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이쩜구) 너무나 익숙한 이름. 의정부여고 2학년 9반. 이과반의 맨 끝 교실. 유난히 개성이 강했던 우리는 공부보다는 체육대회, 백학제(학예회), 연극회 같은 것들을 더 즐겼었어.
담임 선생님은 매번 꼴찌를 하는 성적 때문에 꽤나 골치 아파하셨지.
학기 초 게시판을 꾸밀 때였어. 우리는 노오란 주전자에 휴지를 휘휘 풀어 종이죽을 만들고 물감을 섞어 색을 낸 다음, 던졌지! 뒤편 게시판으로 던져지는 파스텔 톤 종이죽들은 ‘쩍!’ 하니 통쾌한 소리를 내며 들러붙으며 꿈 많은 여고생들의 꽃밭이 되었지. 다음 날 아침 게시판을 보고 당황하신 선생님은 뒷짐을 진 채 몇 번을 나갔다 들어왔다 안절부절못하셨지만, 작문 선생님과 가정 선생님은 “너희들~ 멋지다~”며 응원해 주셨었지.
공부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끼가 넘쳤던 2학년 9반은 언제나 최고였지. 학예회 때 부르던 몽산포타령, 그때 하나로 모아진 우리들의 예쁜 목소리가 참 그립네.
학기 말이 되면서 어찌나 헤어지는 게 아쉬웠던지, 우리는 이쩜구라는 문집을 내고, 급기야는 이쩜구의 끝을 기념하며 연극 ‘파우스트’를 공연하기로 했지.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친구들과 선생님을 초대해 연극 공연을 마치자, 너무나 뿌듯했던 우리 담임 선생님은 십만 원이란 거금을 후원해주셨지. 평소에 표현도 잘 안 하던 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속만 썩이던 우리들을 은근 자랑스러워하시고, 그저 묵묵히 모른 척해주시던 것이 우리 담임 선생님의 최선의 응원이 아니었나 싶어. 최고로 행복했던 여고 시절,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 어쩌면 내 학창 시절은 ‘이쩜구’가 전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풋풋한 20대를 보내며 너희들을 살짝 잊고 살기도 한 것 같애. 결혼식, 출산, 돌잔치…. 인생의 굵직한 행사들을 거치면서 너희들의 존재를 다시 깨닫게 되었지. 그러던 서른 살의 어느 5월. 딱 이맘때쯤 우리는 다시 만났지. 모두들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던 우리에겐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있었고, 어린이대공원으로 소풍을 함께 갔지. 준비해간 맛난 음식들을 먹고 얼마 안 있자 갑작스레 소나기가 퍼부었어. 커다란 돗자리의 가장자리를 아빠들이 붙잡고, 우리들과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그 빗속을 돗자리 하나에 의지해 다 같이 뛰어가며 얼마나 즐거워했던지…. 그리고 십 년, 우리는 함께 그 시간을 같이 했지. 여고 동창생 여덟 명은 여덟 가족이 되었고, 스무 명이 넘는 대가족이 된 우리 모임(이쩜구).
일년에 서너 번의 만남, 바다를 갈까 계곡을 갈까? 새로운 계획을 짤 때마다 점점 너희들을 생각하는 나를, 그 안에서 꿈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아내의 여고 시절 속으로 들어와 준 사랑하는 우리 서방님! 장 보기 힘들다고 구시렁대면서도 “진호랑 창성이는 소주 마셔~ 맥주 6개짜리 3팩은 사야 해~ 바비큐 해먹을까? 애들 딸기 좋아해….” 그 넓은 오지랖을 펼치시며 두 카트를 가득 채우고, 계산할 때면 오천 원 할인 쿠폰, 맥주 500원 할인 쿠폰, 3배 적립 쿠폰 등등 꼼꼼히 챙기시고, 그걸 품목에 맞춰 집 냉장고에 넣었다가 가져가야 할 것, 차에 둘 것 구별해서 박스에 나누어 담고, 그렇게 몇 박스씩 차에 싣고 내리기를 수십 번. 정작 자신은 술을 못 마시는 바람에 누구를 마중 나가고 배웅하는 일도 늘 도맡아 하는, 언제나 믿음직한 심부름꾼.
이쩜구 친구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평일임에도 당연히 가야 한다며, 신랑들을 모아 광양까지 다녀오는 사람, 누구의 고민이든 차분히 들어주고 충고해주는 카운슬러!!! 언젠가 한 번은 제대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이쩜구, 니네들이 나보다 더 좋아하는 ‘진욱 오빠’한테 꽃 보내는 거 절대 불만 없을 거라 확신한다~ 나는.^^
이쩜구 친구들(현주, 화순, 진숙, 현진, 윤진, 양희, 혜정)+α(변성식, 송진욱, 박진호, 박정환, 김창성, 오미종, 조성준) 그리고 예쁜 우리 아이들~ 모두 모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