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안 보이는 게 보여. 많이 알면 좋은 거 같지만 그럴 때는 겁쟁이가 돼서 아무것도 못해. 딱 한 번이야. 인생에서.” 영화 <늑대소년>(2012)의 주인공 순이가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손녀에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웃음을 잃고 더 계산적이고 딱딱해지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마냥 부러워지지요. 어린아이의 웃음처럼 화창한 봄날, 천진한 아이들의 지혜를 배워봅니다. – 편집자 주
모든 아이는 예술가이다.
어린이를 내 아들놈, 내 딸년 하고 자기 물건같이 알지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한다.
조그마한 어린이처럼 진실 앞에 앉아라. 그리고는 기존의 관념을 모두 던져버릴 준비를 하라.
순진함과 모든 완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어린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세상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으로 변했을까.
물오리가 날 적부터 헤엄을 치듯 어린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천성을 지니고 있다. 어린이들을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물오리가 헤엄치는 것을 막는 것과 같다. 어린이들의 천성을 돕는 것이 교육이다.
아빠와 단둘이 떠나는 1박 2일의 여행
MBC 일밤 ‘아빠! 어디 가?’에서 건져 올린 동심들
“저는 마술로 민국이 형 집을 훨씬 더 크게 했으면 좋겠어요.”(5회)
“하나님 비 안 오게 해주면 안 돼요? 그러면 이 감자를 던져서 하느님한테 줄게요. 제발 제발 제발.”(8회)
“아빠! 우리 얘기 좀 하자. 지금은 대화할 시간. 오늘 기분 어땠는지 그 대화를 해보자.”(9회)
“왜 맛있는지 알아 나는? 아빠가 주니까. 아빠가 주는 건 다 훨~씬 맛있어.”(10회)
“힘들면 쉬다 가고 쉬다 가고 하면 되잖아.”(16회)
“준비가 다 되었으면 그냥 아무 바람 없이 기다려”(17회)
자신을 때린 친구도 포용하는 열 살 딸아이에게 배우는 용서
학교에 다녀온 딸아이의 얼굴이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우격다짐으로 아이에게 들은 ‘사건’의 자초지종은 대략 이러했다. 영어 수업 시간에 반 친구들끼리 율동을 하는데, 딸아이가 한 남자아이에게 “너는 정말 율동을 잘한다. 와~” 감탄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아이가 딸아이의 뺨을 때린 것이다. 놀란 선생님이 이유를 물으니 “야! 너는 그것밖에 못해? 진짜 웃긴다야~” 하며 놀렸기 때문에 때렸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반 아이들이 보고 있었기에, 그 아이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고, 담임 선생님은 친구의 뺨을 때리고도 거짓말한 것에 대해 몹시 화가 나 아이를 꾸중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딸아이는 “선생님, 제 잘못도 있어요. 저는 칭찬이라고 한 말에 친구는 자기를 놀리는 말로 오해를 했으니까요”라며 친구를 감싸주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아이는 전혀 반성하는 기색이라고는 없어 선생님도 아이들도 다 당혹스러워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금쪽같은 딸’의 뺨을 때린 ‘놈’을 가만 안 두겠다며 화를 냈고, 이를 본 딸아이는 나에게 불만스럽게 말을 했다. “아빠한테까지 말한 거예요? 엄마, 안 된다고요. 그 친구, 선생님께 정말 많이 혼났어요. 정말로 그 친구 엄마에게는 얘기하면 안 되는 거 알죠? 그 친구도 반성하고 있을 테니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요. 1학년 때 ○○도 기억나죠? 엄마와 내가 그 친구에게 기회를 줘서 그 친구는 완전 착한 애가 되었다니까요.”
하지만 그날 하루 종일 어찌나 속상하던지 나는 결국 딸아이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그렇게 묵묵히 엄마를 받아주던 아이는 잠자기 전, 나를 꼭 안으며 말한다. “엄마, 미안해요. 마음 풀고 잘 자요. 그리고 많이 사랑해. 하늘만큼.”
부끄러워진다. 열 살 딸아이에게 배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는’ 마음이고,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사랑이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서라는 것을.
아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는다. 이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려는 호기심 어린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점점 실패를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에게 어리석게 보이거나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사소한 삶의 비애와 좌절은 바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우리의 능력을 좀먹는다.
어린아이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 전 새로 구입한, 앞이 막혀 있는 욕실 슬리퍼 때문에 아내와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물에 젖은 슬리퍼를 세워두지 않고, 무심결에 그냥 나와 버리는 아내의 습관 때문이었다. 무심코 물이 고인 슬리퍼를 신는 느낌이란. 이러기를 수차례, 며칠 전엔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슬리퍼 좀 세워두라 했잖아~!” 부부 싸움 일보 직전까지 가기 전, 마침 옆에서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초등생 딸애의 한마디.
“아빠~! 그만 싸우고, 슬리퍼 바닥을 뚫어~!”
생각해보니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다. 바닥을 뚫으면 슬리퍼에 물이 고이지 않고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지난 뒤 슬리퍼 바닥을 새끼손가락 정도의 홈을 내어 잘라내었다. 그 이후로는 신기할 정도로 물이 잘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본 딸아이가 한마디 한다.
“아빠, 이젠 물 안 고이지? 그니깐 이젠 아무것도 아닌 것 갖고 싸우지 마~! 알았지?” 어린아이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세상에는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될 일이 참 많을 것이다.
“제 소원은 산타할아버지를 안아주는 거예요”
나를 부끄럽게 만든 딸아이의 대답
나는 교회의 목사로서 늘 설교에 대한 부담이 있다. 한번은 아이디어가 궁핍해 그냥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만 네 살의 막내에게 물어보았다. “예진아, 아빠가 설교해야 되는데, 어떤 내용을 할까?” 그런데 뜻밖에도 딸 예진이의 반응이 즉각적이었고, 구체적이었다. 물론 처음 해준 말은 내가 찾는 대답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서로 인형을 만들어주라고 해.”
그래서 질문을 약간 바꾸어 “그런데 있잖아, 아빠는 설교를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한테 해야 되거든. 그것 말고, 또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러자 이 아이가 연달아 말해준 내용이 그럴듯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해.” “서로 책을 읽어주라고 해.” “서로 가진 것을 나누라고 해.” “서로 선물을 주라고 해.” 결국 나는 막내의 도움으로 한 편의 설교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한번은 우리 큰아이에게 물었다. “혜진아, 이번 크리스마스 때 산타할아버지한테 제일로 받고 싶은 선물이 뭐야?” 그때 내가 들은 의외의 대답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산타할아버지를 꼬~옥 안아주고 싶어. 나는 산타할아버지를 안아주는 게 소원이야.”
성경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자기 것을 나눌 때 하늘이 기뻐하고,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에게 배울 수만 있다면, 날마다 목격할 수 있는 크고 작은 기적들이 얼마나 많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