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일성
우리 집에는 축구의 명가 ‘FC 바르셀로나’에 버금가는 존재가 있습니다. 일명 ‘FC 복희’로 불리는 제 아내가 있습니다. ‘파이터 치킨’ 약자 FC입니다. 즉 쌈닭입니다.
어젯밤도 FC 복희가 상대를 찾아 거실을 어슬렁거립니다. 고개를 까딱까딱 움직이며 주위를 돌아봅니다. 자율 학습을 끝내고 온 고1 아들 녀석이 걸렸습니다. 일단 톡 톡 쪼기 시작합니다.
“30분이나 늦었네?” “뭐,.. 그냥… 뭐…” 아들 녀석이 FC 복희의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말끝 흐리기를 보이고 말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쪼기 시작합니다. “술 먹었냐?” 아들 녀석이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만 짓습니다.
“엄마 말이 지금 어이가 없지? 그지? 난 지금 11시가 다 돼서 들어오는 네가 어이가 없거든? 학생이 밤늦은 시간에… 퍼덕 퍼덕… 이 시끼야… 퍼덕 퍼덕… 우당탕………”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FC 복희가 다시 고개를 까딱이며 안방으로 천천히 들어옵니다.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누워 있다 몸을 일으킨다고 했는데 조금 늦어서 삐딱한 자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역시 톡 톡 쪼기 시작합니다.
“형우한테 한마디 해야지 왜 이러고 있어?” “내가 따끔하게 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먼저…”
말끝을 흐리다 자세를 바로 하고 또박또박 대답을 했습니다. “난 형우 씻고 나오면 말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먼저 그러니까 같이 혼내기가 그렇잖아. 일단 화장실에서 나오면 내가 주의 줄게.” 말끝을 흐리는 건 주의했는데 FC 복희의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또 다른 요인인 핑계로 들렸나 봅니다.
“당신은 항상 그래… 왜 나만 못된 엄마 만들어? 당신이 뒤로 빠지니까 내가 이러는 거 아니야?” FC 복희가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합니다. 알아서 조용히 눈을 ‘해 저무는 수평선 모드’로 만들었습니다. FC 복희가 퍼덕이려던 날개를 접고 다시 거실로 나갑니다. 고개를 까딱이며 걷는가 싶더니 갑자기 중간 과정도 없이 날개를 퍼덕이며 누군가에게 달려듭니다.
“야, 이 가시나야! 옷 정리 하라고 몇 번을 얘기해? 지금 잘 시간까지 이러고 있어? 퍼드덕 퍼드덕… 우당탕………”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할 법도 한데 딸아이는 이내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합니다.
“왜 소리부터 질러요? 지금 하고 있잖아요.” 조금 전 제가 ‘해 지는 수평선 모드’로 눈을 깔았다면 딸아이는 지금 ‘해 뜨는 일출봉 모드’로 눈을 뜹니다. FC 복희가 주춤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에는 FC 복희만 있는 게 아니라 KFC 송이도 있습니다. ‘키즈 파이터 치킨’ 어린 쌈닭입니다. FC 복희와 KFC 송이가 맞붙었습니다. 시간이 좀 길어질 뿐이지 물론 승리는 FC 복희입니다.
12시가 다 돼서야 우리 집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아내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서 한숨을 쉽니다. “에휴… 다들 나만 미워해.”
아내가 처음부터 쌈닭은 아니었습니다. 근래 들어서 쌈닭으로 변했습니다. 사춘기 남자 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말수가 줄어들던 아들 녀석도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자율 학습이다 학원이다 밖으로 도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내와 대화 시간이 짧아졌습니다. 저도 요즘 회사 사정도 안 좋고 개인적으로 신경 쓰는 일까지 있어서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딸아이도 휴대폰상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적으로 예전에 살갑던 딸아이가 아닌 듯합니다. 어쩌면 아내는 싸움을 건 게 아니라 대화를 시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아내는 고개를 까딱이며 거실을 거닐 겁니다. 형우에게 미리 말을 해둬야겠습니다. 오늘 밤에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오늘 먹은 점심 메뉴는 뭐였고 석식은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말하라고…. 송이한테도 휴대폰 좀 내려놓고 이번 주말에는 엄마와 같이 쇼핑하고 싶다고 말하라고…. 그리고 저도 개인적인 일을 아내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의견도 구해 볼까 합니다. 우리 집 FC 복희가 그만 날개를 퍼덕이고 이제는 편안하게 가슴에 손도 얹고 다리도 편안하게 꼬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편히 쉬는 바비큐 치킨 ‘BC 복희’로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