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일성
저희 동네에 제가 형님으로 모시는 결혼 19년 차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그날은 형수님 생일이었습니다. 평소에는 토요일 출근도 안 하시는 형님이 갑작스럽게 출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늦은 오후에 퇴근하며 집에 계신 형수님한테 평소 잘 부르지도 않던 이름까지 불러가며 전화를 하셨다고 합니다.
“은숙아~ 주차장으로 좀 내려온나.”
3층 집에서 계단을 내려오며 형수님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3층 계단을 내려오며… ‘토요일 갑작스럽게 출근을 왜 했지?’ 2층 계단을 내려오며…‘그냥 올라오면 되지, 왜 주차장으로 날 부르기까지 하지?’ 1층 계단 내려오며…‘ 혹시 이거… 쑥스러운 장면 연출되는 거 아니야? 어머머머!’ 형수님은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혼자 얼굴을 붉히고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후 형님의 차가 빌라 주차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와이셔츠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린 오른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뒤를 돌아보며 멋지게 후진하는 형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라일락 나무 아래 오후 햇살을 잠시 피해 있던 형수님을 발견하고 형님은 차창을 내리고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여보~ 트렁크 좀 열어봐라~”
곧 운전석에서 트렁크 잠금장치 여는 소리가 들리고 형수님은 트렁크에 손을 얹으며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한번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얼굴도 약간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진짜 풍선이라도 나오는 거 아니야? 이 양반이 생전 안 하던 짓을 하고… 어머어머… 나 표정 관리 왜 이렇게 안 되니, 가만 있어 봐, 이걸 살짝 열어야 되니, 아님 확 열어야 되니….’
“출장 갔다 오는데 국도에서 싸게 팔아서 사왔다. 엄청 싸게 샀데이~ 당신 감자 좋아하지?”
그리고 형님은 감자 두 포대를 양손에 차례로 들고 우두커니 감자를 바라보고 서 있는 형수님에게 나머지 한 포대를 턱으로 가리켰습니다.
“뭐 하노? 퍼뜩 안 들고?”
형수님은 감자 한 포대를 가슴에 꼬~~옥 안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층 계단을 오르며… ‘아놔, 내가 뭘 상상한 거야. 아~~ 쪽팔려, 증말.’ 2층을 오르며… ‘아놔, 19년을 살면서도 매년 기대하고 매년 실망하면서 또 이런다 내가….’ 3층을 오르며… 앞에서 실룩이며 오르는 형님의 엉덩이를 보고 속으로 읊었다고 합니다. ‘감자에 싹이 나서 ♪♩~~ 잎이 나서 ♬~~ 하나, 둘… 에라, 처먹어라.’
그날 저녁 형수님은 1.4 후퇴 때 바람 찬 흥남부두의 금순이가 되어 생일에 감자를 한 솥 삶아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형수님은 꿈속에서 라일락 꽃잎 흩날리는 주차장에 하얀색 리무진이 들어오는 걸 보았습니다. 그리고 검정색 턱시도를 입은 형님이 내려와 형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불러주는 세레나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얀색 리무진 트렁크가 열리는 순간, 형형색색의 감자들이 하늘 높이 두둥실 두둥실 떠올랐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