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커피는 너무나 친숙한 음료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마실 수 있는. 대부분 커피의 생산지로는 대규모 농장이 있는 브라질과 에티오피아를 떠올린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 중 네팔, 그것도 히말라야 고지대에서 온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마을 주민이라야 열한 가구가 전부인 아스레와 말레(Aslewa Male)마을, ‘좋은 사람들이 여기 정착하다’라는 뜻을 지닌 이 마을 사람들은 커피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말레마을에게 커피가 운명적인 이유는 바로 그늘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 지형인 말레마을에 햇빛이 드는 시간은 겨우 하루에 두어 시간. 햇빛이 충분치 않아 옥수수, 밀 같은 농작물은 내다 팔 만큼의 수확량을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자연환경은 뜻밖의 반전을 가져왔다. ‘천연 그늘’이야말로 강한 햇빛과 열에 약한 커피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던 것이다.
옥수수 농사나 염소를 키워 그저 한 해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커피는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이들은 정성스레 커피나무를 키운다. 커피 열매가 열리면 저 멀리 외지로 돈을 벌러 간 아빠가, 형이 돌아올 수 있고,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소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충분치 않더라도 같이 웃으며 살 수 있는 가족
더 이상의 이별이 없는 가족
부모는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응석을 부리는 그런 가족
그런 가족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요.
가족 모두가 다시 모일 그날까지….
말레마을 사람들은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게 몸에 밴 듯했다. 그것은 커피뿐만 아니라 다른 작물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교통이 불편해서 산골 마을까지 화학 농약을 사오는 것도 어렵고 농약을 사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그보다는 깨끗한 커피, 건강한 커피를 키워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유기농법이야말로 자연이 허락한 농사 방법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한 번도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먹는 건지를 모르는 것이다. 2010년 그들은 제작진으로부터 처음 커피 마시는 방법을 배운다. 프라이팬에 원두를 볶고, 돌절구에 갈아내고…. 그렇게 커피 농부들을 위한 최초의 커피 시음회가 열렸다. 조심스레 커피를 마신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쓰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그윽한 향기에 매료되고, 기품 있는 커피 고유의 맛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지은 커피의 맛이 이런 것이구나…. 사람들에게 그 맛을 전하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힘을 합쳐 수확한 커피를 메고 길을 떠난다. 히말라야의 만년설로 키운 커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자란 커피, 아이들의 꿈이 되고 엄마 아빠의 희망이 되고, 마을의 미래가 되는 커피…. 착한 농부들의 착한 커피가 지나는 길, 커피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