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진정
“내 이야기 속의 세상은 좀 다릅니다. 소리는 침묵으로 변하고, 빛은 어둠으로 변하는 세상. 이게 나의 세상입니다.
아무것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세상. 그 세상에 어울리는 유일한 이름은 ‘블랙’입니다.”- 미셸
2005년 인도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 언론의 극찬을 받았으며, 2009년 뒤늦게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블랙>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암흑천지 ‘black’ 속에서 살아가는 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다. 허리에 종을 매단 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고 있는 8살 미셸 앞에 나타난 사하이 선생. 그는 손가락과 입 모양, 소리의 진동으로 말과 글자를 가르치고, 미셸이 배운 첫 단어는 워터(Water)다. 지식을 배우고 꿈을 갖게 해줌으로써 미셸도 한 사람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준 사하이 선생이 미셸에게 가르치지 않은 유일한 단어는 바로 ‘불가능’. 사하이 선생은 미셸을 처음으로 인간으로 대우해준 빛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사하이 선생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일체의 기억을 잃게 되자, 이번에는 미셸이 그에게 선생님이자 빛이 되어준다.
어둠의 색이라 단정 지었던 ‘블랙’은 눈이 아닌 마음의 색일 뿐이라는 것을, 두 사람의 소통을 통해 깨닫게 해주는 영화. 곳곳에 숨겨진 감동적인 대사는 수많은 이야기를 압도하고 가슴에 남는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도 ‘불가능은 없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어떠한 명문장보다 아름다운 대사들로 만나보는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의 영화 ‘블랙’이다.
“빛이 없으면 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셸을 가르치는 동안 배웠어요. 어둠 속에선 눈도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음은 번개처럼 와요. 초에 불을 켜듯이 일단 불이 붙으면 온 집 안을 빛으로 채우게 되죠. 믿으세요. 그런 기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사하이
“미셸! 이 어둠을 뚫고 지나갈 거야. 네가 살아온 이 어둠을. 그 어둠 속에 남아 있지 마. 빛 속으로 들어와. 빛, 빛 말이야! 알파벳은 원래 a, b, c, d, e 로 시작되지만 너에겐 B.L.A.C.K.로 시작되지. 블랙. 블랙. 네 세상은 달라. 그리고 넌 다르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 넌 내 마지막 희망이야. 미셸.”- 사하이
“난 떠난다, 미셸. 어둠이 필사적으로 널 집어삼키려 할 거야. 하지만 넌 항상 빛을 향해 걸어가야 돼. 희망으로 가득한 네 발걸음이 날 살아 있게 할 거야.”- 사하이
“어릴 적에 전 항상 뭔가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어둠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저를 모르는 사람의 팔에 넘기셨습니다. 그는 세상 누구와도 달랐습니다. 그분은 마술사였습니다. 수년 동안 그분은 나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보면 우린 모두 장님입니다. 여러분 중 누구도 그분을 보거나 듣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전 하나님을 만져봤습니다. 난 그분의 존재를 느꼈습니다. 나는 그분을 ‘티(티쳐)’라고 부릅니다. 제겐 모든 게 검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선 검은색의 새로운 의미를 알려주셨습니다. 검은색은 어둠과 갑갑함뿐이 아닙니다. 그건 성취의 색입니다. 지식의 색입니다.” – 미셸
“오늘 사하이 선생님께서 우리의 첫 단어를 기억해내셨습니다. ‘워터’. 선생님은 다시 한 번 보여주셨어요.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것이 수많은 행복을 준다는 걸 알려주셨어요. 이젠 제가 선생님의 어둠과 싸우겠습니다. 제게 알려주신 모든 것을 선생님께 알려드리겠습니다.”- 미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