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마음수련 정기구독 10만 명! 그날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김혜진 기자입니다. 이번에 저는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커리어우먼을 만났습니다. 얘기를 나누며 능력자인 그녀가 순간 부러웠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으며 예리한 질문을 해댔지요.ㅎㅎ^^; 듣다 보니 잘나가는 자의 고충도 만만치 않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예전엔 허드렛일이라고 여기던 복사하는 일마저도 좋아하게 됐다는 진정한 직장인, 그녀와의 리얼 빼기 토크입니다.
● 직장 생활 몇 년 차예요? 25살에 첫 직장에 들어갔으니까 18년 정도.
●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개인신용정보 관련 일을 쭈욱 해왔어요. 왜 은행에서 대출하거나 카드 쓰면 갚아야 되잖아요. 돈을 빌려준 입장에선 이 사람이 잘 갚을지 평가 기준이 없으니까 여러 기준으로 통계 모형을 만들어 점수를 내는 거죠. ‘이 사람은 안 갚을 확률이 몇%다’ ‘이 사람은 대출해도 된다’ 등등의 통계 모형을 만들고 전략을 짜는 일입니다.
● 능력자라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제 별명이 신용평가계의 대모였어요.(웃음) 시작 당시엔 한국에선 생소한 분야였고, 한편으론 IMF와 맞아 떨어진 것도 있어요. 대부분의 은행에서 개인신용평가에 대한 시스템 도입을 해야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입사 후 6년간 완전히 일에 올인했어요. 야근이 기본이고, 결혼 일주일 휴가로 자리 비우는 동안에도 대학원 후배를 데려다 놓을 정도였으니까. 애기 낳기 전날까지도 출장을 다녀야 했어요.
● 와~ 진짜 열심히 하셨네요.
그때는 그렇게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일이 재밌기도 했지만, 책임감, 자존심도 있었으니까. 당시 회사에선 주로 남성만 있는 직급에 나를 처음 뽑은 거였거든요. 남녀평등고용법에 의해서. 첫 시범 케이스가 된 거죠. 그래서 입사 초반엔 매일 한 명 이상씩 나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네가 시범 케이스야, 다 너 보고 있어.”(웃음) 내가 잘못하면 여자 후배들의 길을 막는 게 되니까 열심히 하는 수밖에요.
● 암튼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는 커리어우먼이라, 멋져요. 부럽~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에요. 6년 차 되니까 어느 순간 딱 숨이 막히더라고요. 회사라는 게 대리 직급 이상 올라가면 주변 사람들과 같이 하는 일이 많은데 문제는 사람들이 내 맘 같지 않다는 거죠. 특히 윗사람에 대한 시비가 많았어요. 최대한 설명해도 못 알아듣고, 판단도 못 하고, 심지어 업무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상사. 이건 아니다 싶어 회사를 옮겼는데 그 직장에서도 윗분이 장난 아니게 일을 못하시는 거예요. 사장님한테 얘기했는데 그 사람은 여기 그만두면 갈 데가 없다, 니들은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나는 그 사람 못 자른다, 하시더라고요. 도저히 안 돼서 나중엔 그 회사도 그만뒀어요. 내 얘기가 팍팍 먹혔으면 좋겠는데, 그건 절대 안 되는 일이잖아요.
● 다 내 길을 막는 원수로 보였겠네요.
그러게, 사람들이 다 적이더라고.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내 속이 하도 시끄러우니까 그걸 먼저 정리하고 싶었어요. 마침 영등포구청에서 마음수련 공개 세미나를 한다기에 갔는데, 마음 비우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 순간, 딱 감이 오더라고요. 느낌 아니까!(웃음)
● 해보니까 시끄러운 마음들이 정리가 잘되던가요?
마음수련이 자기의 산 삶의 기억, 관념 관습 일체를 버리는 거잖아요. 제 경우는 일에 대한 생각, 잣대, 틀을 많이 버렸어요. 일을 잘해야 한다, 이 정도 직급이면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등등. 그러니까 화도 덜 나고 답답한 것도 덜해지더라고요. 전엔 항상 부족분만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렇지 않은 거예요.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지요.
● 1등 하고 잘하고 싶은 건 당연하잖아요. 그런 마음도 버려야 한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돼요.
옛말에 20대에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성공이란 말이 있어요. 내가 그랬던 거 같아요. 나름 성과를 내다 보니 그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고,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새삼 나도 나이가 들어 보니까, 전처럼 기억력이 빠릿빠릿하지 못하더라고요. 윗분들도 그랬겠구나, 어쩔 수 없는 게 있구나, 알게 되더라고요. 몸이 아파 그럴 수도 있는데 나태해서 그랬다고만 생각하고, 남들도 나처럼 하는 게 당연하다며 밀어붙였으니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근데 잘해야 한다, 인정받아야 한다, 1등 해야 한다, 하는 기준치가 없어지니까 오히려 일이 훨씬 재밌어지는 거예요.
● 전에 비해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건가요?
수련을 하며 바늘구멍만 한 시야가 넓어지니까 내가 잘못한 부분도 보이는 거예요. 전엔 쓸데없이 목표를 높게 잡고 힘들어하고, 실패하면 모든 사람이 원수였는데, 이제는 상대가 보이고 그 사람 고유의 능력이 보여요. 즉 현실에 맞는 목표를 잡고 그 사람이 잘할 수 있도록 돕게 되더라, 이거예요. 그러니까 성공 확률도 더 높아지고 일 자체가 재밌어지니까 복사하는 일 같은 사소한 것조차 다 감사하게 돼요. 모든 일에는 이유와 뜻이 있다는 걸 아니까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고 할까. 매순간 인정받기를 원하고 결과가 성취될 때만 행복해하던 때는 몰랐던 재미예요.
● 사실 직장 생활이란 게, 일보다 감정 소모가 더 힘든 것 같아요.
아휴~엄~청~. 근데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때보다 더한 거 같애요. 그러니까 직장 생활 1, 2년이면 지치죠. 우리 회사에 명문대 나오신 상사가 있는데 그분 보면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잘나가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인정을 못 받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을 안 해요. 근데 자기가 일을 안 하는지를 몰라. 모든 시간을 회사가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고 몰라주는 데 대한 탓, 허무감에 몸서리치는 데 쓰고 있는 거죠. 그 옛날 스마트할 때만 기억하고. 안타까운 건 그런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해도 모른다는 거예요. 나도 수련 안 했으면 저랬겠구나 싶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 고로 직장 다니는 우리들, 행복할 수 있나요, 없나요? 결론을 말해주세요.
아까 한 얘기에 다 답이 있으니까 스스로 찾으세요.(웃음) 암튼 너무 목표에만 매달리지 말고, 내가 부족한 것도 인정하고 상대가 부족한 거 인정하면서, 같이 도와주고 어울리면 된다, 이 말씀입니다. 직장 생활이 행복해야 내 삶도 행복하다는 거 잊지 마시고요.
파이팅 합시다, 직장인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