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신경이 쓰이던 돌무더기가 있었다. 보고 다니면서 눈에 영 거슬렸다. ‘이걸 어떻게 정리 좀 했으면 좋겠는데’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당연히 포크레인 같은 기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돈을 들여가며 포크레인을 부르기엔 그리 아쉬운 게 아니어서 그냥 두고 보기만 했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답답해하면서…. 그런데 시아버지께서 그곳을 예쁜 텃밭으로 바꿔놓으셨다.
시아버지는 참 느린 분이다. 그 느림 때문에 종종 식구들의 눈총을 받기도 하신다. 하지만 어느 식구보다도 일을 잘하신다. 아니 특별히 일을 잘하신다기보단 다른 식구들이 모두 “안 돼~ 그건 할 수 없어~” 할 때 “왜 안 돼? 이거 할 수 있어!” 하시며 아주 천천히 묵묵히 그 일을 하신다. 처음엔 전혀 할 수 없다고 생각되던 것들이 ‘어, 변하고 있네. 할 수 있는 거였나?’ 했다가 결국엔 ‘아버지가 이렇게 바꿔놨네!’ 하며 감탄하곤 했다. 그런 일이 늘어나면서 ‘아버지는 일을 참 잘하시는 분이야!’ 하는 명제가 생겨났지 싶다.
밭에 있던 돌무더기도 그렇다. 나는 평소에도 남편에게 그 돌무더기를 치웠으면 한다는 말을 내비쳤고 남편은 어떻게 그것 때문에 포크레인을 부르느냐고 했었다. 한마디로 우리가 직접 그걸 치울 엄두는 아예 내지 못한 것이다.
한데, 시아버지는 그냥 아무 말씀도 없이 장갑을 끼더니 돌들을 하나하나 치우기 시작하셨다. 아무런 말씀도 없이, 아무런 표도 나지 않게. 그냥 돌멩이 하나 치우시는 줄 알았지, 그 커다란 돌무더기를 다 치우시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아버지의 생각을 미리 알았더라면 안 되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렸을 터이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가본 우리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와 나무들, 돌들이 따로따로, 또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치워진 부분에는 보들보들한 땅이 드러나 있었다. 시아버지는 땅이 참 기름져서 여기다 모종을 심으면 좋겠다 하셨다. 그렇게 며칠 동안을 온종일 거기에 매달려 계시더니 처음의 그 돌무더기는 싹 사라지고 없어진 것이다.
아이들을 비롯하여 남편과 나는 감탄에 감탄, 또 감탄!
이번에 돌무더기를 치우고 텃밭 하나를 만드시는 과정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시아버지가 일을 잘하시는 비결은 느림이었다. 힘든 일을 헉헉거리며 용을 쓰며 하면 쉽게 지친다. 지치면 포기하기도 쉽다. 하지만 아버지는 체력을 한순간에 몰아 쓰지 않고 오래 쓸 것을 염두에 두고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 쓰시는 것 같다. 아주 천천히 즐기시는 듯….
일을 하기에 앞서 나는 성급하게도 성과를 미리 그려본다. ‘언제쯤’ 일을 마칠 수 있을지 생각하고 그 ‘언제’가 쉽게 그려지지 않을 때는 덜컥 겁을 내며 ‘못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언제’에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하다 보면 다 되는 것이여~’ 하면서.
즉 내가 집중하는 것이 ‘언제’였다면, 아버지가 집중하는 것은 ‘하다 보면’이었다. ‘언제’에 집중한 내가 빨리 해내야 한다는 두려움에 떨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면, ‘하다 보면’에 집중한 아버지는 느리지만 결국 다 해내신다. 결국 과정에 집중한 사람이,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성과도 만들어내는구나 싶다.
며칠 동안 아버지가 일하시는 모습을 지켜봤다. 움직임이 있는 듯 없는 듯, 그 자리에 계신 듯 안 계신 듯,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그 모습에서 나는 장 지오노의 작품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부피에를, 마오우쑤 사막에 숲을 만든 인위쩐을 본다. 시아버지 같은 분이 바로 부피에가 될 수 있고, 인위쩐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아버지를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