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하는 청소년들이 합창을 한다? 국악을 소재로 하면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개봉도 되기 전부터 주목받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 2008년 처음으로 생긴 합창 동아리 ‘두레소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두레소리>다. 국악과 양악이 조화된, 아이들의 목소리가 하나 되어 내는 순수하고 풋풋한 합창, 그 과정 속에 드러나는 아이들의 갈등과 고민, 그리고 성장…. 실제 고수로 활동하며, 많은 국악 공연과 국악인들의 삶을 다큐로 담아왔던 조정래 감독은 늘 국악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한다. 2009년 운명처럼 ‘두레소리’ 합창단과 만났다는 조정래 감독을 만나보았다. 글 최창원 사진 홍성훈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우리의 소리를 배우고자 국악의 미래들이 모여 있는 곳.
하지만 성적, 레슨, 대학 입시 이렇게 세 단어로 규정되는 고3 수험생의 현실은 다른 학교와 다르지 않다. 게다가 “요즘 누가 국악 듣냐? 아이돌 노래 듣지”라는 국악에 대한 자조적인 인식마저 팽배할 때, 고3 여름 방학, 이 학교에 합창단이 만들어진다. 생소할 수밖에 없는 서양 합창의 악보, 하지만 아이들은 국악의 장단을 넣어 부르는 합창에 빠지기 시작하고, 혼자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들은, 함께하는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껴간다. 개성 강한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그들만의 목소리로, 하나 되어 부르는 노래를 듣노라면 관객들 역시 친구, 부모, 선생님과의 갈등, 미래에 대한 고민들도 녹아들어 가는 듯하다.
전문 연기자가 아닌 실제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출연, 저예산 영화의 투박함 속에서도 진정성만은 통한 것일까. 이 영화는 2011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에 초청돼 큰 호평을 받았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이후, 20여 년만에 나온 희귀한 국악 소재 영화” “생얼 미인을 본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국악이 생소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였구나 느끼게 되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나도 꿈을 꾸게 됐다” 등 쏟아지는 호평 속에서 지금 최고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는 조정래 감독이다.
이런 반응 예상 못 하셨을 것 같은데, 이 영화의 어떤 점 때문일까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 처음 내봤는데, 보면서 우시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은 아예 일어나질 못하시는 거예요. 왜 그럴까. 일단 음악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국 극장 개봉까지는 생각도 못 했는데, 정말 감사하죠.
만들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함현상 음악 선생님에게 ‘두레소리’ 1기 아이들의 공연을 영상으로 담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처음 노래를 듣는데 소름이 돋더라고요. 국악아카펠라라고, 국악인들 사이에 그런 작업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부르니까 다르게 다가오는 겁니다. 나중에 함선생님이 “이 아이들 얘기가 영화 같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처음에 합창단 모집 공고를 냈는데 속 좀 썩이는 애들이 온 모양입니다. 그런데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거칠고 결석도 많았던 아이들이 전공 음악에 대한 영감도 얻고, 생활 태도가 바뀌는 모습이 혁명처럼 느껴졌대요. 하지만 처음엔 영화로 찍는 것까지는, 확신이 없었어요. 저는 당시 단편영화로 데뷔를 했고, 다큐멘터리 작업만 해왔기 때문에 겁이 났지요. 일단 애들이 부른 노래 ‘이사 가는 날’을 영상으로 찍어 외국의 UCC 포털 사이트에 올렸는데 그 반응이 놀라웠어요. “이게 어떤 음악이냐?” “너무 좋다” “정말 눈물이 난다” 그렇게 감동하는 걸 보면서 이게 가능성이 있구나, 확신을 가지게 됐어요.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아이들과 촬영하셨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두레소리 1,2,3기의 이야기를 2,3,4기가 연기를 했어요. 더운 날씨에, 몇 번씩 반복해서 찍어야 했기 때문에 강행군이었지요. 힘든 부분은 있었지만, 실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거다 보니 영화 만드는 내내 축제 같았던 것 같아요. 처음엔 아이들과 친해지는 게 중요했어요. 그래서 리허설한다 해놓고 제가 먼저 북을 쳤더니,
애들이 깜짝 놀라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공감대가 형성된 거죠. 대본도 아이들 언어로 많이 바뀌었어요. 아이들이 대본을 보더니 “우린 평소에 이렇게 말 안 해요” 하더라고요. 또 아이들이 전문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단독 샷, 투 샷 빼고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놓고 다큐를 찍듯이 영화를 찍었어요. 애들 쉬고 있는데도 찍고, 리허설한다 하면서도 찍고.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화면이 흔들리거나 안 좋은 것들이 많아요. 그렇지만 오히려 연기가 너무 잘 나온 거, 예쁘게 나온 건 다 버렸어요. 아이들의 리얼한 모습, 이상이 나온 것만 모아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에 담고 싶고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궁극적인 것은 무엇이었나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청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요즘 청소년 하면, 청소년 문제, 비행 청소년, 하면서 인식 자체가 부정적인 게 많잖아요. 그렇지만 아이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우리 어릴 때랑 똑같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은 이 영화를 보고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어른들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알고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대화의 끈을 얻었으면 했습니다. 한편으로 어른들도 자신의 꿈을 되새김질 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영화 속에서 아름이를 키워온 이모가 “내가 왜 이러고 사는데, 너 때문인데…” 하잖아요.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게 살아왔죠. 하지만 이 영화 보면서, 나 이제라도 밸리댄스 배우러 갈래, 하는 이런 작지만 행복한 변화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1992년 중앙대학교 영화학과에 입학한 조정래 감독은, 대학교 1학년 때 캠퍼스에서 우연히 여학생의 판소리를 듣고 국악에 빠져들게 되었다 한다. 그 소리가 정말 ‘살아 있는 소리’로 다가왔던 것. 영화 <서편제>에 감동받아 몇 번이나 보고 또 본 그는 극중 송화(오정해 분)의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속편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으며 민족영화연구회, 국악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이 사회에서 영화학도로서 해야 할 일, 국악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2001년부터는 인간문화재 성우향 명창의 다큐영상을 찍은 것을 계기로, 아예 북과 소리를 배우고 익혔다. 그 이후로는 판소리공장(共場) ‘바닥소리’에서 고수로 활동하며,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와 노숙자, 장애우 등 사회 곳곳에 어려운 이들을 찾아가 위로 공연을 하고 있다. 언제나 사회와 호흡하며, 낮은 바닥에서 삶을 노래하는 사람이길 꿈꾸며.
영화감독으로서의 본업도 잊지 않았다. 국악인들의 삶을 다큐로 제작하고, 국악클레이애니메이션 <청개구리 이야기>를 만드는 등 어떻게 하면 우리 음악과 소리를 대중들에게 많이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2009년 ‘두레소리’와 만났다. 처음에 제작비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찾아가는 제작, 투자 회사마다 시나리오조차 보지 않고 퇴짜를 놓았고, 우여곡절 끝에 대학 선배가 제작비 8,000만 원 전액을 투자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전체 제작 기간 1년 6개월, 촬영 기간 두 달에 걸쳐, <두레소리>가 만들어진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합창 소리가 심금을 울린다고 합니다.
실제 동아리 지도 교사인 함현상 음악감독님이 직접 출연하고 음악도 만들었기 때문에 더 감동적인 거 같아요. 특히 주제곡 <두레소리 이야기>는 두레소리 영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었어요. 전형적인 서양식 합창곡이지만, 초반부의 선율은 중요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의 선율을 차용하였고요. 중반부 이후에 판소리창법에 의한 솔로를 넣어, 새로운 양식의 음악적 효과를 보이고자 했다고 해요. 원래부터 국악은, 예를 들어 판소리는 혁명적인 당시의 이야기들이었거든요. 함현상 선생님이 나중에 꼭 하고 싶은 게, 국악 안에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해요. 학생 주임한테 혼난 이야기, 남자 친구랑 싸운 이야기. 그런 것들이 자꾸 나오면 관객들도 아이들 소리를 듣지 않을까. 애들도 자신들의 전공에 대한 고민도 많았는데, 스스로 우리가 더 좋은 음악을 해야 한다,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두레소리가 6기까지 있는데, 학교의 배려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고요, ‘두레소리’ 말고도 자치 동아리가 여러 개 생겼대요. 이 영화를 통해서 아이들이 또 다른 꿈을 꾸게 된 것이 감사하죠.
이 영화를 통해 감독님 스스로도 어떤 변화를 겪으셨나요?
일적으로는 과거에는 바쁘게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집중하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또 원래 제 꿈이, 되게 역설적이지만 꿈이라는 단어 자체를 잃지 않는 게 꿈이었거든요.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고, 모든 것은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니, 그저 꿈을 잃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사는 게 가장 큰 가치 아닌가. 결혼하고 더욱 그걸 많이 느꼈는데요, 영화를 찍으면서 더 구체적이 된 거 같아요. 동료와 아내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내가 재밌는 거,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어요.(웃음)
“소띠 생이라 그런지 일복도 참 많다”는 그는 <두레소리>를 찍은 후로도 크고 작은 활동을 많이 했다. 2011년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의뢰를 받아 중요무형문화재에 대한 다큐멘터리들을 연출했고, 요즘은 국내 최초의 독립 야구팀 ‘고양원더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한을 국악 등으로 풀어주는 영화, 조선 시대 광대 이야기를 다룬 사극 등도 준비 중이라니, 일복 많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아는 그로서는 참으로 행복한 날들이다.
‘영화감독’과 ‘고수’ 다 떠나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다소 현학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 제가 만났던 사람들한테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헛된 욕망을 꿈꿨죠. 사람을 좋아하고, 많은 만남을 갖다 보니 전화번호부가 엄청났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에게서 다 사랑받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서 망가지기 시작했죠. 나보다는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를 신경 쓰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재작년쯤 갑자기 깨침처럼 마음에 닿는 게 있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 그럼에도 왜 이렇게 눈치를 보면서 아등바등 살아야 할까. 처음에는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중요했었는데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점점 안 중요해졌던 거예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사람들 시선의 노예가 되어버린 나를 되찾고 싶었어요. 그걸 영화를 찍으면서 찾아간 것 같애요.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에 매이기보다는 영화에 미친 듯이 집중했으니까요. 지금은 내 아내가 인정해주고 좋아해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거 같애요.
힘들고 지칠 때 함께 웃으며 어깨를 걸고 서로의 희망을 노래해
너와 내가 우리 모두 어울린 소리가 잃었던 나의 꿈을 샘솟게 하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아파도 우리가 가야 할 이 길을
우리의 노래가 우리의 장단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고
잃었던 우리 꿈을 샘솟게 하네
‘두레소리 이야기’(작사 / 작곡 함현상) 중에서
“앞으로도 언제나 열정적으로, 하나가 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낮은 소리나마 내보고 싶다”는 조정래 감독. 과연 그가 내는 다음의 소리는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의 예상보다 그 모습을 확인할 날이 빨리 올 것 같다. 세상을 향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그의 신념은 확고했고, 그의 갈 길 또한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양악 음악 선생님과 국악고 학생들이 만났을 때 처음엔 어색함과 삐걱거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새 ‘우리가 하나 되는 꿈을 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서로에 대해 조금 더 관심 갖고 조금 더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하나가 되어가지요. 우리 또한 그렇게 세상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