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사진 문진정
충북 음성의 한적한 농촌 마을에 유난히 강아지 소리로 시끌벅적한 집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푸른 눈의 스위스 할머니 마가렛 닝겟토(67)씨가 살고 있습니다. 30여 년 전 홀로 한국으로 와 보육원, 고아원 등에서 봉사하며 평생을 보낸 그녀는 영락없는 푸근한 시골 할머니입니다. 그녀의 한국 이름은 인진주.
스위스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 환경 때문에 어릴 적부터 청소, 요리, 탁아소 일을 했던 그녀는 1970년대 간호사가 되었고 당시 유럽으로 간 한국의 간호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인연으로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서 한국인들의 삶에 크게 감동을 받게 되지요.
“단칸방에 살아도 이웃과 밥 한 숟가락도 꼭 나눠 먹던 모습에 마음이 찡했어요. 어딜 가나 서로 아껴주고 내 것 네 것 구분이 없고…. 어떤 부자보다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1985년, 그녀는 한국행을 결심했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보육원, 장애인 시설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1993년부터는 전 세계 어린이들을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입이라고는 스위스에서 보내오는 80만 원 남짓한 연금이 전부였지만 그 돈을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은 그녀에게 큰 짐이었던 것이지요.
“2001년에 무릎 수술을 하게 되면서 몇 개월간 간호 봉사도, 후원도 못한 적이 있었어요. 애들은 하루에 한 끼도 못 먹고 병에 걸리면 죽을 수밖에 없는데…. 날 위해서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더라고요. 마음이 무거워 견딜 수가 없었어요.”
다시 시작한 1 : 1 후원, 지금은 무려 열한 개 나라, 29명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집으로 데려온 유기견 열 마리까지 함께 지내다 보니 외로울 틈이 없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을 후원할 때, 생애 처음 카메라를 보며 두려워하는 아이, 슬픈 눈빛의 아이를 선택합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들에게 밝은 미소를 선물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스위스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오히려 아프리카 우간다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7년째 인연을 맺어온 ‘데보라’의 할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데보라의 할아버지가 생전에 보내온 편지도 늘 마음에 남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인진주, 우리 손자들을 돌봐줄 사람이 있어 지금 나는 걱정 없이 저세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는 것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는 그녀는 언젠가 그들을 직접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오늘도 몽골어를 배우고, 사진을 찍고, 편지를 씁니다.
“옛날의 저는 꼭 필요한 사람도,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어요. 무관심 속에 홀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진짜 가족이 생겼지요. 이 아이들이 저에게는 보물이고 금메달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