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서는 창과 문의 구별이 없다. 그래서 창문이다. 창문은 안과 밖을 연결한다. 소통의 통로이다. 특히 한옥의 백미는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분합문이든 바라지창이든 광창이든 크고 작은 창문을 통해 세상 밖을 보면 다양한 자연과 인간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문틈 사이로 아기자기한 장독들이 눈에 들어오고, 여름이면 붉은빛을 토해내는 백일홍이 바람에 춤을 추고, 가을이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이, 겨울엔 하얀 눈 세상이 펼쳐진다. 그것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할 만큼이나 아름답다. 사진, 글 이태훈
우리 한옥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풍수를 많이 따르고 있다. 특히 ‘창문(窓門)’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이다. 외국 건축물에서는 창(Window)과 문(Door)은 엄격하게 역할과 기능이 다르며, 명칭도 각각 다른 반면, 우리 한옥에서 창문은 때로는 창이 되고, 문이 되기도 한다. 대개 창은 채광과 공기 순환을 담당하고 문은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우리 한옥의 창문은 서양 건축에서 말하는 창과 문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좌우상하 대칭으로 만들어진 창문들을 밖에서 보면 균제의 미와 절묘한 공간의 분할이라는 선현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대부분 오래된 한옥에는 종손들이 살고 있는 곳이 많다. 그래서 한옥을 촬영하다 보면 종손이나 종부님들과 친해지지 않으면 사진 한 장 찍기가 쉽지 않다. 봄이면 나무를 심어주거나, 가을걷이 때는 호박이나 쌀자루 등을 광으로 날라주기도 한다. 때론 홀로 사시는 종부님과 차 한잔 하며 말벗도 되어준다. 종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되고, 그 집안의 가풍과 역사를 함께 배울 수 있어 좋다.
언제나 자연과 소통하게 할 수 있는 구조가 바로 한옥의 진면목. 덕분에 옛 선비들은 창문을 여는 순간 자연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 사상을 구현하고, 지혜와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창문은 세상의 변화를 깨닫게 하고, 닫히고 열리는 문의 기능처럼 때로는 절제와 때로는 개방으로 사람을 대하게 하고, 편협하지 않고 균형 잡힌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함을 상징했다. 한옥의 창문은 그렇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진리를 이어주는 숨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