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꽃미남 수사대’ ‘비상대책위원회’ 등의 코너를 통해 인기를 끌며 최근 그가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피곤한 내색이라고는 없이,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재미난 표정을 지으며, 최선을 다해 답변해 주었기에, 그와 함께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나 웃음을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개그맨 김원효씨의 삶 그리고 마음 이야기.
글 최창원, 사진 홍성훈
범인들이 고등학교에 독가스를 살포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10분 안에 학생들을 대피시켜야 하는 상황. 그런데 비상대책위원회의 본부장은 안 된다는 타령만을 늘어놓는다.
“야, 안 돼! 방독면 500개를 언제 구해서 어떻게 씌우고 어디로 대피시키냐? 어? 그러면 우리가 위에 가서 예산 결재해 달라고 해야 할 거 아니야? 내가 청장님한테 가서 ‘결재 좀 부탁드립니다’ 이러면 청장님이 ‘야! 방독면이 우리 거냐? 비상 물품 아니야? 국방부로 가봐’ 그럼 내가 국방부로 가면 ‘에이, 그건 구호 물품이잖아, 보건복지부로 가야지’ 그럴 거 아냐, 어?” 원맨쇼를 하듯, 속사포처럼 빠르게 이어지는 본부장의 대사에 박장대소하는 사람들.
지난 8월, KBS 2TV <개그콘서트>에 신설된 코너 ‘비상대책위원회’는 관료 조직을 풍자하는 내용과 김원효를 비롯한 최고 개그맨들의 뛰어난 연기력에 시작하자마자 인기를 끌었다.
요즘 인기 최고시죠? 축하드려요.
뜻밖에 너무 많은 사랑을 받게 돼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근데 기분은 되게 좋은데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면도 있어요. 살면서 보면 뭔가 되게 잘될 때 사건, 사고도 많이 터지더라고요. 항상 그걸 되새기면서 겸손하게, 늘 열심히 하겠습니다.
‘비상대책위원회’ 같은 코너는 어떻게 생기게 된 걸까, 궁금해요.
이번 여름에 홍수 피해가 많았잖아요. 뉴스를 보는데, 좀 높은 사람들은 탁상공론을 많이 하더라고요. 되게 급해 보이지만 또 그렇지만도 않아 보이고.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빨리 구해야지, 저럴 시간이 있을까, 생각만 많고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는 말만 하고 있네, 그러는 사이 사람은 죽어 나가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 답답했고, 그걸 웃음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코너 속에서 안 돼, 안 돼~ 외치는 건, 정말 ‘안 돼’가 아니고 다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그를 짜는 거예요.
대사 분량이 굉장히 많던데요, 어떻게 외워요?
보통 한 회 녹화분이 A4용지 두 장 정도 돼요. 외우고 또 외우고 100번도 넘게 외워요. 대사가 저절로, 알아서 나올 때까지 외우는 거죠. 저도 제가 이런 능력이 있는 줄 몰랐어요. 처음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그냥 해야지, 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외워지더라고요. 이 코너는 아이디어 회의도 장난이 아니에요.
제 부분은 제 입맛에 맞게 따로 정리하는데, 이번에도 부산 갔다 올라오는 길에 차 안에서 타이프를 쳤어요. 월화 리허설, 수요일 녹화, 목금 아이디어 회의, 토요일 정리…. 계속 그렇게 돌아가는 거죠. 한 코너, 몇 분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 내내 고생해요. 매 주마다 발명품 하나씩 만드는 거잖아요. 그래도 무대에 딱 섰을 때 많은 분들이 웃어주시면 고생 같은 건 싹 사라져요. 개그맨들은 그때 최고의 쾌감을 느끼죠.
의외로 김원효씨는 학창 시절 매우 조용한 성격이었다 한다. 하지만 연기하는 것을 좋아해 성격파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던 그는, 2003년 무작정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한다.
연극, 뮤지컬…. 오디션이란 오디션은 다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다 우연히 개그 쪽으로 먼저 인연이 닿았고, 2005년 <개그사냥> ‘진상소방서’로 데뷔한다. 소방서에 걸려온 전화를 진상으로 받는 어눌한 소방대원의 모습으로 자신을 알렸지만, 그것도 반짝이었다.
그 후 <폭소클럽2> 등에서 간간히 코너를 했지만 주목받지 못했고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그는 피자 배달, 호프집 전단지 돌리기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런데 점점 개그보다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어느 순간 ‘이게 아니다, 굶어 죽더라도 개그 아이디어 짜는 데 시간을 더 많이 내자’ 결심했다 한다.
차비가 없어 2시간을 걸어 방송국에 가는 등 어려운 시절도 보냈지만 2007년,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게 된다. <개그콘서트>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 코너에서 범죄자의 협박에 엉뚱하게 대답하는 형사 역할로 엄청난 인기를 끈 것이다.
그해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남자 신인상까지 받았지만, 또다시 침체기를 맞았다가 올해 다시 전성기를 맞는다. ‘꽃미남 수사대’의 현란한 패션으로 중무장한 경찰서장, ‘9시쯤 뉴스’의 회색 트레이닝에 5대5 가르마를 탄 엉뚱한 기자로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엉뚱한 반전, 어리버리한 말투, 독특한 표정…. 사람들은 ‘김원효’ 하면 떠오르는 ‘김원효식’ 개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웃음을 준다는 건 참 대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아이디어는 어떻게 찾으세요?
평소에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발상의 전환을 많이 해요. 처음 진상소방서 할 때도, 보통 소방서에 장난 전화를 많이 하는데, 오히려 소방관이 장난을 하면 어떨까? 상상했어요. “불이 났어요, 빨리 와주세요” 하는데, “죄송한데요, 저희가 밥을 시켜놔서…” 이런 식으로. 그리고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도 보통 항상 형사들이 범인한테 끌려다니는데, 거꾸로 범인이 “내가 네 딸을 데리고 있다” 하면, 형사는 “잘 부탁해” 이런 식으로 가는 거예요. 누구에게나 있는 허점을 감추기보다 오히려 더 크게 보이게도 하고요. 비상대책위원회에서의 경찰 본부장도, 정복은 입었는데, 5대5 가르마로 조금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면 거기서 웃게 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는 코너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몰랐던 의뢰인의 잘못까지 다 얘기하는 그런 바보 같은 변호사를 해볼까 구상 중이에요.(웃음)
정작 본인이 스트레스받을 때 어떻게 하세요?
아이디어를 실컷 짰는데, 잘렸다거나 하면 스트레스받죠. 하지만 그런 일적인 부분은 순간이고, 마음이 힘든 게 제일 힘든 거 같애요. 제가 개그맨 생활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건 올해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예요. 어린 시절에 할머니께서 키워주셔서 굉장히 친했거든요. 근데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는 잘 못 뵙고 그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부산에 내려가서 뵀어요. 그런데 발인 다음 날이 바로 녹화 날인 거예요. ‘9시쯤 뉴스’ 할 때였는데, 사람들 앞에서 바보 분장을 하고 ‘네, 김원효 기잡니다, 이렇게 웃길 수 있을까’ 온갖 고민이 드는 거예요. 그러다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할머니한테 그동안 해드린 것도 없으니, 오늘 빵빵 터트려서 요걸 선물로 드려야겠다. 다행히 녹화도 잘됐고, 좀 뿌듯하더라고요.
개그맨,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분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면요?
뭐든지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에요. 그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최고가 과연 어디까지가 최고인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또 최고가 되기 위해서만 달리다 보면 서로 도와주지 못하고, 이기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요. 그래서 그냥 뭐든지 최선을 다하자, 마음먹었어요. 사실 요즘 사람들이 참 야박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인기 하나에 대우가 확연히 달라지니까. 2007년에도 조금 느꼈지만,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올라가 보니까 그런 것들을 많이 느끼게 되더라고요. 잘나가든 잘 안 나가든 항상 최선을 다하자, 그런 마음으로 살려고요. 그러려면 이 책 이름처럼 항상 마음을 수련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주변 평도 그렇고 참 긍정적이고 성실하신 것 같아요.
아버지가 항상 저한테 뭘 하든지 “감사합니다” 생각하고 살라고 하세요. 한번은 방송 촬영 중에, 귀에 황토가 들어가서 한쪽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했더니, “그래도 남은 한쪽 귀가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하고 살아라 하시고, 차 왼쪽을 누가 박았다 하면 “오른쪽은 멀쩡하니까 감사합니다” 해라 하시고. 그래서 우리 집 유행어가 그거였어요. ‘감~ 사합니다.’(웃음) 그렇잖아도 이게 재밌을 것 같아서 코너를 만들면 좋겠다 했는데, 정태호 형이 먼저 ‘감사합니다’ 코너를 만든 거예요. 사람이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하구나 싶었죠.(웃음) 그리고 아버지가 항상 문자도 보내주세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하다 보면 뜻을 이루게 된다’ 그런 운세 문자요. 제가 결혼한 뒤에는 저희 와이프한테도 보내주세요. 그런 것 보면 아버지는 참 부지런하세요. 저도 답을 매일 보내드려야 하는데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고는 뭐라 표현할 게 없는 게 죄송하죠. 늘 아버지 덕분에 힘도 얻고, 마음도 고쳐먹게 돼요. 아버지한테 배운 심성, 사랑을 나중에 제 아이한테도 가르쳐주고 싶어요.
김원효씨는 지난 9월 25일, 동료 개그맨 심진화씨와 극장에서 주례 없이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신랑, 신부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례자가 없는 한, 차라리 부모님 덕담을 듣는 것이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외동아들이라 외로움을 많이 느끼면서 컸던 그는, 늘 ‘소중한 가정을 이루고 남들과 나누며 사는 것’이 목표였다 한다. 아내 심진화씨 역시 이미 결혼 전부터 고아원 등에서 많은 봉사를 해왔다 한다. 검소하고, 예의 바른,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아내와의 결혼 후 훨씬 더 안정되고, 힘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요즘 개그만 하지 말고, 버라이어티로 외도도 하면서 인기도 얻고 돈도 많이 벌지 그러냐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개그 쪽으로 쭉 열심히 하려고요. 개그에서 나도 미처 몰랐던 나의 능력들을 계속 발견하고 계발해보고도 싶고, 그냥 방송하면서 내 즐거움을 찾아가며 살고 싶어요.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웃음밖에 없으니까, 매 분 매 초 매 시간 매일을, 여러분들을 웃길 수 있는 준비를 하는 데 바치겠습니다.
그는 요즘 운전할 때도 되도록 한 차선으로만 쭉~ 간다고 한다. 옆 차선이 잘 뚫리는 것 같으면 사람 마음이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생각하지만 결국 도착하는 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다른 차선에 신경 쓰다 보면 오히려 마음만 복잡해지고, 상황이 더 꼬이기도 하지 않느냐며 웃는다. 단순하게, 성실하게, 어떻게 보면 바보처럼 하나만 보고 살고 싶다는 그에게서 개그맨으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웃음기 쫙 빠진 진지한 얼굴로 웃음에 대한 각오를 이야기하는 개그맨 김원효. 순간 그 앞에서 책상을 탁 치며 이렇게 말할 뻔했다.
“안 돼~ 그 약속 안 지키면 안 돼~!” 아, 이런 천생 개그맨 김원효에게 중독되었나 보다. 그를 떠올리면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