두운데 비싼 전기 조명을 항상 켜 놓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해답을 다 쓴 플라스틱 병으로 만든 전구에서 찾았다. 태양 병 전구의 첫 아이디어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출신의 학생들이 다 쓴 유리병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데, 이후 마이셸터재단(MyShelter Foundation)에서는 플라스틱 병을 이용해서 저소득층이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 제품의 원리는?

빛이 통과하는 투명한 플라스틱 병에 물과 10ml의 표백제를 넣고 절반은 지붕 위에, 절반은 집 안에 걸쳐서 설치하면 직선으로 들어오던 태양 빛이 플라스틱 병을 통과하면서 굴절되고 반사되어 방 전체를 밝힐 수 있는 55와트의 빛을 낸다. 이 과정에서는 어떤 열도 발생하지 않고 탄소 배출도 하지 않으며 전기 에너지도 들지 않아 월 평균 6~8달러의 전기료를 줄일 수 있다.

● 주위의 반응은?

처음에는 필리핀의 학교에 설치를 시작했는데 곧이어 수도 마닐라를 비롯한 필리핀 전역의 20여 개 도시에 확산이 되었다. SNS를 통해 널리 홍보가 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20여 개국에 기술을 전파해 지금은 콜롬비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현지 파트너 사무실이 있다. 설치를 도와줄 자원봉사자도 많이 모이게 되면서 지금까지 전 세계에 2만 5천여 개의 태양 병 전구가 설치되었고 탄소 배출을 줄이고 대규모 빈곤에 영향을 미치는 10개의 등대 프로젝트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우리의 목표는 빈곤 지역에 풀뿌리 사업을 양성하는 데 있다. 처음에는 우리가 전구를 설치해주고 만드는 재료와 도구, 만드는 기술을 모두 제공하지만 나중에 우리가 떠난 후에는 그 지역에서 한 기업가에 의해 지속적으로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 사업으로 지역 사회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시장을 만들기를 바란다.

만든 사람 일락 디아즈(Illac Diaz) MyShelter Foundation 설립자

 

SBS-TV ‘힐링캠프’ 닉 부이치치가 던진 커다란 화두

선천적 ‘해표지증’을 갖고 태어나 ‘사지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세계적인 강연자 ‘닉 부이치치’가 힐링캠프에 출연했습니다. 팔다리가 없는 그의 몸은 수영, 축구, 골프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만큼 강인하고, 조그만 두 개의 발가락은 타이핑과 악기 연주를 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합니다. 신을 믿고 기적을 믿는다는 그는 팔다리가 자라길 매일 기도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 말합니다. 전 세계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선물하고 싶어 하며, 그것이 바로 신이 자기에게 주신 위대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운명처럼 다가온 여인 카나에와 결혼하여 현재 4개월 된 아들 키요시를 두고 있는데, 아들이 태어나기 전 혹시라도 자신처럼 팔다리 없는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아내는 “당신처럼 좋은 롤모델이 있으니 아무 문제없다”며 “설령 팔다리 없는 아이가 5명 태어난다 해도 모두 훌륭하게 키워낼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합니다.

닉 부이치치의 삶을 보면, 반드시 팔다리가 자라는 것만이 기적은 아닌 듯합니다. 보통사람들도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해내고 있을 뿐 아니라, 요즘 같은 세상에 보기 드물게 편견 없고 용기 있는 여성과 결혼까지 했으니까요. 게다가 감사하게도 아들 키요시도 팔다리가 있는 건강한 몸으로 탄생했으니, 지금 닉은 그 누구보다 더 행복할 것입니다.

TV를 통해서지만 그의 모습을 보며 감동이라는 표현으로는 좀 부적절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충격과 의문의 여파가 마음에 끝없이 퍼져갔습니다.

나는 매사에 긍정적일 수 있는가? 나는 100전 101기의 자세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가? 나는 타인의 잘못에 너그러울 수 있는가?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가? 나는 도움이 꼭 필요할 때, 부끄러움 없이 당당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항목이 단 하나도 없더군요. 머릿속에는 해결되지 않는 물음표만 가득했습니다. “내가 그의 입장이라면 아침에 눈뜨는 순간마다 지옥 같은 고통일 텐데, 그는 어떻게 그처럼 활기차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천천히 ‘힐링캠프’를 다시 보았고, 어렴풋이나마 한 가지 답을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좀 더 사랑하세요!” “당신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닉 부이치치가 저에게 던진 커다란 화두는 ‘자신과의 화해’였습니다. 자신과 화해하고 자신을 사랑해야만, 타인과 세상도 사랑할 수 있었던 거죠. 세상을 사랑해야만 삶을 즐길 수 있고, 긍정적인 마음이 생겨나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힘과 용기도 생겨납니다. 비뚤어진 자존심과 자기 연민, 자기 혐오가 엉망으로 뒤섞인 상태에서, 타인에게 당당히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자신과 화해하고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제게는 꽤나 익숙한 것이었지만 머리로 안다 해서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멀기만 했고, 여전히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저는 그 긴 여정을 감당해낼 힘도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닉은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팔다리 없는 몸으로 풀썩 넘어졌던 그가 혼자 힘으로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말하는데, 그 앞에서 “아니오.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사람이 있을까요?

유명해지기 전까지 그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닉은 자신의 모습을 진심으로 사랑했지요. 그러니 누가 반박하겠습니까?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듯, 당신도 당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라는 닉의 메시지를 말입니다.

지현정 문화칼럼니스트 & 사진 제공 SBS-TV

 

불가리아, 우리나라와 닮았네!

글&사진 이동춘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동쪽으로 240km 떨어진 얀트라강 상류에 있는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arnovo)는 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이다.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이곳은 중세 시대 불가리아 왕국의 수도(1185~1396)였고, 구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을 만큼 과거가 잘 보존되어 있다. 중세 도시를 연상시키는 차르베츠 언덕 위의 난공불락의 요새,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뾰족한 모양의 교회 등 동화 속 나라 어딘가에 와 있지 않나 싶을 정도다.

얀트라강이 우리나라의 안동 하회마을처럼 도시 중심의 협곡을 통과하여 굽이쳐 흐르고, 강을 따라 작은 집들이 절벽 위나 경사진 곳에 잘 지어져 있었다. 기복이 심한 지형과 풍부한 녹지, 전통적인 빨간 지붕에 흰 벽의 집들이 잘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차르베츠 요새로 가는 길. 고성 입구에는 십자 무늬의 방패를 든 돌사자상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곳은 얀트라강 위에 있는 차르베츠 언덕의 도개교를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 천혜의 요새와 같은 성이다. 성안에서 바라보니 왼쪽 멀리 열차가 지나간다. 성 밖을 나오자 골목 마을엔 예술품·공예품을 볼 수 있는 공방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장인들은 개인 공방을 운영하며 직접 제작한 수공예품들을 판매한다. 과거 우리 가내수공업을 연상시킨다. 주말의 나른한 오후, 마을엔 골목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퇴근 후 술집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이 나를 보고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KOREA”라고 대답하자,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추자면서 주변에 있던 마을의 아이들이 뛰어온다. 순간 당황했지만,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여기저기서 부를 땐, 그야말로 감격이었다! 뿐만 아니다. 택시를 타거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볼 수 있었던 스마트폰, 가전제품 등 한국 제품을 보면 뿌듯함과 함께 우리나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벨리코 투르노보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아르바나시(Arbanasi)를 찾아갔다. 지금도 1,0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 마을에는 수백 년을 이어오는 80여 채의 불가리아 전통 가옥들이 있는데, 그중 36개가 불가리아의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돌담길과 목조 건축물들, 500년 전에 축조한 그대로 남아 있는 마을의 모습 역시 우리 한옥과 많이 닮아 있었다. 한옥의 계자난간, 대청 위 대들보, 한옥 대문 문고리의 둥근 손잡이, 잘 쌓아 올린 돌담길과 골목, 기와 얹은 지붕의 암키와, 수키와 모양 등등. 또한 한결같이 돌을 가지런하게 쌓은 불가리아 전통 마을의 담장은 우리네 시골 돌담길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저곳에서 불가리아와 우리나라의 닮은 점들을 발견하다 보니, 문득 신용하 교수(서울대 명예교수)가 주장한 ‘불가리아의 원조상은 부여족’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들도 우리처럼 일부 사람들은 몽고반점이 있고, 불가리아의 동검과 우리 경주박물관에 보관된 동검이 매우 흡사한 데다 도자기의 문양 또한 우리 분청사기의 문양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기와 얹은 집들 사이로 돌담길을 걷노라니, 마치 우리나라의 옛 한옥 마을에 온 듯했다.

사진가 이동춘님은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신구대 사진과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1987년부터 10년간 출판사 디자인하우스에서 에디토리얼 포토그래퍼로 일하며 여행, 리빙, 푸드 등 다양한 분야의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현재 한국의 전통문화와 관련된 종가 문화 사진을 촬영하며 선현들의 의(義)와 정신을 담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사진집으로 <차와 더불어 삶> <한옥, 오래 묵은 오늘> 등이 있습니다.

 

환상적인 빛의 원형, 오로라를 찾아서

1988년 북극권 취재를 위해 시베리아 동쪽 끝 추코트카 반도를 여행하던 어느 날 밤 북쪽 하늘에 생긴 이상한 모양의 녹색 구름을 발견했다. 그 구름은 점점 넓어지면서 아주 빠르게 온 하늘을 휘젓고 다녔다. 그게 오로라인 줄 나중에야 알았다.

그 후 오로라를 찍어보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다가 작년 가을부터 올봄까지 오로라를 찾아 북극 지방을 누비게 되었다. 올해가 바로 11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태양의 활동이 왕성해지는 극대기이기 때문이다. 몇 년간 잠잠하던 태양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많은 흑점을 발생시킨다. 태양의 흑점이 폭발하면 고에너지 입자가 우주로 흩어지는데, 그걸 태양풍이라고 부른다. 지구 가까이 다가온 태양풍은 지구의 자기력선에 끌려들면서 대기권의 물질과 반응하여 빛을 낸다. 그게 바로 오로라이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고위도 지방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건 극지방의 자기장이 세기 때문이다. 지구는 거대한 막대자석과 같아 오로라는 북극과 남극에 같은 시간, 같은 모양의 대칭형으로 나타나는데 북극 하늘에 나타나는 현상을 ‘오로라 보레알리스’ 라고 부른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지역은 남반구에선 대부분 바다여서 북극 지방으로 가야 하는데, 지구의 자북극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도넛 모양의 지역에서만 관찰이 가능하다. 위도상으로는 북위 62도에서 70도 사이에 해당하는 이 도넛 모양의 지역을 ‘오로라 오발’이라고 부르는데, 캐나다 북부, 알래스카, 시베리아 북부, 스칸디나비아 북부, 아이슬란드, 그린란드가 여기에 속한다.

오로라를 제대로 보려면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태양에서 방출된 입자가 지구에 도달하는 시간에 맞춰야 하고 구름이 없어야 하며 하늘이 어두워야 한다. 북극권은 여름철이 백야이기 때문에 밤이 없으므로 겨울철에만 관찰이 가능한데 날씨가 안 좋은 경우가 많다. 오로라 관측의 또 다른 어려움은 인공광이다. 아무리 하늘이 맑아도 빛이 있는 곳에서는 오로라 관찰이 어렵다. 사정이 이러니 멋진 오로라를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타나도 대개 아주 짧게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절정의 순간은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오로라. 강렬한 오로라 폭풍이 밤하늘 전체를 뒤덮고, 대자연이 펼치는 너울거리는 춤, 그 황홀한 광경 앞에 내 가슴은 뛰기 시작한다.

나에게 오로라는 무엇일까. 이렇게 세상은 아름답고 살 만하다는, 우주의 티끌에게도 누릴 수 있는 나름의 행복이 있다는, 비록 꿈같이, 쏜살같이 지나간, 찰나에 불과한 순간일지라도 그 행복은 분명히 존재했고 앞으로도 소소한 행복의 순간이 찾아올 거라는, 그 순간을 즐기고 감사하라는 하늘의 축복이었다.

사진 & 글 박종우

다큐멘터리 사진가 박종우님은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에서 영상매체를 전공했습니다. 11년간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근무하다가 다큐멘터리스트로 전환한 후 티베트 지역, 몽골리안 루트 등 전 세계를 돌며 사라져가는 소수민족 문화의 기록을 남기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다큐멘터리 영상물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사향지로> <최후의 제국> 등이 있습니다.

오로라를 보러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SBS 스페셜 <오로라헌터>가 7월 21일 일요일 밤 11시 15분에 방송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