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군인이 천직이셨다. 군인 하면 떠오르는 단어 강직, 규율, 성실은 아빠와 잘 어울렸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 넘어 주무실 때까지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는 법이 없이 스스로를 엄격하게 컨트롤하셨다.
남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기억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도, 아빠는 항상 무언가를 배우며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다.
당신의 자식들도 그러한 성향을 닮기 바라셨는지 초등학생 때까지 한 달에 한 번 서점에 데려가 책을 사주셨고, 방학 때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숙제를 내주셨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한 번도 그 숙제를 다 해본 적이 없다.
그사이 당신은 긴 출퇴근 버스에서의 독서로 목 디스크를 얻으셨고 거의 모든 동창회의 간부 역할로 바쁘셨던 가운데에도 대학원 졸업장을 4번이나 집에 가져오셨다. 하고 싶으신 일이 많았던 아빠는 하루가 늘 모자랐다.
고등학교 때까지 TV 성공시대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하루를 전투적으로 살아가는 아빠의 모습은 본받아야 할 표본 그 자체였다. 공부에 뜻이 없던 내가 대학 입학과 회사 입사를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빠를 보며 배운 시간관념과 습관 덕분이었다.
그러나 사회에 발을 딛고 머리가 크기 시작하면서 아빠가 꿈꾸는 것들이 이상적 사회였음을 알고 속이 불편해지곤 했다. 아빠의 장군 진급 실패 소식을 들으며 능력에 보상해주지 않는 사회에 분노하기도 했고, 남들처럼 약삭빠르게 자신의 잇속을 챙기지 못하고 미련하고 정직하게 일만 하는 아빠가 잘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태어나면서부터 심어준 노력, 성실이라는 가치관은 개미와 베짱이 동화 속에 나오는 해피엔딩일 뿐이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TV 속 성공시대는 결과론적 이야기라고 단정 지었다.
이후 사회생활로 인한 독립과 결혼 생활로 왕래가 줄어든 만큼 딱 그만큼의 대화와 왕래를 하며 지냈다. 그리고 지난해 봄 37년간의 ‘군인’이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제2의 인생을 축하하는 전역식 행사가 열렸고 아빠는 10명을 대표해서 전역사를 발표하셨다.
여러분! 저는 전역자를 대표하고, 전역사를 나타내는 의미를 시인 고은의 시 한 구절로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 시는 가장 짧은 시로서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 시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보잘것없는 삶이라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귀한 것이 너무 많았고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한 삶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 30여 년의 군 생활을 되돌아보니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보람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부족한 저희들을,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철저하게 지도해준 수많은 지휘관님과 직속상관 및 선배님들, 그리고 결코 쉽지 않았던 저를, 묵묵히 잘 따라주었던 부하들의 진심 어린 충정, 그리고 한평생 같이 살아온 나의 가족들에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진정한 마음으로 감사와 존경을 바칩니다….
전역사는 아빠를 우러러보았던 작은 나를 기억나게 했다. 그 속에는 내가 눈을 돌려버린 후에도 지속되던 아빠의 인생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함부로 말하거나 판단할 대상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했다. 아빠는 이미 인생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오늘도 즐겁게 인생을 달리고 계셨다. 부끄럽게도 열정에 대한 보상을 운운했던 나는 그 가치관의 기준을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지금 아빠는 비록 군복은 벗으셨지만 여전히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바쁜 삶을 살고 계신다. 늘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아빠는 군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자마자 더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일들을 추진하고 계신다. 학식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 군에 대한 사랑을 펼칠 수 있는 연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니 말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그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의 길로 접어들었다. 때때로 아빠의 전역사를 보며 우리의 인생을 응원하는 작은 즐거움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