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택 35세. 중도일보 기자
쉬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높은 곳만 바라보며 달려왔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라 저렇다, 이런 소린 절대 듣지 말아라!”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입니다. 그 말들은 열등감과 욕심의 뿌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강하게, 더욱 강하게, 나를 담금질하며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약해 보이면 안 되기에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무엇이든지 잘할 것 같은 사람이 되어갔지만 남는 건 ‘지독한 외로움’뿐이었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쌓여온 열등감은 자만심과 오만함, 독선의 탈을 쓰고 나를 뒤덮기 시작했고, 친구들조차 내 곁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를 하고 있어도 허무하고 공허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웃지 못하지?’ 탁 트인 하늘, 멀리 보이는 산자락, 솔 향을 맑게 풍기는 소나무들….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즈음 누나가 마음수련을 이야기했습니다.
언제나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내 모습. ‘욕심’ 때문에 스스로 괴롭혀왔던 내 삶을 돌아봤습니다. 굳이 가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채워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을 배우며, 철옹성 같은 나의 벽들도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몸과 마음이 쉴 수 있었던 시간, 처음으로 가졌던 그 휴식은, 나에게 커다란 변화를 주었습니다.
시무룩하거나, 굳어 있거나, 혹은 비판하고 있던 내가, ‘분위기 메이커’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발굴해야 하고, 마감시간에 맞춰야 하는 기자생활.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일주일간의 마음 비우기는, 진짜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너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배우고 싶다” 는 동료들. 결국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얻음과 높음’이 아니라 ‘버림과 낮음’이었던 겁니다. 자신을 버릴 줄 알고, 낮은 곳에 설 줄 알 때, 세상은 저절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가파른 인생길에서 한 번쯤 쉬어가기 그리고 비워보기, 그 진정한 휴식은 우리 삶을 새롭게 바꿔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