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달을 포함한 우주를 바라볼 때면 가슴마저 탁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늘을 바라본다는 건 무언가를 관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천문학의 대중화에 힘써온 분이 있습니다. 바로 천문학자 박석재(57) 박사입니다. 누구보다 별과 우주를 사랑했던 우리 민족이었지만, 언제부턴가 하늘 보기를 잊은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무척 안타까웠던 그는 누구나 쉽게 별을 볼 수 있는 천문대 건립에 앞장서게 됩니다. 그의 노력 덕분에 2001년 대전시민천문대를 시작으로 전국에 수십 군데의 시민천문대가 생겼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별을 관측하게 됩니다. 박석재 박사가 들려주는 별과 우주 이야기입니다. – 편집자 주
어린 시절엔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는 게 제일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잡다 보면 밤이 되고, 물질하다가 허리가 아파서 일어서면 하늘 가득히 여름철 은하수가 보였죠. 마치 아이맥스 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별이 너무 좋아 천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의외의 어려움도 많았어요. 전공한 교수님이 없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거의 독파하다시피 공부해야 했고, 비인기학과로서의 서러움도 많았죠. 천문학을 공부하는 환경이 워낙 척박해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으로 만들 수 있을까 했던 게 당시 저의 고민이었어요. 어릴 때를 돌아봐도 주위에 천체망원경도 없었고, 재미있는 천문학 책도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천체망원경을 보여주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고향이자 근무지인 대전에 시민천문대를 건립하는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우리나라에는 보현산천문대, 소백산천문대가 있었지만 천문학자들의 연구 목적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학생과 일반인들은 볼 수가 없었거든요. 그야말로 별 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거였죠. 반면 일본의 경우 시민천문대가 공사립 합쳐 300개가 넘어요.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평생 망원경으로 달 한 번 보지 못합니다. 망원경을 통해 보는 달이나 금성의 모습은 정말 신비로운데도 말이죠.
천문학자로서 저의 소원은 달빛에 사람 그림자가 생긴다는 사실도 모르고 자란 요즘 아이들에게 별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시민천문대 건립이었죠. 하지만 시민천문대가 무얼 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는 상황에서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01년 대전시민천문대가 처음 문을 열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계기가 돼서 이후에도 시민천문대가 여기저기 만들어지게 됩니다.
사실 천문학은 우리 실생활과도 아주 밀접합니다. 일·월식과 같은 천문 현상이나 일몰시간에 대한 정확한 예보, 해가 바뀔 때마다 달력을 만드는 것도 천문학과 관련이 깊습니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나라가 융성할 때는 반드시 천문학이 발전한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천문학 선진국이었습니다. 우리 조상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어요. 고구려 때 우리 민족은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 즉 천손(天孫)이라 불렀고, 수천 년 된 고인돌에도 북두칠성을 새길 정도로 별을 숭상했습니다. 또한 12층 365개의 돌로 만들어진 첨성대나 천상열차분야지도 같은 문화재들도 이를 뒷받침해줍니다. 특히 조선 태조 4년(1395)에 만든 <천상분야열차지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밤하늘의 모든 별을 돌에 새겨 만든 하늘의 지도인 셈이죠. 원본은 고구려 성좌도의 탁본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의 순우천문도보다 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걸 추측할 수 있으며, 중국의 천문도와는 달리 1,460여 개의 별을 그 밝기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새긴 아주 과학적인 천문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우주의 원리가 담긴 태극기, ‘하늘이 열린다’는 뜻을 가진 개천절이란 공휴일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렇듯 우리는 우주와 하늘을 숭상하면서, 하늘의 이치에 따라 살고자 했던 민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모두 별을 잊고 사는 게 저는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별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물체를 보는 게 아니라, 함께 꿈을 이야기하게 되고 우주를 이야기하게 되는 거거든요.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많이 있다는 걸 알고 자란 아이하고, 별을 모르고 자란 아이하고는 결코 같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우주를 알고 자란 아이들은, 영화를 만들더라도 한국판 스타워즈를 만들 것이고, 시를 쓰더라도 깊이가 다르고, 사람과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도 훨씬 클 거라고 믿습니다.
불과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우주를 태양계보다 조금 더 큰 정도로 인식했어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망원경으로 100억 광년 떨어진 천체를 볼 수 있습니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니까 100억 광년은 그야말로 굉장히 먼 거리죠. 100억 광년의 우주를 지구만큼 축소한다고 가정할 때, 지구는 놀랍게도 원자보다도 작아집니다. 현미경으로도 안 보이죠. 원자보다도 작은 지구에 살면서 지구만 한 크기의 우주를 천문학자들이 관측하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광활한 우주를 깨우칠 때마다 정말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람이 있다면 세계인들로부터 ‘한국 사람들은 참 별을 좋아한다’ 말을 듣는 것입니다. 이 여름밤, 하늘을 보며 견우성 직녀성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달을 보며 방아를 찧는 토끼를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혹시 아나요? 유난히 어떤 별 하나가 너무 좋아질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