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한테는 항상 존댓말을 써야 했다. 그러다가 좀 편해진다 싶으면 나도 모르게 말을 놓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갑자기 남편은 하던 말을 멈췄다. 순간 침묵이 흘렀다. 대화가 끊긴 게 감지되면 ‘아, 내가 존댓말을 안 했구나’를 알 수 있었다. 남편과 편안한 대화가 어렵다 보니 부부 사이는 편치 않았고, 마음의 벽은 쌓여만 갔다.
송영선. 서울시 구로구
한번은 하도 답답해서 왜 꼭 존댓말을 써야 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남편은 신입 사원 때 상사 댁에 갔다가 그 부인과 차를 마시게 되었다 한다. 그때 부인이 상사한테 반말하는 게 보기가 좋지 않았다면서, 남편한테는 꼭 존댓말을 써야 된다고 생각했다 한다.
남편은 집안일에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혼 후 첫아이를 낳을 때였다. 삼칠일 동안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다가 집에 갔는데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오기 전날 분명 남편한데 청소를 해달라고 부탁했는데도 소용없었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 그동안 보지 않은 신문지도 그대로 쌓여 있었다. 그걸 본 뒤로 나는 남편이 집안일을 돕는 것에 대해선 아예 포기하고 살았다.
남편과 시댁에 가는 일도 큰 스트레스였다. 시댁에서 돌아오면 남편은 시댁에서 한 말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당신은 어머니에게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 돼!” 말만 하면 꼬투리가 잡힌다 싶어 말을 할 땐 남편이 트집 잡을까봐 마음이 항상 불편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마음수련 명상을 시작했다.
3년 전부터인가 남편과 대화를 하는 게 점차 편안하다고 느껴졌다. 대화가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속으론 ‘이상하네. 이 사람이 왜 꼬투리를 안 잡을까’ 생각했다. 처음엔 잠깐이려니 했지만 그 후에도 편안한 모습 그대로였다.
남편의 존댓말 시비가 없어지면서 나도 점차 남편에 대한 시비가 없어졌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집에 오면 겉옷을 벗자마자 청소부터 한다. 매끌매끌한 바닥이 좋아 발을 동동 구를 때면 남편도 “우리 아내가 나이 들어도 귀엽다”면서 좋아한다. 집안 정리 정돈에다 청소는 물론 설거지까지, 남편은 그야말로 완전히 바뀌었다.
또한 남편은 언제부턴가 계속 칭찬을 해주었다. 뭐를 하든 “참 잘했어” “당신 전보다 어머니 뜻을 잘 받들어주네” 하면서 그냥 속으로 지나칠 수 있는 말들도 딱 집어서 얘기해 주었다. 남편이 칭찬을 해주니 나도 남편의 단점보다 장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남편과의 대화가 즐거워졌다.
차츰 물들어가듯이 남편의 변화에 나도 마음이 편해지고 좋아지면서 작년부터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20년 동안 운영한 가게를 그만두었을 때 남편은 한 달 동안 쉴 겸 해서 마음수련 메인센터에 다녀오라고 권유했다. 오랫동안 집을 비워도 남편이 잘할 거란 믿음 덕분에 갈 수 있었다. 살아온 삶을 버리자 진짜 버려지는 게 신기했다. 남편이 왜 그렇게 바뀌었나 했더니 삶의 ‘마음사진’을 버린 데 그 비결이 있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먼저 장점이 보이고 또 감사한 생각이 든다.
아이들도 아빠를 아주 편안해한다. 전엔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아빠여서 아이들도 꼭 존댓말을 해야 했고, 아빠와의 대화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아빠가 명상을 하면서 격이 없어지니까 아이들도 편하게 얘기한다. 그런 아빠의 모습을 아들들도 점점 본받는 것 같다. 아빠가 하듯이 엄마한테 안부 전화도 잘하고, 배려도 해준다. 또한 식사하다가 물컵이 쏟아지거나 음식을 떨어뜨리며 실수를 하면 전엔 “너 그럴 줄 알았어” 하며 힐책을 했었지만 이젠 서로 먼저 일어나 걸레를 가져와 닦는다.
요즘은 자기 전에 늘 남편이 나의 손등에 잘 자라며 입을 맞춰준다. 가끔 손을 보면 다정다감해진 남편 생각이 나서 웃기도 한다. 명상 전과 후의 남편의 모습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남편 따라 명상을 한 가족 모두가 이젠 그 차이를 체감한다. 좁은 마음세계를 벗어나 마음 편하게 지내는 진짜 행복을 실감하고 있다.
2010. 7. July 월간마음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