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전, 그 누나의 선물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그 누나’ 생각이 납니다.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늘 동상에 걸려 빨갛게 된 내 귀를 보면서, “이 귀마개가 너의 귀를 따뜻하게 해줄 거야” 하고 건네주었던 그 누나의 선물을 28년이 지난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전득렬 42세. 언론사 근무

 

초등학교 3학년, 저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 수업을 마치면 석간신문을 배달했습니다. 요즘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신문 배달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지만 그 시절에는 참으로 흔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최소한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배달하지만 그때는 걸어서 배달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시간도 참 많이 걸렸습니다. 신문 백여 부를 끈으로 묶어 어깨에 메고 걸어 다니며 대문 아래로 신문을 던집니다.

당시는 아파트가 드물었고 일반 주택이 대부분이라 집을 찾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을 구독하는 집 대문에 분필로 별도의 표시를 해두고 배달을 하기도 했습니다. 배달 부수에 따라 금액이 달랐지만 당시 받은 월급은 7천8백여 원. 1980년대 초반 자장면 가격이 3백 원 정도였으니, 지금 물가로 환산한다면 약 7~8만 원 정도의 화폐 가치라 생각됩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더욱 분주해집니다. 지국에서 나눠주는 우의를 입고, 신문이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로 덮거나 감싸는 등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합니다. 평소에는 대문 아래로 던져 넣지만, 비 오는 날이면 초인종을 눌러 주인에게 직접 신문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비 오는 날의 신문 배달은 인정이 넘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우의를 입었지만 비에 흠뻑 젖은 저에게 새 우산을 내주신 아주머니도 있었고, 거금 5천 원을 주시며 학용품을 사 쓰라는 고마운 분도 계셨습니다. 그 고마움은 성인이 된 지금도 그리움으로 정으로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 누나도 매년 이맘때면 꼭 만나보고 싶은 고마운 분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누나의 나이는 당시 20대 초반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대구 동구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위치한 부엌가구 매장에 근무를 했던 누나는 신문을 배달하러 들어서면 항상 웃는 얼굴로 “고생 많다”며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리고는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어린이날, 추석, 설날에도 잊지 않고 선물을 챙겨 주었습니다. 연필 한 다스, 필통, 노트와 짓기장 등 학용품을 선물해 주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이브였습니다. 그 누나는 귀마개와 털장갑을 선물하며 “크리스마스 때 집으로 놀러 오라”고 말했습니다. “누나네 집에서 케이크랑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자”며 30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라고 약도까지 그려 주었습니다. “아파트 OO동 201호로 오면, 문이 열려 있을 거야” 하면서 꼭 오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날, 저는 그 누나가 그려 준 약도를 손에 꼭 쥐고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전혀 타보지 않았던 저로서는 멀리까지 가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종점에서 내려 아파트의 동과 호수를 확인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2층에 올라가니 누나의 말대로 현관문이 반 정도 열려 있었습니다. 아파트 안에서 반가운 누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제대로 찾아왔구나 생각하고 열린 현관문을 통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안에서는 제 또래의 아이들 열 대여섯 명이 음식을 먹으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누나는 나만 초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많은 아이들을 초대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저는 1층으로 다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많은 사람 속을 뚫고 들어갈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다음 날, 신문 배달을 가자, 누나는 “왜, 어제 안 왔었냐”고 물었고, 나는 집에 일이 있어서 못 갔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누나는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며 늘 후원을 하였고, 때로는 아이들을 집에 초대해 함께 밥을 먹으며 남모르게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받았던 따뜻한 정은 평생 간직하는 참 소중한 기억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나 역시 그때 받았던 정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그래서 찬 바람을 맞으며 생활하는 아이들, 방학 때면 공부할 곳조차 없는 아이들처럼, 어렵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지인들과 함께 작은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옥매트 사장님은 따뜻한 매트를 준비하고, 전자제품 업체 사장님은 전기온열기를, 정수기 사장님은 따뜻한 물이 나오는 정수기를 선뜻 내놓았습니다. 꽃집 사장님은 판매 금액의 일부를 적립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요리사이자 한의사인 원장님은 무료 건강 검진과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이 따뜻한 정들이 세상에 뿌려지면 더 많은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에서 살게 되겠지요.

그 누나도 그런 꿈을 꾸었겠지요.

당시 20대 초반이었으니, 그 누나는 벌써 50세가 훨씬 넘은 중년의 아주머니가 되었을 겁니다. 지금도 아이들에게 따스함을 나눠주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그 누나가 보고 싶습니다.

한겨울의 추위를 녹여주었던 그 누나의 따뜻한 선물, 올해도 귀마개를 다시 한 번 꺼내 보며 그 마음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해 봅니다.

전득렬님은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1999년 경북대학교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내일신문 입사, 현재 구미팀 팀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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