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에게서 배우는 생명과 사랑

 

 
 
 

김성호 서남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1991년, 지금 근무하는 학교의 생명과학과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학이 개교를 한 해였습니다.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하나씩 채워갈 수 있다는 기쁨이 컸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은 그 기쁨의 딱 절반을 가슴에서 도려내라 했습니다.

순수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의 꿈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관심 분야가 같은 몇 명의 학생이 있고, 그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며 연구를 하여 일년에 한두 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소박한 꿈마저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꺾어야 했습니다. 모든 것이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설 대학에서 고가의 분석 장비들을 짧은 시간에 마련하기 어려웠고, 학생이라고는 이제 대학에 갓 들어온 신입생이 전부였으며, 자고 눈을 뜨면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는 학문의 특성도 한몫을 했습니다.

그때 내 나이가 겨우 서른하나.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곁에 있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품은 생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발로 온 힘을 다하여 움직여 다양한 생명체를 직접 만나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새로운 꿈으로 삼았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없으면 어떻게든 만들어서라도 우리의 산과 들과 강이 품고 있는 생명체들을 15년 가까이 쉼 없이 만났습니다. 그러던 2007년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지리산 자락을 더듬다 내 삶의 모습을 또다시 완전히 바꿔놓은 친구와 인연이 닿게 됩니다. 큰오색딱따구리라는 새였습니다. 큰오색딱따구리 한 쌍은 새끼를 키워낼 둥지를 막 짓고 있었습니다.

김성호님은 원래 식물학자였지만 어느 날 새에게 마음을 빼앗긴 후 새들의 번식 일정 전체를 세세히 기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동고비와 함께한 80일> <까막딱따구리 숲>의 저자이며, 최근에는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만난 생명들의 20년 이야기를 담은 생태 에세이 <나의 생명 수업>을 펴냈습니다.

큰오색딱따구리가 둥지를 완성하고, 알을 낳아 품고, 먹이를 날라 새끼를 키워내는 과정 전체를 관찰하기로 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우리나라의 경우 큰오색딱따구리는 물론 새의 번식 일정 전체를 빠짐없이 살펴본 사례가 없었습니다. 지키고 싶은 약속도 있었습니다. 생명과학 연구의 출발은 관찰이며, 관찰은 대상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던져 바치는 과정이라고 항상 가르쳤고, 그것은 나와의 약속이기도 하였으니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기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조각난 정보를 얻는 것에 조금 지쳐 있었기에 하나를 보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로 방향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만으로는 산속에 홀로 틀어박혀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며 하루 종일 둥지 하나만 바라보는 험난한 여정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큰오색딱따구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며 인간적 욕심은 자연스럽게 애정으로 바뀌었고, 하루하루를 설렘과 기다림 속에서 지내다 보니 마침내 50일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5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들과 함께하면서 내 삶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내 삶의 방향도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새와 동행하는 삶’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마흔 중반이 넘어 새로운 세계로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저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분명하게 남기고 떠난 것이 있었기에 그러했습니다.

생명은 이미 그 자체로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라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의 생명으로부터 다시 그를 닮은 새 생명이 온전히 완성되기까지 있어야 하는 간절함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경이로움과는 또 다른 것이었습니다. 큰오색딱따구리 한 쌍이 새끼를 키워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두 아이의 아버지인 나는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알을 품을 때, 부모 새는 한쪽이 와야 비로소 한쪽이 나가는 철저하고 완벽한 교대를 통해 24시간 잠시도 쉬지 않고 알을 품었습니다. 알을 조금이라도 더 따듯하게 품기 위해 가슴의 털마저 뽑아 던지고 맨살을 알에 대며 말입니다. 부화한 어린 새에게 먹이를 나르는 모습은 가련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루에도 60번 정도 먹이를 나르지만 그 먹이를 제 목으로는 하나도 넘기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알을 품고, 부화한 어린 새에게 먹이를 나르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둥지의 밤을 지킨 것은 언제나 아빠 새였습니다. 그런데 어린 새가 다 커서 독립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아빠 새는 더 이상 어린 새와 함께 있어주지 않았습니다.

먹이를 주지 않고 멀리서 보기만 하는 모습.

언제 품어주어야 하며, 언제 밀어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새가 독립하기 직전에는 아예 먹이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때로는 주는 것보다 주지 않는 것이 더 큰 사랑인 것을 저들은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어린 새가 매에게 노출되었을 땐 제 온몸으로 막아서며 매에게 맞섰습니다. 분명 자신의 생명을 버려야 하는 위협이었지만 조금의 머뭇거림조차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미 유전자에 짜여 있는 본능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리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알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큰오색딱따구리의 어린 새 둘째마저 둥지를 떠나 마침내 둥지가 비던 날 많이 울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았던 것과 아비로서 해야 할 일을 온전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죄송함과 미안함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떠나 다시 오지 않았어도 저는 그 빈 둥지를 완전히 떠날 수 없었습니다.

해가 바뀌어 지리산 기슭에 다시 번식의 계절이 돌아왔을 때, 이번에는 동고비라는 새에게 나의 온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동고비는 딱따구리의 옛 둥지에 진흙을 발라 제 몸에 맞게 다시 꾸며서 번식을 하는 무척 독특한 습성을 지닌 새입니다. 동고비는 아예 휴직까지 하면서 관찰을 했습니다. 강의로 인해 관찰에 더러 빈 시간이 생기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동고비에 이어 최근 4년은 까막딱따구리에 미쳐 지내고 있습니다. 그 4년 중 1년은 또다시 휴직도 해야 했습니다.

▼ 알을 품기 위해 배의 털을 뽑아버린 큰오색딱따구리.

▶ 딱따구리의 옛집을 리모델링해서 살고 있는 동고비.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의 심장이 여전히 뛰고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날까지 새의 번식 일정에 동행하려 합니다. 저들을 지키고 싶은데, 지키려면 알아야 하기 때문이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몸이 고단해도 저들을 지켜보며 스스로 느끼는 행복함은 덤입니다.

한 사람의 삶이 어떠한 모습으로 어디를 향해 갈 것인가 하는 것은, 살아가며 언제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라는 것이 꼭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의 경우 그 누군가가 넓게는 자연이며, 좁게는 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