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공유하고 싶은 책 목록을 도서관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는데, 그러면 우리 집이 곧 도서관이 되고 나는 곧장 ‘사서’로 임명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용자는 편한 시간에 ‘똑똑’ 문을 두드리고 책을 빌려 가면 된다. 그렇게 이웃의 얼굴을 알고, 차를 함께 마시고, 사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점점 두터운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똑똑도서관 ‘관장’은 아파트 주민 김승수씨.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한 그는 몇 년 전 학생들에게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라는 과제를 내주면서, 본인 스스로도 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36세의 젊은 나이로 동 대표와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의장에 출마하게 된다. 2년간의 임기를 성실히 마친 후 한 가지 미해결 과제로 남았던 것이 바로 도서관 건립. 이를 위해서 김승수씨는 자신의 집에서 콘퍼런스를 열고, 지인의 아이디어였던 ‘똑똑도서관’을 아파트에 적용하게 된 것이다.
현재 도서관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집은 20여 가구. 게다가 요리, 리본공예, 냅킨아트 등 주민들이 가진 재능을 자발적으로 나누는 ‘리빙 라이브러리’ 강좌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맨얼굴에 슬리퍼 차림으로 개최되는 콘퍼런스, 남편이 출장 간 집에서 열리는 리본공예 수업과 요리 워크숍…. 평범한 ‘아줌마’들은 서로의 공간과 재능을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하다 보니 실력이 늘어 리본 납품도 하고, 요리 대회에도 출전하기에 이르렀다. 타지로 이사 가도 돌아오고 싶은 고향 같은 아파트, 더 이상 CCTV가 필요 없는 안전한 아파트를 만드는 법은 결코 어렵지 않다. 옆집 아이 이름을 알고, 윗집 아랫집을 똑똑 두드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똑똑!
김승수 관장 이야기
알고 보면 똑똑도서관이라는 것도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해오던 방식이에요. 한 집에 모여 뜨개질하고, 마당에서 수박도 먹고, 물건도 빌려주고요. 그런데 요즘엔 워낙 이웃 간에 소통도 없는 데다, 평범한 이웃도 혹시 범죄자가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신뢰가 무너지다 보니, 소소한 일도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똑똑도서관이라고 해서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여자 친구를 만날 때 뭘 좋아할까, 어떤 모습이 예쁜가, 관찰하고 관심 가지면 더 관계가 좋아지는 것처럼 내가 사는 동네도 뭐가 필요할까,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을까, 탐색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우리 동네에 맞게 적용시켜 보는 거죠. 꼭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원룸에서도, 대학교에서도 할 수 있고, 뭐든 나눌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똑똑도서관입니다.
앞으로도 동네 사람들과 함께할 일들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광장에 그랜드피아노를 설치하고 동네 피아노 학원 원장님의 음악회를 여는 겁니다. 귀뚜라미 소리 들리는 가을 저녁에, 우리 동네 아티스트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 그 기억이 정말 좋지 않을까요?
크고 화려하다고 좋은 아파트가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사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4년간 주민들과 함께하면서, 네 것 내 것이 없어지고, 이웃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먼 미래보다는 오늘 하루하루가 즐거운 일들을 탐색하고 만들어왔듯이, 여러분도 이웃을 알아가고, 믿으면서 똑똑도서관 문화 운동을 시작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그런 이웃이 있다면 일상에서 많은 변화가 생겨날 테니까요. 다음에 있을 ‘똑똑도서관 전국 관장단 회의’에서 만나 뵙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