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처럼 소박하고 환한 웃음을 간직한 울산제일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경아(33)씨. 그녀는 늘 환자의 입장에서 들어주며,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상냥한 의사로 통한다. 환자들의 병이 호전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천생 의사 경아씨는 의대 재학 중 마음수련을 하며 진정으로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다 한다. 마음과 병에 관한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있으며, 항상 ‘환자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는 김경아씨. 봄꽃처럼 화사한 그녀의 마음 빼기 이야기.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병원에는 생로병사, 그 네 가지 이야기가 다 있습니다. 인간 삶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지요. 대구의료원에서의 전공의 시절, 당직을 설 때면 정말 응급 환자들의 죽음을 많이 보았습니다.
“0월 0일 0분 호흡 없고 맥박 없고 심장 박동 없고… 000님의 사망을 선언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응급 처치를 동원하며 피 말리는 밤을 보내지만 결국 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면 참 인간 삶이 덧없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이 있는 이 순간, 조금이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가정의학과에는 여러 가지 내과 질환을 가진 환자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당뇨, 고혈압, 심장병, 갑상선 질환, 감기 환자…. 일단 그분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처방을 고민하면서 마음부터 보듬어주려고 노력합니다.
“병이 안 나으면 어떡하지” “앞으로 사회생활은 어떡하나” 하는 불안과 두려움…. 그런 것부터 놓으실 수 있게 충분히 설명해주고, 이렇게 저렇게 하면 나을 수 있는 병이라고 말해드리는 것만으로도 환자분들의 표정도 밝아지고 치료도 훨씬 쉬워지거든요.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병의 증세도 달라진다.’
그렇게 마음의 힘을 알고 환자의 마음을 우선적으로 보듬어주려고 노력하게 된 건, 마음수련을 하면서였습니다. 수련을 하며 마음을 비우는 것만으로 질병이 낫는 수련생들을 정말 많이 보았거든요. 불안,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등의 정신적인 증세뿐 아니라, 당뇨, 심장병, 관절염, 유방암, 백혈병, 위암 등 신체적 질병까지.
처음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많이 신기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인간은 소우주다, 몸과 마음은 하나다’라는 전체적 관점에서 병을 바라보지만, 서양의학은 이 병은 00바이러스의 침투로 인한 것이니 이 바이러스를 제거해줘야 한다 등의 진단적 사고에 익숙하다 보니, 마음을 비움으로써 병이 낫는 메커니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스트레스, 화 등이 호르몬이나 혈압 등 생체에 변화를 일으켜 지병을 만들고, 그런 마음들을 빼냄으로써 병이 호전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지금은 마음수련을 하신 의사들과 박사과정 연구생들이 모여, 마음과 병의 상관관계를 좀 더 과학적으로 밝히기 위해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서, 병에 대해 단순히 몸의 증세만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요소까지 더해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됐다는 것은 저로서는 참 큰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지요.
저는 의대생 시절에 마음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의대생이라고 하면 보통 꿈을 이룬 ‘드리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처음엔 많이 방황을 했어요. 군대식의 선후배 관계, 빽빽한 수업 일정, 강압적인 과 분위기, 그리고 왠지 돈과 명예를 좇는 듯한 모습….
정말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나? 꼭 의사가 돼야 행복할까? 내가 여기 있는 건 사회적 시선이나 부모님의 기대 때문 아닌가?
그렇게 치열하게 방황하던 중 마음수련을 하게 되었죠. 뭔가 인생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수련을 하면서 내가 진짜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나만의 마음세계를 만들어놓고 그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열심히 버려나갔지요.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내 마음속 세계에서 벗어났구나, 이 세상은 원래 하나였구나, 이게 바로 진짜 세상이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방황이 끝나더군요. 중학생 시절 막연히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선택했던 의사라는 직업, 나는 그 길을 걸어왔고 이렇게 나의 꿈을 이루어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꼭 의사가 되어야 행복할까? 고민했지만, 내가 어렵게 공부한 의학 지식으로 응급 환자를 살려냈을 때면, 나는 이미 말할 수 없이 행복했으니까요. 그 행복에 감사하기보다 번뇌를 위한 번뇌, 방황을 위한 방황을 해왔던 순간들은, 내가 만든 마음세계 속에서 일어난 망념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과거가 아닌 현재에 발을 딛고, 남의 기준에 ‘좋아 보이는’ 삶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생각 자체가 바뀌자, 매일 아침 나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는 병원으로 가는 길이 감사했습니다. 사실 제가 꿈꾸는 의사의 모습은, 각 환자의 가족사와 병력 등 어떤 문제라도 편하게 상의할 수 있는, 그 사람만의 주치의가 되어주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현실 속에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너무나 막연했는데, 마음수련이 그걸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지요.
마음수련의료회 회원으로서 정기적으로 의료 봉사에도 참가했습니다. 예전엔 능력이든 돈이든 뭔가 많이 가지고 있어야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나누려고 하는 마음만 있으면 아주 작은 것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의료회 선배들 말씀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봉사하고 나누는 것은, 이 세상이 하나임을 깨달은 자라면 당연히 하게 되는 일이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언제나 가짐 없는 마음으로 참 의사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