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꽃으로 피어난 저마다의 바람들….

사랑하니까!

황교진 42세. 출판 편집자. <어머니는 소풍 중> 저자

그해 가을은 이상한 마음이 들 만큼 기쁜 일들이 많이 몰려왔다. 대학 졸업반 내내 밤을 새우며 준비한 건축 구조 졸업 작품이 교내 과학상에서 대상을 받았고, 꿈 같은 이성 교제를 시작했으며, 대학원 특차 합격으로 진로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했다.

그러나 1997년 11월 27일, 밤늦은 시간에 응급실로 급히 달려가 뇌출혈로 쓰러져 전신 마비가 된 어머니의 모습을 대할 때의 참담함이란….

하나님께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머니를 일으켜주시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바람도 땅에 떨어지고, 세 군데나 옮겨 다닌 7개월여의 병원살이 끝에 결국 ‘가망 없음’ 통보를 받고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와야만 했다.

괴로웠지만 조용히 연애를 끝냈으며, 슬며시 건축가의 꿈도 접었다. 대신 식물인간 상태의 중환자인 어머니의 유일한 의사요, 간호사, 영양사가 되었다.

어린 시절을 나는 거의 외할머니 댁에서 보냈다. 가난한 살림에 상경하신 부모님은 의류업을 하시며 나를 키울 수 있는 형편이 되기까지 따로 떨어져 살았다. 고아 아닌 고아처럼 사는 동안 어린 나는 늘 어머니 품이 그리웠다. 뒤늦게 이렇게라도 보상을 받는 것일까? 긴 세월 동안 우리 모자는 수많은 고통을 함께 견디며 둘이 한 몸처럼 지내왔으니 말이다.

쓰러지신 날까지 어머니는 모두가 잠든 새벽의 동대문 시장을 훤히 밝히며 생활고를 붙들고 계셨다. 나는 달라진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어머니 간호에 전문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의대를 나온 아들 이상이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렸다. 실제로 중환자를 간호하는 지혜를 날마다 연구하며 어머니께 적용시켜 갔을 때 기대 이상의 안정적인 모습으로 편히 계시는 어머님을 보며 나 또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어머님 몸에 향기가 나도록 매일 청결하게 씻겨드리고, 영양이 부족하지 않도록 열량을 계산하여 죽을 만들어드리고, 표정만 보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감’을 얻으면서 고단한 현실은 견딜 수 있는 일상으로 바뀌어갔다.

그렇게 14년이 흘렀다. 환자인 어머님이 늘 편하게 주무시도록 애쓰는 동안 외출도 하지 못하고 잠을 편히 잘 수도 없고 공부도 접어야 했던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누군가와 말하고 싶은 갈망을 글쓰기로 달랬고, 그 글은 <어머니는 소풍 중>이란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어머니 덕에 백수 아들은 ‘에세이 저자’가 된 것이다. 덕분에 어머니 간호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해주겠다는 회사에 취직도 되었고 내 책을 읽은 한 여성과 결혼하여 올해 3월이면 벌써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

지금도 우리 모자는 변함없이 함께하고 있다. 여전히 의식이 없는 어머니는 줄곧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계심을 느끼고 있다. 나는 어머니 덕에 고운 아내를 만났고, 글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출판 편집자로 살고 있으며, 이 땅의 소외되고 고통받는 약자들을 돕겠노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보이는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 집을 짓는 영혼의 건축가로 성장한 것이다. 내가 바랐던 것은 어머니를 잘 간호할 수 있는 아들이었는데 어머니는 아들이 떳떳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치 있는 꿈을 가지고 살도록 이끄셨다. 어머니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길을 열어주신 분이다. 의식 없는 식물인간 상태의 중환자이지만, 내겐 언제나 건강하고 포근한 어머니로만 보이는 당신의 곁이 행복하다. 사랑하니까!

모용수 작. <사랑>

캔버스 위에 오일.

90×90cm. 2010.

바람을 이루기 위한 비법, 다이어리 이야기

김은정 38세. 사회복지사. 대구시 북구 복현2동

3년 전부터 새해가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다이어리에 올해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계획 등을 적는 것이었다. 늘 새해가 되면 뭔가 계획을 세워보곤 했지만 어느새 흐지부지되고는 했었는데, 적는 습관을 들이게 되면서 나의 삶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소소한 생활 속의 기적이었다.

작년 같은 경우는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에 대한 바람을 가졌었다. 공부를 하기 전 나름의 계획을 다이어리에 적고는 나태해지려고 할 때마다 다이어리를 들여다보곤 했다. ‘아~ 내가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구나’ ‘이런 바람을 가지고 있었구나’ 내가 세운 계획과 바람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는 것이다. 그리곤 ‘열정을 불태우리 불끈!’ 하는 스탬프를 찍어가며 공부를 했다. 그 덕분인지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또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취미로든 뭐로든 글로 할 수 있는 부분에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글 쓰는 재능을 살려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 같은 것들이 다양하게 많았다. ‘바람’을 적어놓고 노력하는 동안 공사 모니터링 요원에도 뽑히고 잡지에 글도 실렸다. 공모전에도 두 번이나 당선이 되었다. 나에게는 정말 꿈 같은 일이었다.

다 다이어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고, 희망 사항으로 적어놓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체크해가면서 도전을 하니, 좋은 결과도 따라준 것이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면서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단순히 꿈을 적었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바라는 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그 또한 얼마나 재미없는 삶이겠는가. 다만 이 ‘바람’이 그저 막연하거나, 허황된 것이 아니라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기에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 같다. 때론 좌절도 있고, 실패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꿈과 희망을 적어나간다. 기록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실천을 낳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믿기 때문이다. 나에게 기록이란 간절한 염원의 시작이고, 또 나를 힘 나게 하고 이루게 하고 또 도전할 수 있는 희망을 주는 것 같다.

새해에는 ‘치유의 삶’을 살고 싶다. 사회복지사로서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자 하고 있지만 나 스스로 힘든 마음을 치유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게 되면서, 내 마음속의 아픔과 힘든 것들이 치유되는 경험들을 했다.

나에게 글쓰기가 치유라면, 어떤 이들에게는 음악이나 미술로써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해에는 미술 치료나 음악 치료, 독서 치료 같은 분야를 배워보고 싶다. 아프고 힘든 마음을 문화로써 치유할 수 있는, 유난히 마음이 추운 누군가에게 따뜻한 등불이 되어주는 그런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 다이어리를 편다. ‘등불 같은 사람이 되자’라고 쓴다. 이제 나는 매일매일 다이어리를 펼치며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스스로 격려하고 다짐할 것이다.

모용수 작. <사랑 이야기>

캔버스 위에 오일. 16×22.5cm. 2009.

‘이 세상은 그대 위해 있노라’

하며 살면 좋겠다

강영순 69세.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2동

나는 아는 것도 없는 늙은이지만 그래도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말해본다.

지금 제일 바라는 것은 이 세상에 노처녀, 노총각이 없었으면 좋겠다. 결혼을 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면서 <월간 마음수련>에 실린 우명 선생님 말씀처럼 마음 비우고, 나는 없다 하고, 이곳 세상은 그대 위해 태어났노라, 하면서 살면 좋을 것 같다.

시부모들은 며느리들에 대해 늘 고맙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사위가 백년 손님이라면 며느리는 이백년 손님이라는 생각으로 옛날처럼 야단치고 그럴 게 아니라 고맙다며 잘 대접을 했으면 좋겠다. 손자 손녀 낳아주고 제대로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까 너무 고맙지 않나.

자녀들과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다시 생각하고 얘기하자고 하면 좋겠다. 아들이나 딸이 내 뜻하고 같을 수는 없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검토해보자 하면서 좀 더 자식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이야기하면 큰 문제 없이 풀린다.

화가 나서 욕을 하게 돼도 좋게 했으면 좋겠다. ‘이 나쁜 놈’보다 ‘이 성공할 녀석’ ‘이 잘될 녀석’, 그런 식으로 하면 결국 자기에게 좋다. 절대로 누구한테든 나쁜 놈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이라도 ‘에이, 잘될 녀석’ 하면 마음도 좋다.

손녀, 손자 7명이 그야말로 뛰어난 사람은 못될망정 나쁜 사람은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기 재능을 잘 살려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손자 손녀에게 재능에 따른 별명을 붙여 부른다. 그림을 잘 그리는 큰손녀에게는 강사임당이라 부른다. 강장군, 강박사, 강장관, 강발명왕, 우리 외손자한테는 한금메달, 한총리 그렇게 부른다.

모용수 작. <첫사랑>

캔버스 위에 오일. 45×51cm. 2008.

항상 상대를 위해 복을 빌어주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부터 임산부를 보면 ‘순산하세요, 건강하게 잘 자라 훌륭한 사람 되세요’라고 마음속으로 세 번 기도하면서 지나가게 된다.

운전할 때 넉넉한 마음으로 했으면 좋겠다. 내가 5분 늦게 가면 된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안전거리 잘 두고 지시등 잘 켜고 양보 운전 하고 법 잘 지키면 우리나라 사고가 많이 줄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공중 질서를 지켜주면 좋겠다. 길에 쓰레기가 보이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쓰레기를 주울 줄 아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금 혹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노후를 대비해서 자동차 운전 기능 강사 자격증을 준비했다. 두 번의 고배 끝에 작년에 1, 2차 모두 합격했다. 자격증을 취득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전철에서도 책을 보고 짬만 있으면 책을 보니까 되었다. 젊어서는 백 번 읽어서 됐다면 삼백 번은 읽으려고 했다.

내 나이 또래분들은 “이 나이에 뭘해~” 하는 신세타령보다 용기를 가지고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하고자 하는 사람한테는 걸림돌이 없다. 뭐든 못 할 것이 없다.

젊은 시절 내가 바란 것은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워낙 가난했기에 남부럽지 않게 잘살고 싶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돈벌이가 생각처럼 안 될까 늘 의문이었다. 그러다 <월간 마음수련>에서 우명 선생님의 말씀을 접하고는 나의 의문이 풀렸다. 돈벌이가 안 되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벌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서 힘들었던 것이다. 그냥 지금에 만족하면서 일도 하고 생활하면 건강도 좋아지고 그냥 그 자체가 부자인 것이다. 욕심을 버리자 출근길에 콧노래가 나오고,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허망한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마음의 거품을 뺐으면 좋겠다. 늘 닦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내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죽는 그날까지 일을 하는 것이다. 바람을 갖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미래에 대한 꿈이 없으면 사람이 나태해지게 될 것 같다. 앞으로 내 밭을 사서 예쁜 나무를 심고 싶다. 그리고 항상 고마운 아내가 사는 날까지 건강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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