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분이라는 무시무시한(?)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대해서는 할 말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이 상황에 딱 어울리는 말일 듯싶네요. 최근 본 영화들 중에, 혹은 이제껏 본 영화들 중에,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이렇게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스토리는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여타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며 이제까지의 영화들이 감히 가질 수 없었던 매력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손에 넣은 영화라고 할까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줄거리는 간단히 정리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윤회 사상을 기반으로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특정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과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어내면서 윤회 사상은 물론 카르마(업보)나 ‘만물은 연결되어 있다’ ‘모든 생명은 다 똑같은 생명이다’ 등 서양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동양의 사상들이 영화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어 우리가 죽고 난 후에도 계속된다’라는 말이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중심이자 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시대를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연기한 탓에 주연 배우들은 모두 1인 다역을 했습니다. 짐 스터게스는 1인 7역, 톰 행크스, 휴고 위빙, 할리 베리, 배두나(복제인간 포함), 휴 그랜트는 1인 6역, 벤 위쇼, 짐 브로드벤트는 1인 5역, 키스 데이빗, 제임스 다시, 저우쉰, 수잔 서랜든은 1인 4역, 데이빗 기아시는 1인 3역을 연기했죠. 이는 조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는 모두의 일생은 물론 전생과 후생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었겠지요.
1인 다역은 혼신의(?) 분장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백미 중 하나가 각 장면에서 누가 누구로 분장했는지 눈치채는 것이죠. 이 분장이라는 것이 나이, 성별, 인종을 초월하기에 눈치채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각 배우들이 맡았던 배역들의 얼굴이 차례대로 지나가는 보너스 영상이 나오는데, 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면서 다 알아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영상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죠.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습니다.
한쪽 삶에서 비극적으로 헤어지거나 사별한 연인들, 혹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꿈꿨던 사람들, 자유와 존재에 대한 사상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다른 삶에서 어떻게 만나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초점을 두어 영화를 감상하고 곱씹어보는 맛, 정말 최고입니다.
또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치고 <클라우드 아틀라스>만큼 우리나라와 관련된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물론 여기엔 배두나씨의 영향력이 컸겠지만 말입니다. 일단 옴니버스 구성 이야기들 중 하나가 미래의 서울에서 진행되는 것부터가 그렇습니다. 사방에 한글이고 사방에서 한국어가 들리는데, 묘한 짜릿함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윤회 덕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등장인물들의 또 다른 새로운 삶에 대한 나름의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것도 매력입니다. 영화는 끝났지만 등장인물들의 운명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비록 이번 삶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에겐 ‘영원’이 있습니다. 우주와 호흡하는 영원의 시각에서 볼 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