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일성
얼마 전 같은 동네에 사는 아랫동서와 소주 한잔을 나누다 술기운에 아들 녀석들 데리고 낚시 한번 가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고1 아들 녀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랫동서는 중1, 초등 4학년 아들 둘이 있습니다. 비록 저는 낚시는 좋아하지 않지만 늘 꿈꿔왔던 새벽안개 속에서 아들 녀석과의 밤낚시를 상상했습니다.
남자 다섯 명이 낚시를 갑니다. 차 안 풍경이 새벽 저수지 같습니다. 고요합니다. 아니 적막합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저수지로 가는 30여 분 동안 큰놈은 자고 중간놈은 과자 먹고 작은놈은 창밖만 보고 있습니다.
텐트 치기 무섭게 중간놈이 삼겹살 먹자고 합니다. 별명이 푸드파이터입니다. 전투적으로 음식을 흡입합니다. 한 시간 꼬박 삼겹살을 구워줬습니다. 큰놈은 텐트 안에서 춥다며 안 나옵니다. 작은놈은 아까부터 안 보입니다. 삼겹살 기름이 종이컵으로 세 컵째 나올 즈음 중간놈이 젓가락을 놓습니다. 그리고… 사발면 물 올려 달랍니다. 삼겹살 기름 번들번들한 입술로 저에게 묻습니다.
“이모부도 드실래요?”
두 시간째 이 시끼 밥 시중들고 있습니다. 두 시간 동안 큰녀석은 텐트 안에서 자고 있습니다. 두 시간째 작은놈은 안 보입니다.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고 저수지에 고요한 밤이 찾아왔습니다. 옆에 앉아서 멍하니 찌를 바라보고 있는 아랫동서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신서방… 정말 의자 안 가져왔나?” “아네… 챙긴다고 챙겼는데, 아… 그게 왜 빠졌지…….”
한 시간째 돌 위에 앉아 있는데 더 이상은 엉덩이가 배겨서 못 앉아 있겠습니다. 텐트로 돌아오니 중간놈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이모부 고기는?” “아직 못 잡았어, 너희 아버지가 곧 잡을 거야.” “아니 그 고기 말고 삼겹살 더 없어요?”
이런…. 못 들은 척 작은놈의 행방을 물었더니 조금 전에 들어왔다 다시 나갔답니다. 누가 보면 작은놈은 이곳에 몇 년 살던 놈인 줄 알겠습니다. 큰놈은 여전히 자고 있습니다. 다시 물가로 갔습니다.
아랫동서도 엉덩이가 배기는지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그 옆에 저도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한참 동안 서로 말이 없었습니다.
“차 시트라도 뜯어올까…….” “어! 형님 차 의자 분리돼요?” “안 되지…….” “아… 그러죠…….”
그렇게 또 한참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고기는 언제 잡히나?” “아… 새벽에… 좀 올라온다네요.” “아… 새벽에… 새벽이라… 우리 새벽까지 있다 가기로 했지…….” “아… 네… 새벽요… 새벽… 까지…….” 그리고 또 침묵이 흘렀습니다. “차 의자 한번 떼볼까?”
“…….” 다시 저수지에 정막이 흐릅니다. 그때 등 뒤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던 큰녀석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빠~~ 집에 가자~~ 생각해 보니까 나 수행평가 할 것도 많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낚싯대가 접히기 시작했습니다.
“수행평가가 중요하죠, 형님?” “뭐… 그렇지… 아… 수행평가가 워낙 중요… 아쉽지만, 그래그래.”
둘은 쥐난 다리를 쩔뚝이며 밤이슬 맞은 텐트를 아무렇게 걷었습니다. 그렇게 40대 두 아저씨는 야반도주를 하듯 저수지에서 나와 차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큰녀석은 여전히 비몽사몽간 정신줄을 붙잡고 차에 올랐고 중간놈은 생라면 봉지를 붙잡고 올랐고 작은놈은 중간에 동네 개랑 놀고 있는 거 붙잡아 태웠습니다.
40대 아저씨 둘은 소원인 아들과 밤낚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하지 않아야 할 101가지 중에 두 가지를 올렸습니다.
‘의자 없이 낚시 안 하기… 그리고 많이 처자는 시끼하고 많이 처먹는 시끼하고 많이 처돌아다니는 시끼하고 낚시 안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