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과 2008년 두 번의 올림픽 선발 좌절, 세 번의 체급 변경, 부상….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번번이 운이 따르지 않았던 송대남 선수는 ‘불운의 사나이’라 불렸다. 하지만 그 불운마저 넘어서 2012년 처음으로 런던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한다. 그의 나이 34세. 유도에서는 환갑을 넘어 진갑이라 불리는 나이에, 체급을 바꾼 지 1년여 만에 금메달을 따낸 것은 유도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었다. 0.1%의 기적, 사람들은 이제 그를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 부른다. 런던올림픽이 끝나고 일주일 후 만난 그에게선, 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선수답게 강하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풍겨 나왔다.
“아직까지 좋아 보여요. 그만큼 혹독한 훈련을 소화했다는 겁니다.”
브라질 선수와의 준결승전 경기 말미, 지치지 않고 계속된 공격 시도를 하는 송대남 선수를 보고, 해설위원은 말했다. 5분이라는 짧은 경기 안에, 유도만을 위해 살아온 그의 23년 세월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8월 2일, 드디어 열린 -90kg급 결승전. 상대인 쿠바 선수는 겨우 22살, 힘도 세고 유연성도 좋은 선수. 하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하던 송대남 선수는, 치열한 접전 끝, 연장전 10여 초만에 절묘한 기술을 시도, 성공하며 경기를 마쳤다. 순식간에 이뤄진 기술이었다. 금메달 확정 후 매트에서 내려온 그는 그도 모르게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후배 조준호 선수는 “대남이 형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에 금메달을 따는 순간, 경기장에 있던 관계자들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금메달 축하드립니다.
요즘 송대남 선수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지요?
사실 금메달을 땄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저 같은 경우는 의외로 아저씨 팬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어요.(웃음) 힘들어하시는 가장들한테 많이 힘이 된 것 같아요. 또 후배들한테 전화도 많이 받아요. 포기하려고 했는데 형 때문에 다시 하게 됐다고. 그렇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뿌듯합니다.
실력보다 운이 안 따라주는 선수,
그런 느낌이 강했기에 더 감동한 것 같아요.
이번에도 올림픽엔 나가게 됐지만 금메달 후보로 주목받지는 못했어요. 항상 제 수식어가 그런 거였어요. 불운의 한판승의 사나이, 만년 2인자. 한번은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아버님이 문구를 써주신 적이 있어요. ‘외로운 1등보다 후덕한 2등이 낫다, 힘내라, 아들아.’ 그게 너무 가슴에 남아서 항상 그걸 가슴에 새겼어요. 그렇다고 힘들어하고만 있지는 않았어요. 내가 덜 노력했으니까 그런 거구나, 생각했고 더 많이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이번에 정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정말 엄청나게
훈련을 하셨죠?
운동은 진짜 한 번 한 번 할 때마다 죽을힘을 다해서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훈련을 소화할 수가 없거든요. 만약에 새벽 운동 시간에 400미터 트랙을 1분 안에 몇 바퀴를 뛰어야 하는데 못 했다, 그러면 밥도 안 먹고 오전에 다시 나와서 기록 안에 들어올 때까지 뛰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죽을힘을 다해서 해요. 그렇게 새벽, 오전, 오후, 야간 운동을 하면서 4년 동안 준비를 한 거죠. 특히 저한테는 이 올림픽이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이기 때문에 정말 후회 없이 경기하고 싶어서 피나는 땀을 엄청나게 흘렸어요. 달리는 말에게 채찍질하듯이 나약해지지 않도록, 제 자신한테 혹독했죠.
그렇게 연습해도
시합 때는 몹시 긴장될 것 같은데,
그걸 해소하는 방법이 있나요?
시합 나가면 긴장 많이 하죠. 특히 올림픽 무대는 더해요. 몇 만 관중 앞에서 딱 둘이 시합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얼마나 즐기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굉장히 즐기려고 노력했어요. 이게 마지막이다, 앞으로 나에게 이런 긴장감은 없을 거다, 하면서. 그리고 대회 준비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이나 심리 치료도 많이 받았고요. 계속 마인드 컨트롤도 했죠. 매트 위에서는 내가 제일 강하다! 내가 흘린 땀은 결코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을 만큼 훈련을 했기 때문에 나는 자신 있다! 하지만 절대 자만해서는 안 돼요. 그런 마음들 때문에 이기고 지는 거거든요.(웃음)
송대남 선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유도를 시작했다. 타고난 운동신경의 그는 초등학교 때 나간 첫 전국 대회에서 3등이라는 성적을 내며 유도 유망주로 주목받는다. 그즈음 88올림픽에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목표를 금메달로 삼는다. 이후 그는 23년 동안 유도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의 길에는 유독 많은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 고비는 고등학교 2학년 초. 척추분리증이라는 병으로 1년 동안 쉬게 되면서 찾아온다. 운동선수로서는 치명적인 것. 다행히 그 고비를 이겨내고 다시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 선발전에서 아쉽게도 탈락. 그렇지만 이번에도 다시 시작했고, 각종 대회에서 입상하며 명실상부한 -81kg급 세계 최강자로 자리를 굳힌다. 그동안의 고비를 이겨내면서 쌓아온 탄탄한 기본기, 모든 훈련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안정적이고 매너 있는 경기 등 유도인으로서 인정받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선발전에서 또다시 탈락. 그때 나이 서른, 유도 선수로서는 환갑이라 하는 나이였다.
“그때는 이제는 은퇴해야겠다. 유도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완전히 유도판을 떠났었어요. 올림픽 열기를 보는 것도 싫어서 아예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갔어요. 그때 평생 먹을 술을 다 마신 거 같아요.”
하지만 운명은 그를 그렇게 두지만은 않았다. 2008년 12월, 다시 기회가 온 것이다. 마침 러시아에서 세계 랭킹 1위부터 16위까지 모아놓고 하는 세계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 대회에서 당당하게 1등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저력을 알아본 대표팀 정훈 감독은 그에게 다시 한 번 시작하자며 손을 내민다. 하지만 그게 시련의 끝은 아니었다.
2010년 11월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으로 또 한 번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그는 수술 후의 병원 생활로 체중이 불자, 오히려 -90kg급으로 체급 변경, 5개월 만에 첫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다. 연골 봉합 수술 뒤, 적어도 6개월은 운동하지 못할 것이란 진단,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한 도전이었지만 그는 선발전에서 승리하고 당당히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게 된다.
송대남 선수의 유도 인생을 보면
‘인간 승리’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무릎 수술 후 뛰면서 아프니까 울면서 뛰고, 주저앉아서 무릎 만지다가 괜찮아지면 또 뛰고 그랬어요. 제가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어요. 23년 동안 가졌던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목표. 포기하기에는 23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때 느낀 게 하나의 목표가 있으면 사람의 능력은 무한대가 된다는 거였어요.
위기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송대남 선수를 믿어주신 분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고2 때 부상당하고 1년을 쉬고 나서였어요. 다시 유도를 하는데 항상 이겼던 선수들에게 번번이 지니까 참 힘들더라고요. 그때는 진짜 어린 말로 울면서 그만하겠다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근데 “힘들면 그만해라. 다른 길도 많으니까 괜찮다” 하시는데, 전화를 끊고 뒤돌아서면서 나를 이렇게 믿어주시는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2008년 올림픽 선발전에서 떨어져 방황할 때는 정훈 감독님이 잡아주셨죠. 이번에도 34살이나 돼서 나갔다가 지면 창피하니까 그만둬라 하면서 비웃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많이 속상했지만, 저를 믿어주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끝까지 할 수 있었어요. 믿음이라는 단어가 제 가슴속에 박혀서 굉장히 큰 힘이 되었던 거예요.
정훈 감독님과의 인연이 특별한 것 같아요.
감독님의 막내 처제와 결혼한 사실,
금메달을 딴 후 정훈 감독님께
큰절을 드린 것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선수 생활하면서는 가족이라고 한 번도 생각 안 했어요. 가족이라고 생각했으면 함께 운동 못 했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조금 잘못하면 감독님한테 피해가 갈까 봐 더 조심스럽게 행동했습니다. 감독님께서도 더 엄하게 대하신 것도 있고요. 선발 대회에서 1등을 했음에도 가족이니까 챙겨서 올림픽 내보내는 것 아니냐, 그런 소리도 많았어요. 아마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금메달 하나로 다 대답이 된 것 같아서 정말 기뻤죠. 금메달 따고 바로 옆에 계신 감독님 얼굴을 뵈니까 그동안의 세월이 스쳐 지나가면서, 너무 감사해서 그렇게 절을 드린 거 같아요. 그게 외신 기자들한테 독특하게 느껴졌나 봐요. 시합을 마치고 인터뷰하는데 신기한 듯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은 감사하면 큰절한다, 그게 지도자에 대한 예의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다, 그런 얘기를 했죠.(웃음)
유도 선수들은 체급을 바꾼 지 1년여 만에 금메달을 따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살을 찌우면 그것을 또다시 근육으로 만들어야 하는 과정 등, 체급에 맞는 혹독한 적응 훈련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로 스테이크 10장 이상, 낮이고 밤이고 먹을 수 있는 것 이상의 식사를 하고 그것을 근육으로 만들기 위해 또 훈련을 했다. 또 -81kg급에서 -90kg급으로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힘도 그 체급들 중에서 제일 약했고, 키도 제일 작았다.
하지만 그는 그걸 보완하기 위해 기술과 스피드를 더 가다듬었다. 다행히 유도는 강한 힘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그에 순응하면서 그 힘을 역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기본 원리였기에, 매 경기마다 업어치기의 달인이라 불리는 그의 절묘한 ‘명품 업어치기’는 더욱 빛을 발했다.
유도 선수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유도는 그런 것을 보여줘요. 사실 유도는 힘도 좋아야 하고, 근성, 근력 등 모든 게 받쳐줘야지만 할 수 있는 운동이에요. 그렇지만 저는 유도 선수라면 무엇보다 먼저 인성이 갖춰졌으면 좋겠어요. 좀 잘한다고 잘난 체하고, 막 목에 힘주고 다니면 운동을 아무리 잘해도 인정을 못 받아요. 그래서 유도 선수로서 필요한 첫 번째 자세는 겸손인 것 같아요. 겸손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한계를 정해놓지 말자’가
인생의 좌우명이라고 들었습니다.
훈련을 하다 보면 정말 힘들어요. 그러면 나는 이만큼이 한계야, 이러면서 그만하잖아요. 근데 저는 ‘인간의 한계를 정해놓지 말자’고 했어요.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말고 노력하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유도와 인생이 비슷한 것 같아요. 어제의 승자가 오늘의 패자가 되고,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되고. 인생도 그렇잖아요. 그래서 일희일비하지 말자 생각해요. 승자가 됐다고 우쭐할 필요도, 패자가 됐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항상 아무리 힘들어도 힘내시고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면 그 꿈을 꼭 이룰 거라고.
시련도 환희도 모두 맛본 선수, 극과 극을 달려본 송대남 선수의 말이기에 더욱 마음에 다가왔다. 이제 선수로서는 은퇴한 송대남 선수는 대표팀 코치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한단다.
“늘 땀을 흘릴 때가 제일 행복했습니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많이 행복했고 시합을 하면서도 행복했고 금메달 땄을 때도 행복했습니다. 이제 올림픽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열심히 도와주고 싶습니다. 많이 응원해주시면 우리나라 유도를 최고로 계속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웃음)”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마치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떠나는 송대남 선수. 그는 유도의 금메달을 너머 인생의 금메달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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