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가르쳐준 것은 밤하늘의 별빛이다.
어렸을 때 가출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쩌다가 어느 시골 역사의 철로 가에서 한뎃잠을 자게 됐는데, 밤하늘의 은하수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그 은하수와 별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이 세상이 정말 이상한 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중1 겨울에 학교를 관뒀습니다. 큰형이 대학에 붙어 그 아래로는 학교 다닐 형편이 못 되었거든요. 생계를 책임지는 위치는 아니었기에 혼자 구두도 닦고 ‘아이스께끼’도 팔았어요. 그 무렵 때로 정처 없이 가출도 한 거지요. 그런데 3~4년을 그러고 나니까 이렇게 살아선 안 될 것 같다는 자각이 들더군요. 검정고시로 뒤늦게 고등학교를 마친 후, 무작정 상경해서는 첫 직장으로 출판사 편집부에 들어갔어요. 그때가 21살, 70년대 초였죠.
자취하던 암사동에서 영등포까지 버스를 갈아타가며 하루 4번 한강을 건너 출퇴근했어요. 그렇게 또 한 10년쯤 살다 보니, 인생이 참 싱겁더라구요. 서늘한 바람이 쉬잉 불던 어느 가을날, 뭔가 할 게 없을까 하다가, 학교나 다시 가보자 해서 뒤늦게 책을 잡았습니다.
다방에서, 만원 버스에서 낱장으로 찢은 대입 참고서를 들여다보며 30살에 성균관대 영문학과 야간에 들어갔습니다. 우주와 별을 좋아해서 책까지 쓴 사람이 웬 영문학과? 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할 말이 딱히 없어서 그러죠, ‘영문’도 모르고 갔다고.
생각해보면 나는 그 어린 시절부터 도대체 우주z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품고 별빛에 취해 살았던 것 같습니다. 별은 우주의 주민이니까 당연한 일이겠지요.
우주는 한마디로 내가 사는 동네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동네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호기심과 다를 바가 없지요. 마찬가지로, 이 우주라는 동네가 어떻게 생겼나 알고자 한 것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우주에 대해서는 유서 깊은 질문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우주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주 속에서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누구에게나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스물이 갓 넘은 시절, 이런 갈증을 풀어줄 천문학 책을 찾아 청계천 헌책방들을 뒤지며 돌아다녔지만 갈증은 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밥벌이로 출판을 하며, 심심찮게 천문 관련 책들을 기획하고, 종당에는 한국 최초의 아마추어 천문 잡지 ‘월간 하늘’을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나이 오십도 되기 전에 강화도 산속으로 들어간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다. 늘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게 출판사 편집실인데, 그날도 야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다 문득 높은 아파트 베란다에 누런 조등 하나가 덩그러니 걸려 있는 걸 봤지요. 순간 이런 생각이 번뜩 들더군요. ‘아, 나는 아파트 안방에선 죽지 말아야 할 텐데….’ 정신없이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대도시 아파트 안방에서 죽는 것. 이게 내 인생 최악의 시나리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기가 오자 미련 없이 출판사를 접었지요.
우리 집은 강화도 서쪽 끄트머리의 퇴모산이라는 야트막한 산 속에 있습니다. 해만 지면 사위가 적요하고, 달이 없는 밤에는 한 치 앞이 안 보입니다. 그래서 겨울날 밤 열 시쯤 마당에 나서면, 전깃줄에 걸린 방패연처럼 남천에 덩그러니 걸려 있는 별자리 하나를 늘 만납니다. 바로 오리온자리. 지구 행성의 남천과 북천 통틀어 하늘을 뒤덮고 있는 88개 별자리 중에서 유일하게 일등성 두 개를 뽐내고 있는 별자리지요. 게다가 가슴께에 아름다운 성운까지 하나 품고 있지요. 예쁜 나비 모양을 한 오리온 대성운입니다.
지금도 별들이 태어나고 있는 이 성운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약 1,500광년. 초속 30만km의 빛이 1,500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거립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오리온 대성운은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합병하던 무렵인 1,500년 전의 모습인 거지요. 하지만 이 정도 거리도 대우주에 비한다면 큰 바닷속의 물방울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밤하늘의 별밭을 거닐다 보면 우주의 역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137억 년 전 ‘원시의 알’에서 태어난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속도로 팽창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태초의 우주에서 원시 수소 구름들이 수억, 수십억 년을 서로 뭉친 끝에 수천억 개가 넘는 은하들을 만들어내고, 그 수천억 은하들이 지금 이 광막한 우주 공간을 어지러이 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또한 그 별의 일부로 몸을 만들고 생명을 얻어 태어났습니다. 별이 없으면 인류도 없습니다. 별과 인간의 관계는 이처럼 밀접한 것입니다.
광대무변한 우주와 억겁의 시간을 생각하노라면, 우리네 삶이란 게 얼마나 티끌 같고 찰나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덧 ‘나’라는 존재는 무한소無限小의 점 하나로 소실되고, 종국에는 딱히 ‘나’라고 정의할 만한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이 ‘나’라는 존재는 대우주 속에서 그 어디에 그 무엇으로 끼워 넣어도 하등 다를 게 없는 그런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깊이 자각하게 되지요. 그러면 마침내는, 나와 너라는 차이까지 흐릿해지고, 물物과 아我의 경계마저 아련해지고 맙니다.
이 지구에 사는 우리는 너무나 눈앞의 현실에 함몰된 나머지, 머리 위의 저 엄청난 현실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삽니다. 말하자면 우주 불감증이지요. 눈앞의 것, 땅 위의 것에만 모든 관심을 쏟습니다. 그래서 뭔가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극단적인 생각들을 합니다. 시각을 달리하면 또 다른 세상이 있는데 말입니다. 별을 보고 우주를 사색하다 보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세상과 인생을 보게 되지 않을까요. 때로는 버거운 인간사도 좁쌀같이 보이고, 세상 앞에 쫄지 않고 힘내서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년은 해왕성이 인간에게 처음 발견됐을 당시의 그 자리로 165년 만에 돌아온 해였습니다. 태양 주위를 280억km 여행하고 돌아온 해왕성이 지구를 보며 이러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 지난번 이 자리에 왔을 때 본 지구 사람들이 한 사람도 살아 있지 않네….” 우리가 우주를 사색하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티끌 같은 존재인가를 깊이 자각하고, 장구한 시간의 흐름과 무한한 공간의 확대 속에서, 자아의 위치를 찾아내는 분별력과 깨달음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곧 ‘나’를 놓아버리고 ‘나’를 비우는 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