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태 50세.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 관장,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래머
지난 2005년, 나는 6박 7일 죽음의 레이스라 불리는 250km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도전했다. 23개 나라에서 온 107명의 레이서들과 함께였다. 배낭의 무게는 18.5kg. 이 안에는 의류, 침낭, 의약품 외에도 6박 7일 동안 내가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식량이 들어 있다. 나는 자청해서 나의 레이스 파트너가 되어준 김인백씨의 배낭과 연결된 1m의 생명줄을 잡고 첫발을 내디뎠다.
58℃를 웃도는 살인적인 더위, 딱딱한 지표면을 지나면 모래구릉으로 이어지고, 모래구릉을 넘어서면 곧 가시덤불 길을 지나고, 뾰족한 돌들을 딛고 넘어야 했다.
앞으로 나아간 만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발톱이 빠졌다.
상처 입은 발에서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스물두 살의 불행을 떠올렸다. 굉음, 섬광…. 내게서 빛을 앗아가 버린 그때의 절망에 비하면 지금 내게는 한 걸음 한 걸음의 고통 끝에 희망이 있지 않은가.
1982년 7월 20일, 군인이 된 지 한 달째였다. 집중호우로 인해 부대의 심장과 같은 탄약고에 물이 찼고, 여덟 명의 전우들과 함께 빗물에 젖은 탄약들을 정리했다. 탄약들을 조심스레 옮기던 순간, 탄약고 한쪽에서 섬광과 굉음이 동시에 일었다. 찰나의 순간, 뜨겁고 예리한 쇠꼬챙이가 내 두 눈을 찌르는 심한 통증을 느꼈다. 빛과 영원히 결별하는 순간이었다.
여섯 달 동안 치료를 받은 후 제대를 했다. 이웃집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면서 ‘평생을 해주는 밥이나 먹고 방 안에 갇혀 살아야 할 팔자구나’라고 했다. 마음마저 캄캄해졌다. 너무 고통스러워 여러 차례 죽음에 이르는 길을 찾기도 했다. 이러한 내게 정신의 나래를 펼 수 있게 해준 사람이 죽마고우 최낙관이었다.
"넌 지금 알 속에서 부화를 앞둔 새와 같은 존재야. 스스로 껍데기를 깨고 나와야지, 그 누구도 밖에서 껍데기를 깨어주지 않아."
그렇다! 지금 나를 에워싸고 있는 어둠을 그 누구도 걷어줄 수는 없는 일. 어둠을 헤치고 나올 수 있는 힘은 오직 내게만 있는 것이다. 나는 ‘자살’에서 ‘살자’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사하라는 가혹하면서도 잔인한 땅이다. 작렬하는 태양, 일렁이는 염열, 숨 막히게 하는 복사열. 해가 뜨면 금세 더워졌다가 해가 지면 금세 기온이 뚝 떨어진다. 모래폭풍의 공격이 시작될 때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일정한 방향도 없이 휘몰아치는 기류를 따라 집요하면서도 잔인하게 공격을 계속했다. 입안에서 모래가 서걱거렸다. 옷 사이로 침투해 들어온 모래가 땀과 엉켜 살갗을 아프게 갉아대었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질식할 것만 같은 호흡 장애였다. 눈, 코, 입 어디 할 것 없이 모래 입자들이 집요하게 공격해 들어왔다.
모래 산을 넘어야 할 때는 과연 내가 이 모래 산을 넘을 수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면 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실명 이후 가장 힘들었던 분기점이 볼 수 없는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걸 현실로 받아들이고 나서부터 마음의 눈이 조금씩 뜨이기 시작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의 풍경을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터득한 게 있다면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암흑이 처음에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 그 암흑이 한계가 없는 무한으로 느껴졌다.
그 이후 나는 도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5km 단축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다. 그러자 10km, 20km도 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자신감으로 석 달에 걸쳐 미 대륙 횡단을 했고, 백두산과 한라산 등반을 했다. 캐나다의 로키산맥 스쿼미시 치프봉 거벽 등반, 목포에서 임진각까지 518km 국토 도보 종단도 했다. 점차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사하라 레이스에 참가하겠다고 했을 때 열이면 열 사람 모두 반대를 했다. 내가 앞을 볼 수 없다는 그 사실 하나가 반대를 하는 사람들의 보편의 잣대이자 기준이었다. 그러나 보편의 잣대나 기준에 맞추어서 산다면 그 보편이라는 안이함 너머에 있는, 새롭고 값진 삶의 의미와 가치를 모르는 무미건조한 삶에 불과할 것이다.
사막을 꼭 달려야 할 절대적인 이유는 없다. 하지만 사막을 달리며 나 자신에 대해 묻는 것이다. 자연이 내게 주는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느냐고 나에게 묻는 것이다.
사막의 모든 게 장애인인 나에게 장애였다. 사막뿐이겠는가. 장애라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 장애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체력과 정신의 최대치를 발휘하며 달리고 있었지만, 결국 레이스를 중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힘겨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의 고비를 한 번씩 넘기고 나면 이상하리만치 몸이 가볍고 정신이 명료해졌다. 극한의 사막의 상황이 내 몸을 정화시키는 것 같았다.
나는 엿새 동안 사막의 힘을 온몸으로 느꼈다. 사막을 달리겠다고 온 자신감이 오만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자 한없이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겸허해지지 않고는 단 한 시간도 사막을 달릴 수가 없었다. 겸허에서 우러나온 힘은 자연의 여건에 적응하는 물과 같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실명 이후 내가 살아온 길도 물의 흐름 같은 삶이었다. 내 몸의 장애는 물론 한 걸음 움직이는 데도 장애물이 있었다. 장애물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돌고 또 돌아야 했다. 그것이 바로 겸허의 힘이었다. 생명의 본질은 물처럼 순리대로 사는 것. 사막은 내게 겸허의 소중함을 새롭게 일깨워주었다. 내가 빛을 잃은 이후 더 밝은 빛을 찾았다는 걸 사막의 신비와 경이로움이 일깨워주었다.
"송경태, 당신은 위대한 레이서다"라는 함성과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렸다.
사하라 사막 250km의 레이스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