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엄마 손 잡고 외갓집에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두메산골 외갓집에는 외증조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작은 외할머니 슬하로, 입대를 앞둔 큰삼촌부터 여섯 살 꼬맹이 이모까지, 모두 열두 명의 식솔이 와글와글 살고 있었다. 그중에서 영미이모와 영희이모는 참 대조적이었다. 열다섯 살 영미이모는 산골 소녀답지 않게 얼굴이 예쁘장하고 손도 빨라 시키는 일을 척척 잘했다.
하지만 촌스럽게 생긴 열네 살 영희이모는 실수가 많고 동작도 굼뜬 탓에, 식구들한테 자주 지청구를 들었다. 영희이모는 심지어 나와 한동갑인 아홉 살 영옥이 이모한테도 말싸움에서 밀렸다. 나는 영희이모가 부엌에서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래서일까. 영희이모의 두 눈은 밤새 실컷 운 아이처럼 부어 있었다. 나는 영희이모가 오로지 밉게 생겨서 식구들에게 타박을 맞는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내가 영희이모 편이라는 걸 알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정주간으로 갔다. 매캐한 부엌 안에서 영희이모는 혼자 나무를 때서 아침밥을 짓고 있었다. 영희이모는 아궁이 불빛보다 환하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아이구, 우리 형식이 왔구나. 추운디 멀라고 왔냐.” 이모는 부뚜막 앞에 나를 앉히고, 내 두 손을 모아 쥐고 호호 입김을 불어 주었다. 그리고 아궁이 불에 고구마를 구워 주었다. 나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앉아 노란 속살로 가득 찬 군고구마를 먹었다. 외갓집에 있는 동안, 나는 아홉 살 동갑내기 영옥이 이모보다 열네 살 영희이모와 훨씬 더 친했다.
그리고 며칠 후, 외갓집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그날도 나는 마른 솔가지 툭툭 타는 아궁이 앞에서 영희이모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가마솥에서 뜨거운 김이 뿜어 나오고 뜸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모가 솥뚜껑을 열고, 한 솥 가득 있는 보리밥 한쪽에 모여 있는 쌀밥을 주걱으로 펐다. 그리고는 그 뜨거운 쌀밥을 맨손으로 굴려 주먹밥 하나를 뚝딱 빚어내더니, 참기름을 얇게 발라서 내게 주었다.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큰일 날 일이었다. 흰쌀밥은 오로지 외증조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희이모 등 뒤에 숨어 주먹밥을 먹었다. 그 후 우리 집이 멀리 이사를 하는 바람에 방학이 되어도 외갓집을 못 갔고 이모가 만들어주는 따끈하고 고소한 주먹밥을 다시 맛볼 수 없었다.
내가 영희이모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내 결혼식장에서였다. 이모는 평탄치 않는 자신의 삶이 민망한 듯, 있는 듯 없는 듯 다녀가셨다. 친척과 함께 찍은 결혼사진 속에 촌스럽게 서 있는 이모가 쓸쓸해 보여 마음이 아팠다.
다시 이십 년이 지난 후, 영희이모가 병상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과년한 나이가 되어서 촌부의 재처로 들어갔다는 집이었다. 영희이모는 병석에서 몸을 일으켜, 그 옛날 외갓집 부엌에서 그랬던 것처럼, 따스한 아랫목으로 나를 끌어 앉혔다. 그리고 그 옛날 아홉 살짜리 조카를 만난 듯 부뚜막같이 웃었다. 나도 사십 년 전으로 돌아가 열네 살짜리 이모의 거친 손을 잡았다. 타박타박 타박네 같은 영희이모는 다다음해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하지만 이모가 건네준 그 주먹밥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다.
글 최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