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가족, 친구, 연인, 부부끼리 ‘사랑한다’ 말합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섭섭하게 하거나 서운하게 대하면 언제 그랬나 싶게, ‘미워!’라고 소리치지요. 좋아했다가 미워했다가,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 과연 진짜! 어떤 경우에도! 한순간도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이란 게 있기나 한 건지 반문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사랑을 하고 있나요?
강렬한 사랑은 판단하지 않는다. 주기만 할 뿐이다.
사랑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서 나의 유일함을 인정받는 것이다.
사랑과 미움은 같은 것이다. 다만, 사랑은 적극적이고 미움은 소극적일 뿐이다.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상대방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비교하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더 이상 비교하지 않는다.
사랑을 일부러 만들지 말라. 사랑은 미움의 근본이 된다.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모든 구속과 걱정이 없다.
서로를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다.
사랑의 시작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이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바에 맞추어 그들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뇌 과학 ‘사랑과 미움은 한 끗 차이’ 증명
사랑과 증오가 사실상 동일한 감정이라는 사실이 뇌 과학 영역에서 증명됐다. 영국 런던대학 세미르 제키 교수 팀은 남녀 17명을 대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의 사진을 각각 보여주면서 뇌 활동의 변화를 파악하고자 뇌 스캔 촬영을 시도했다. 그러자 두 경우 모두 뇌 과학자들이 ‘증오 회로’라 부르는 뇌 부분이 활성화됐다. 증오 회로가 활성화되면 공격적 행동이 유발되고, 성난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작동이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증오하는 사람이나 모두 ‘고통스런’ 신호를 뇌에 전달시키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생물학자에게 사랑과 증오는 거의 같은 감정이다. 모두 비이성적이며, 때로 영웅적이고 때로 사악한 행동을 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위하여’가 아니고, ‘다른 누구, 다른 무엇을 위하여’라면 그게 곧 ‘하나님을 위하여’다. 그것이 무엇이든 남을 위하여 내어놓으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 되고, 그리하여 고스란히 또는 더욱 커져서 내게로 돌아온다. 하늘은 무엇을 움켜잡는 손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일 속에 담아놓은 사랑만을 보신다.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것이 사랑이다. 하늘이 모든 것을 덮는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바꿔놓거나 젖혀두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하늘과 같다. 땅이 모든 것을 싣는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싫어하거나 밀쳐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땅과 같다. 해와 달이 모든 것을 비춘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등지거나 외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일월과 같다. … 누구를 사랑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냥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없이, 소리 없이, 흔적도 없이, 아무 바라는 것도 없이 그와 함께 있어라. 거듭 말한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곁에 없는 듯 있는 것이다. 하늘이 땅을, 땅이 초목을, 일월이 만물을 대하듯이 그렇게, 아무 바라는 것 없이…. 네 몸이 있는 곳에 늘 네가 있듯이 네 몸에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모두 받아들이듯이, 그렇게 네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열린 자세로 그 곁에 있어라. 참사랑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만난 지 1년이 되어가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양면 같다는 거다. 내가 이만큼 사랑하지 않았으면 이만큼 미워할 수도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내가 화를 내는 부류는 딱 두 종류이다. 가족과 남자 친구. 가끔은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미친 듯이 미울 때가 있다. 그럴 땐 동성 가족은 근원적 갈등 관계니 뭐니, 아버지와는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해소가 됐다느니 안 됐다느니 하는 말로 합리화시키기도 하지만 여전히 불만이다. 그냥 사랑만 하면 안 되나.
지금 남자 친구도 그렇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심장 박동이 미친 듯이 뛰고 만물이 너무 아름다워서 강의실 안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100일 되던 날엔 넓은 공원에 가서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둘이 바라보며 한참을 가만히 아무 말도 않고 있었는데 정말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그런 대사가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어.”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어라니.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다시 그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면 더 감사히 여길 텐데. 그런 천연기념물 같은 감정을 이제 다시는 느낄 기회가 없을 테니까. 지금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소한 것에서도 미운 감정이 불쑥불쑥 치민다. 마치 나도 모르게 내뱉었던 그 로맨틱한 한마디처럼 나도 모르게 미운 감정이 솟아나 심술을 부리게 된다. 정말 별거 아니다. 이거 때문에 화가 났어 하고 친구들에게 말할라치면 말하다가 자각한다. 나는 언제부터 이런 밴댕이 소갈딱지였는가.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며 입을 고이 닫는다.
얼마 전에 읽은 김형경의 에세이집 <천 개의 공감>을 보면 ‘성인이 된 후 성숙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은 유년기에 해결되지 못한 욕망 때문’이란다. 내 안의 작은 아기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내 안의 작은 아기는 왜 이리 예민한 것일까. 왜 나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른 건 용납하지 않는 걸까.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과 불만을 느끼며 분노의 감정을 분출할까. 책에 따르면 어렸을 때 엄마가 아기의 모든 것을 수용하지 않고 아기와 맞서고 아기를 이기려고 했을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엄마에게 느꼈던 감정 그대로를 아마 남자 친구에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려서 엄마를 사랑했듯이 지금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그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미움을 느끼는 이유가 결국은 그 누구보다도 사랑해서라니. 미움을 통해서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미성숙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어서 놀랍기도 하고 또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