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야기1 부차트 가든 정원사의 일상
부차트 가든에서는 보통 아침 6시에 일을 시작한다. 나는 어느 정원사보다 먼저 나와 정원으로 통하는 문을 연다. 그 문을 열고 바라보는 새벽의 정원이야말로 나를 가장 편안하고 상쾌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공원과 비슷한 7만 평 정도의 부지에 들어선 캐나다의 부차트 가든에는 정원사만 60여 명이다. 한 해 100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 명소인 이곳은, 석회암 채굴장을 일구어 만든 곳이다. 100년의 세월 동안, 수백 명의 정원사들이 대를 이어가며 땅을 갈고, 꽃의 씨를 뿌리고 보살펴, 세상의 거의 모든 꽃들이 만개한 환상적이고도 광활한 정원으로 가꾸어온 것이다.
일년 내내 문이 열리는 이 정원은 계절마다 변신을 거듭한다. 장미, 베고니아, 달리아 같은 화려한 여름 꽃이 지고 겨울 채비를 하기 전까지 한두 달 동안의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꽃 중 하나가 국화다. 이 국화는 다른 꽃들이 여름 잔치의 주인공 자리를 다투며 뽐내는 동안, 정원 한쪽에서 묵묵히 뿌리를 뻗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 주인공들이 하나 둘 무대에서 내려올 즈음, 종묘장에서 화단으로 성큼성큼 나온다. 그러고 나선 계절의 마지막까지, 그렇게 모두가 떠난 무대 위를 지켜낸다. 시샘이나 다툼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군자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나 싶다.
꽃들에게 계절의 변화는 인간의 운명과도 같다. 자신의 몸속에서 꿈틀대는 생명의 기운을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봄, 태양과 마주하며 쑥쑥 커야 하는 여름, 군식구를 떨어내며 긴 겨울잠을 준비해야 하는 가을, 눈보라를 피해 꼭꼭 숨어야 하는 겨울. 각 꽃들의 특징에 맞게 씨를 뿌리고, 꽃을 심고, 비료를 주고…. 꽃들이 숙명처럼 순환하는 계절에 순응하며 가장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도와주는 것이 정원사의 일이다.
꽃 이야기2 히말라야 수도승 같은 꽃 ‘블루포피’가 전하는 말
이곳에서 정원사 생활을 한 지 5년째다. 사십 대의 평범한 가장이자 샐러리맨이었던 내가, 가족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 섬의 도시 빅토리아에 온 때가 2007년 가을이다. 마흔의 나이를 맞으면서 내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빽빽한 생활, 권위주의적인 문화…. 언제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처럼 답답했다. 나에겐 변화가 절실했고, 그렇게 짐을 쌌다. 내 스스로가 억압된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리고 우연처럼, 필연처럼 이 아름다운 정원의 첫 한국인 정원사가 됐다.
처음엔 그저 땅을 일구고 잡초를 뽑고 퇴비를 나르는 단순 작업이 반복됐다. 특히 첫해는 영문으로 된 꽃과 나무 이름을 외우기 위해 사투를 벌이다 지나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틈만 나면 꽃과 나무의 이름을 외워댔다. 꽃 안내 책자를 하루에도 몇 번씩 꺼내보며 읽고 또 읽었다. 덕분에 점차 관광객이 무슨 꽃이나 나무를 물어오든 대부분 자신 있게 대답해 줄 정도가 됐다. 그렇게 두어 해가 지나면서, 가지치기나 나무를 옮겨 심거나 새로 심을 나무를 고르는 일 등도 하나씩 배울 수 있었다. 정말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이곳에서 일하며 꽃과 나무들을 새롭게 만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던 꽃은 부차트 가든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블루포피였다. 히말라야에서 자생하던 블루포피가 대륙을 건너 영국에서 싹을 틔운 것이 1925년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 작은 씨앗은 대서양을 건너 이곳으로 왔다. 이 꽃을 볼 때면, 티베트의 한 고찰에서 정진 중인 라마승을 뵙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어디에 뿌리를 내리든, 그 고고한 자태를 잃지 않던 블루포피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였다.
“너도 동양의 한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태평양을 건너 이곳에 왔잖아. 나처럼 너도 항상 좋은 기품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았으면 해.”
꽃 이야기3 국화 같은 장모님, 수국 같은 나의 어머니
서로 다른 느낌의 꽃과 나무를 볼 때마다 그들과 닮은 고향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국화꽃처럼 품성이 고우신 장모님, 울타리 나무처럼 든든한 바람막이가 돼주신 장인어른, 수국의 꽃처럼 토양에 따라 그 색깔이 다양하게 변하는 나의 어머니, 내 동무들을 닮은 백합…. 특히 달리아 화단에 설 때면 할머니를 떠올린다. 달리아꽃은 자연이 부리는 조화의 극치라 해도 설명이 모자랄 정도로 화려한 꽃이다. 사실, 연꽃 모양으로 피어난 달리아를 처음 본 순간, 어렸을 적 할머니의 상여에 장식됐던 상여꽃을 기억해냈다. 그 곱고 화려한 빛깔의 꽃들을 만지작거리면서, 할머니를 영영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슬픔보다는, 편하고 아름답게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할머니께서는, 내 삶의 금과옥조가 될 만한 얘기를 더러 해주셨다. 그중 하나가 “사내자식은 도둑질 빼곤 다 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새로운 일을 앞에 두고 주저하는 나에게 대뜸 하셨던 얘기였다. 그 말씀처럼 한곳에 안주하기보다는 많은 변화를 꿈꾸고, 시도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꽃 이야기4 아름다운 조연, 데이지를 닮은 삶
이른 봄, 부차트 가든은 예쁜 단추같이 생긴 데이지 꽃의 세상이 된다. 그리고 날이 풀려 여기저기서 튤립과 수선화가 싹을 틔우고 곧이어 화려한 꽃들을 피워내기 시작하면, 데이지는 화단의 주인공 자리를 이들에게 양보한다. 이즈음 정원을 찾는 모든 방문객들이 쏟아내는 탄성과 환호는 온전히 튤립과 수선화의 몫이다. 시샘도 할 법하건만, 데이지들은 마치 이 주인공들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듯, 묵묵히 꽃을 피워낸다.
겨우내 땅속에 심긴 알뿌리들을 품고 지내는 인내심, 튤립과 수선화에게 봄의 주인공 자리를 내주는 미덕. 내 또래의 친구들은 어느새 데이지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든, 우리 모두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모두가 훌륭한 주연이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매 순간이 숙명처럼 다가왔던 삶이었다. 나는 어떤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종류의 울타리로 살아갈 수 있을까. 가시가 뾰족한 탱자나무보다는 넉넉한 측백이나, 서걱대는 잎사귀 소리로 더위를 식혀주는 대나무이고 싶다. 자식들에게도, 내 주변에 바람막이가 필요한 그 누구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